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
2020-09-28 00:21:35, 조회 : 1,042, 추천 : 0 |
|
|
|
|
2) 제나라의 불교
송나라 후반 종실과 제왕의 분쟁이 일단락되자 번병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제왕의 수가 격감했다.
이 과정에서 한문 출신의 부장 소도성, 즉 고제(재위 479~482)가 실권을 잡는다. 마침내 479년 송나라 순제(재위 477~479)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齊나라를 건국했다. 황위에 오른 고제는 장엄사에 행행하여 승달의 『유마경』 강의를 들었다. 또 화림원에서 열린 팔관재계, 즉 재가신자가 하루 밤낮을 지키는 계법 행사를 열어 불교를 떠받들었다.
특히 무제의 장자 문혜태자와 둘째 아들 소자량(460~494)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이들 형제는 고승을 초빙하여 불법의 강설을 들었다. 소자량은 경 · 율 · 론의 강설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화엄재 · 용화회 · 도림재 등을 열었다. 또한 사신 · 방생 · 시약 등의 자선사업을 펼쳤고, 스스로 불경 71권을 손으로 썼다고 한다. 이 시대에도 외국 승려인 승가발타라가 들어와 『선견율비바사』를 번역했다.
양나라의 불교 제나라 5대 황제 명제(재위 494~498)는 제왕 20여 명을 차례차례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여 왕실의 결속을 약화시켰다. 악동 천자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폐제 동혼후(재위 498~501)가 명제의 정책을 이어받았으나, 호북성 양양에서 거병한 소연, 즉 무제(재위 502~549)에게 멸망당하였다. 나라를 세운 지 23년 만의 일이다.
양나라를 건국한 무제는 관대한 정치를 펼쳐 피폐한 백성의 삶을 회복시키는 데 진력했다. 관리 등용 책에서도 사士와 서민의 귀천을 명확히 분별하는 한편,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개인의 재능과 교양을 중시하는 방침을 표방하고 귀족층에 자기 혁신을 요구했다. 아울러 관제 개혁을 행하여 귀족제의 재편을 꾀하였다.
남조의 황제나 귀족 중에는 불교를 신봉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무제는 열렬한 신봉자였는데, 처음에는 유교와 도교를 연구하였으나 불교를 접한 후에 종교관이 바뀌었다. 만년에는 '불교에 탐닉하였다.'고 할 정도로, 자신을 삼보, 즉 불 · 법 · 승의 노예라고 칭했다. 무제는 504년 4월 8일 군신 · 사서 2만 명을 거느리고 봉불식을 거행할 때 도교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다고 선언한 후, 전국의 도관을 폐하고 도사를 환속시켰다. 수도 건강에는 대찰 700여 곳, 승니와 설법을 듣는 중생이 1만여 명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무제의 신앙은 불교를 정치 세계로 끌어들였고 그를 통해 이상 사회의 실현을 요구하는 수준까지 드높였다. 무제는 많은 사찰을 건립하여 대법회를 개최했다. 본래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에 소같이 살아 있는 짐승을 바치는 풍속이 있었는데, 불교의 불살생계에 반한다고 하여 과일 등으로 바꾸도록 조치했다.
무제의 깊은 신앙심은 사신 행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신은 글자 그대로 몸을 바쳐 부처님을 공양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목숨을 바치는 대신에 재물을 보시한다. 무제는 재위 중에 네 번이나 사신을 행하였다.
527년에 완성한 동태사에서는 승려와 재가자 5만 명이 모여 재물과 법을 펼쳐 공양하는 법회인 무차대회를 개최했다. 황제는 옷을 벗고 법의를 걸치고 몸을 바쳐 스스로 하나의 인간으로서 불사의 잡역에 종사했으며, 비구 · 비구니를 위해 불전 강의를 행하도록 명했다. 그러면 조정은 거액의 돈을 지불하여 몸을 바친 무제를 사들였고, 제후는 황궁으로의 귀환을 간청했다. 세 번에 걸쳐 간 청을 반복하면 황제는 환속되었고, 곧이어 승려와 출가자를 모아 대법회를 열었다. 무제는 황제보살 · 구세보살 · 보살천자로 불렸고, 일상생활에서도 출가자와 같은 엄격한 계율주의로 일관했다. 이러한 숭불태도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 후세의 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불교가 동란의 시대인 위진남북조 시대에 폭발적으로 교세가 확대된 까닭은 민중이 유교적 가치관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기 구제를 이국의 종교인 불교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불교의 역사를 전망하고 번역의 경위나 고승의 활동을 기록, 집성하려는 노력도 나타났다. 승우(445~518)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의 호교護敎적 문헌을 모은 『홍명집弘明集』과 경전 목록의 가장 중요한 자료인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을 저술했다. 혜교(497~554)는 승우의 저술을 기초로 67년부터 519 년까지 453년간의 고승 257명, 부전 243명의 전기를 모아 『고승전』을 편찬했다. 처음으로 중국에서 완성된 고승전으로 후에 편찬된 『속고승전』 · 『송고승전』의 모범이 되었다.
아버지 - 도신스님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