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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40
법광(法光) 2020-09-27 00:04:07, 조회 : 996, 추천 : 0



1) 송나라의 불교
후진을 물리친 유유, 즉 무제(재위 420~422)는 동진 안제(재위 395~418)를 살해하고 공제를 옹립했다. 마침내 420년에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라 국호를 송宋이라고 정하였다. 무제는 내전에 재단을 설치하고 사문 도조(368~433)를 불러들였으며, 또 화성사化城寺에 행행하여 승려 1,000명을 도승하였다.

비행非行 천자였던 소제 (재위 422~424)를 폐하고 황위에 오른 문제(재위 424~453)는 '원가元嘉의 치治'라고 칭해질 정도로 통치를 잘해 안정된 시대를 이룩했다. 황제는 불교를 보호하고 구나발마의 명성을 듣자마자 교주자사로 명하여 그를 맞아들였다. 구나발마는 건강으로 들어와 기원사에 주석했다. 또한 무제에게 신임을 받았던 혜암에게 불법에 대해 질의하고 후에 불교 신자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 국정에 참여하여 '흑의黑衣의 재상'이라 불리던 혜림도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현담의리玄談義理를 중시하는 노장적인 불교가 성행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활약한 남조의 명문 귀족이자 시인으로 명성을 떨친 사영운(385~433)은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여산의 혜원 · 혜림 등의 승려와 친교를 맺고 『변종론辨宗論』을 저술하여 도생의 돈오의를 옹호했다.

송나라 조정이 불교 보호 정책을 펼치자 불타집 · 강량야사 · 구나발마 등이 역경사업에 종사했다. 앞에서 언급한 구나발마는 계빈 왕의 혈족으로 경율에 정통하고 사자국 · 도파국을 경유하여 건강으로 들어왔다. 그는 남림사에 계단戒壇을 설치하여 승니의 수계를 행했는데, 이는 중국불교사에서 계단의 시초라고 한다.

해로를 통해 광동성 광주에 도착하여 건강으로 들어온 중천축 출신의 구나발타라는 대승을 배웠고 문제 · 효무제(재위 453~464)로부터 두터운 예우를 받았다. 그는 『능가경』 · 『상속해탈경』 · 『잡아함경』 등을 번역했고 인도 유가행파瑜伽行派 경전의 일부를 처음으로 중국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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