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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17
普德華 2020-09-26 16:38:27, 조회 : 1,014, 추천 : 0
제행무상일체공
諸行無常一切空이
제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한 것이

여태 나로 여겼던 이 육신이 본래 사대(四大)일 뿐이었음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 쓸 일이 없습니다. 오건 가건, 이렇건 저렇건, 이렇게 되건 저렇게 되건, 마음 쓸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은 본래 무상한 것입니다. 몸만 무상한가? 마음도 무상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상하다고 말씀하셨다 해서 무상한 것이 아니라 본래 무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혹시 병들고 시들면 왜 이리 덧없냐고 한탄하지 않습니까? 나이 들어 기억력이 없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면 남 보기 어쩔까 싶어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그 한탄과 불안이 바로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억지로 붙잡아두려는 것, 거기에서 부조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순리(順理), 이치에 따라 살아가면 만사가 조화롭습니다. 따라야 할 이치란 무엇인가? 몸도 무상하고, 마음도 무상하고, 눈앞에 펼쳐진 세상사 모든 것이 무상합니다. 일체가 모두 공합니다. 이것이 이치입니다.


즉시여래대원각
卽是如來大圓覺이니라
그것이 곧 여래의 크고 원만한 깨달음이니라

조계종(曹溪宗) 소의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金剛經)』의 사구게(四句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존재하는 형상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모든 현상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한 그것이 곧 여래의 대원각이다”라고 한 이 구절이 『금강경』의 사구게와 딱 맞아 떨어집니다. ‘여래의 대원각’이란 깨달음의 경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중생들은 무엇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세상도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눈앞에 펼쳐진 모든 형상들, 우리가 존재라고 여겼던 것들은 전부 허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그러니 그 허망한 것들을 허망한 것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견해와 헛된 집착으로 ‘있다’고 여겼던 존재들이 본래 있었던 적이 없었음을 알면, 그대로 여래이고, 그대로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참 근사한 말씀입니다.

“모든 현상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다[諸行無常一切空(제행무상일체공))라고 하고 ”존재하는 형상은 모두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라고 했다고 해서, 있던 것을 쓸어버려 없는 것으로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상과 공을 그렇게 이해하면 단견(斷見)이고 또 다른 편견(偏見)일 뿐입니다. 말씀의 낙처(落處), 귀결점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견해, ‘무엇이 어떻다’고 여기는 잘못된 집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견해와 집착을 버리고 실상을 보면 어떤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그대로 부처의 성품이고 그대로 법신입니다. 또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듯이, 그대로 여래이고 그대로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억한다 해서 이치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남의 살림살이지 내 살림살이가 아닙니다. 스스로 직접 확인하고 깨달아 자신의 살림살이, 자신의 안목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이 그대로 여래이고, 그대로 대원각인 것입니다

이런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불교를 허무주의(虛無主義)로 착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없애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는 것이 공(空)이라고 오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있다’고 집착하니까 “공하다. 본래 그런 것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토끼뿔과 거북이털이 언제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토끼의 뿔을 자르고 거북이의 털을 뽑는 것이 공이 아닙니다. 토끼뿔, 거북이털은 본래 있었던 적이 없다고 알려주는 것이 공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생들 눈에는 토끼뿔, 거북이털이 엄연히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걸 다른 식으로 어떻게 표현하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합니다. ‘나’, ‘너’ 등등이 분명히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찬찬히 관찰해보면 이것과 저것이라고 구분할 만한 이것과 저것의 고정된 특성은 없습니다. 즉 무자성(無自性)입니다. 늘 그 자리에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그 ‘무엇’은 없습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상을 무엇인가? 인연 따라 생멸하는 모습을 좆아 갖가지 이름을 붙이지만 그대로가 법신이고 여래입니다. 즉 임시로 붙여진 갖가지 이름들이 여래와 법신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두고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본 바탕을 알면 갖가지 분별을 억지로 없앨 필요도 없고, 갖가지 차별을 억지로 없앨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이고, 중도(中道)입니다.

그러니 먼저 실상(實相)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고 여기고 있는 이 육신이 무상한 사대의 화합일 뿐임을 모쪼록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이고, 바른 이해입니다. 육신뿐 아니라 존재라 여기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오직 헛된 생각과 관념의 집착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가 정립되었을 때, 영가 스님께서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죄도 없고 복도 없고 이로울 것도 없고 손해될 것도 없는 경지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청곡 : 우리도 부처님같이(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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