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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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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3 09:06:44, 조회 : 1,06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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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취기관목인문
喚取機關木人問하라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 사람에게 물어 보아라.
‘기관목인(機關木人)’이란 나무로 머리·몸통·팔·다리 등을 깎아 서로 연결시켜 놓은 목각 인형, 즉 꼭두각시를 말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을 뭐라 합니까? 목석(木石)같다고 합니다. 만약 무념과 무생을 생각을 없애고 생멸변화를 멈추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목각 인형처럼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영가 스님이 “목각 인형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고 변화도 없으니, 목각 인형을 불러다 한번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약간의 야유가 섞인 표현이지요?
이 구절은 해석이 분분합니다. 저와 달리 해석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구불시공조만성
求佛施功早晩成가
성불하기 위해서 공덕을 베푼들 언제 이루겠는가.
이 구절은 ‘구불시공조만성(求佛施功早晩成)이로다’로 토를 달면 안됩니다. ‘구불시공조만성(求佛施功早晩成)이리요’라고 하던가, ‘구불시공조만성(求佛施功早晩成)가’라고 토를 달아야 합니다. ‘시공(施功)’, 공을 베푼다는 것은 공을 들인다, 애를 쓴다, 수행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육바라밀 닦는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경을 본다든지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부처가 되려고 그렇게 애를 쓴들 언제 그 뜻을 이루겠느냐, 즉 언제 성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부처는 공을 들여서 되는 게 아닙니다. 공을 베풀면 물론 지혜도 생기고, 복도 생기고 여러 가지 소득이 생깁니다. 하지만 참 부처는 그런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닙니다.
‘조만성(早晩成)가’ 언제 이루어지겠는가, 어느 때 이루어지겠는가,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가 스님뿐 아니라 역대 조사 스님께서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래불(本來佛), 본래 부처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목을 바꾸어 본래 부처였음을 알아차려야지, 제 맘대로 ‘부처는 이런 것이다’고 상정하고서 이리 깎고 저리 다듬으며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을 들인들 언제 부처가 되겠느냐?”는 그렇게 애써서는 참 부처가 될 수 없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 역시 저와 달리 해석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왜, 부처가 되기 위해 공을 들여 봐야 정말 부처가 되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하는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사람이 본래 완전무결하기 때문입니다. 원성(圓成), 이미 원만하게 완성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사 스님들이 입만 떼었다하면 ‘본래 부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을 베푼다’는 것은 조각을 하고, 장업을 하고, 치장을 해서 모양새를 갖춰 나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32상 80종호를 갖추면 부처고, 32상 80종호를 갖추지 못하면 부처가 아닙니까? 수많은 공덕을 지어서 복과 지혜가 구족해야 부처고, 복과 지혜가 부족하면 부처가 아닙니까? 그렇게 따진다면 특정한 모양새를 갖춰야만 부처고, 특정한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면 부처가 아닌 게 됩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안목이고, 세속적인 평가 기준입니다. 소위 속제(俗諦)입니다.
세속적인 안목에서는 부처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자기 성향에 따라 그럴 듯하게 부처를 계산하고 부처를 묘사한 것입니다. 무념과 무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현재 유념(有念)이고 유생멸(有生滅)이다’는 전제 하에 ‘부처님은 무념이고 무생멸이다’고 제 맘대로 규정짓고서, 유념을 무념으로 바꾸고 유생멸을 무생멸로 바꾸려 애쓰는 것은 중생들의 잘못된 견해에서 비롯된 독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처는 중생이 제멋대로 그린 부처지 참 부처가 아닙니다. 꿈속에서 만난 여인을 꿈을 깬 뒤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사방파랑 온 천지를 뒤진다 해도 그 여인은 끝내 만날 수 없습니다. 부처가 되려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생각으로 그려낸 부처를 닮으려고 한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무명의 참 성품이 그대로 불성이요, 환상처럼 헛된 육신이 곧 법신이다.”
참으로 놀라운 폭탄선언입니다. 더 이상 말할 게 없는 결정설(決定設)입니다. 불교 전체를 이해하고, 증도가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이 구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긴다면, 모쪼록 무명의 참 성품이 무엇인지, 환화공신의 참 성품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된다면 현재 무명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이 육신이 환상처럼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도 안 되면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말 내 생각인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고깃덩어리가 정말 내 몸인가를 추궁해 보아야 합니다. 첫 단추를 바로 꿰지 못하면 끝까지 어긋납니다. 근본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내달리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신청곡 : 홀로피는 연꽃(김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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