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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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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12:11:59, 조회 : 989,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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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摩尼珠人不識(마니주인불식)하니
여의주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여래장리친수득
如來藏裡親收得이라
여래의 창고 속에 친히 감추어 두었도다.
육반신용공불공
六般神用空不空 이요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아니하고
一顆圓光色非色
일과원광색비색이라
한 덩어리의 둥근 광명은 빛이면서 빛이 아니로다
정오안득오력(淨五眼得五力)은
다섯 가지 눈을 갖추고 다섯 가지 힘을 얻는 것은
유증내지난가측
唯證乃知難可測이라.
오직 증득해야 알 바요 헤아리기 어려움이라.
경리간형견불난
鏡裡看形見不難이나
거울 속의 형상이야 보기 어렵지 않겠지만
水中捉月爭拈得(수중착월쟁염득)가
물속의 달을 잡으려 한들 어찌 건질 수 있겠는가.
摩尼珠人不識(마니주인불식)하니
여의주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이 증도가는 한 구에 일곱 자를 원칙으로 했지만 간혹 이렇게 여섯 자로 한 구를 한 경우가 있습니다. 시의 형식에서 멋을 부린 것입니다. "摩尼珠人不識"이라한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굳이 일곱 자로 만들어본다면 어조사 兮(혜)자 같은 것을 넣으면 됩니다. "마니주혜인불식" 마니주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해도 상관없겠지요.
무엇이든 소원대로 이루어주는 마니주, 그런 신비한 구슬과 같은 마음을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또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갑니다. 정말 그렇지요? 다들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음에 대해 만분의 일 정도나 알고 있을까 말까, 마음의 능력을 만분의 일 정도나 활용할까 말까입니다. 불교 공부, 마음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 여의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그 활용도를 넓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교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마음을 더욱 폭넓게 쓰게 됩니다. 활용도가 자꾸 높아지는 것입니다.
불법을 배우지 못하면 이 신통방통한 구슬의 능력을 만분의 일밖에 쓰지 못하지만 부지런히 공부하면 천분의 일, 십분의 일로 점점 퍼센트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나아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처럼 완전히 깨달은 분들은 그 여의주의 성능을 100퍼센트 이해하고, 여의주의 능력을
100퍼센트 활용하신 분들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 마음을 몇 퍼센트나 알고 있고 몇 퍼센트나 활용하느냐가 그가 불교를 얼마나 알고 있고 불교를 얼마나 공부했느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됩니다. 일상에서 이런 신비한 마음을 활용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교리에 밝고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불교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탄허 스님께서 "모쪼록 宗旨(종지)에 밝아야 한다."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래장리친수득
如來藏裡親收得이라
여래의 창고 속에 친히 감추어 두었도다
여래장(如來藏)이란 여래가 있는 곳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본성을 말합니다. 진여(眞如) 여래(如來) 자성(自性) 일심(一心) 진리(眞理)가 다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낼 수 있는 마니주가 그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여래장’이라고 이름을 달리 하였지만 앞의 ‘마니주’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래 마음, 즉 불성(佛性)을 일컫는 말입니다. 갖가지로 발현하는 마음의 공능에 주목해 ‘구슬[주(珠)]’이라 표현하고, 그런 공능을 가진 마음의 본체에 주목해 ‘창고[장(藏)]’라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일체를 만들어 내고 또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구슬이 여래의 창고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청곡 : 가을 산(범능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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