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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21
普德華 2020-10-01 16:04:57, 조회 : 1,144, 추천 : 0
육반신용공불공
六般神用空不空이요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아니하고

여섯 가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공하면서 공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묘용이란 육근(六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눈[眼(안)]은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귀[耳(이)]는 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코[鼻(비)]는 냄새를 맡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혀[舌(설)]는 맛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피부[身(신)]는 감촉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뜻[意(의)]은 기억하고 판단하고 추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가 전부 나름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신통하고 오묘한 작용입니다.

뭐가 있어서 육근이 그런 능력들을 발휘하는 것인지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제각기 소임을 잘 수행하지만 정작 그렇게 하는 놈을 찾아보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공(空)합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인가?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전에서 엄연히 여섯 가지 능력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에 소금을 풀어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찍어서 먹어 보면 분명 짠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짠맛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짠맛이 없는 것인가? 눈에 포착되지는 않지만 짠맛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귀·코·혀·피부·뜻에서 발현하고 있는 능력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자를 찾으려면 찾을 수 없지만 분명히 그런 능력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불공(空不空)’이라 한 것입니다.

‘신통묘용’이라 해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어떤 초인적인 능력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비하고 오묘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런 작용들이 바로 신통묘용이란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간혹 보면 불교 공부를 하다가 초능력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것을 배우겠다고 절에 오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건 참 위험천만한 발상이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께서 말씀하신 신통묘용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초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불전을 읽다 보면 여러 성인들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들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목련존자도 신통제일이라고 칭송받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런 목련존자 역시도 외도들에게 폭행당해 순교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하는 식으로 신통을 마음껏 부렸다면 그렇게 돌아가셨을 리 있겠습니까?

불교도들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 신통은 그런 신기한 마술이나 요술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역시도 제자들에게 그런 초능력은 발휘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는 세상만사 온갖 현상들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능력,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갖가지 욕망과 집착을 버리는 능력, 그렇게 해서 뒤죽박죽 헝클어진 망상과 번뇌로부터 훌쩍 벗어나는 능력이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진짜 신통력입니다.

당나라 때 방온(龐蘊)이라는 유명한 거사가 계셨습니다. 그분이 석두(石頭) 선사를 찾아뵙고 대뜸 이렇게 물었답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굽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석두 스님이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았답니다. 그때 방거사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석두 스님이 방거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나를 만난 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그러자 방거사가 이런 게송을 지어 석두 스님에게 바쳤습니다.

일용사무별 유오자우해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두두비취사 처처몰장괴
頭頭非取捨 處處沒張乖

주자수위호 구산절점애
朱紫誰潙號 丘山絶點埃

신통병묘용 운수급반시
神通并妙用 運水及搬柴

날마다 하는 일 특별할 것 없으니
오직 저 자신과 마주칠 뿐이지요.
어느 것도 취하거나 버릴 것 아니고
어느 곳도 잘되거나 잘못된 곳 없습니다.

붉은색 자주색은 누가 붙인 이름일까?
세속이건 청산이건 티끌 한 점 없는데
그 가운데 신통하고도 오묘한 작용은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지요.

신통묘용이란 무엇인가? 산에 가서 나무해 올 줄 알고, 우물에 가서 물 길어 올 줄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씻고 싶으면 수도꼭지 틀어서 물을 받고 방이 어두우면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이 되겠지요. 지금 일상생활에서 하고 있는 그런 행동이 바로 신비하고도 오묘한 작용이란 것입니다. 누가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배고 고프면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잘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짜 신통이고 이것보다 뛰어난 신통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귀·코·혀·피부·뜻에서 발현하고 있는 일보다 신비한 작용은 없습니다. ‘누구야~“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소리를 틀어서 알고 ”네~“하고 대답할 줄 아는 자가 어디에 숨어있습니까?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안과 밖의 중간에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야~“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할 줄 압니다. 이보다 신통하고 신비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청곡 : 이뭐꼬(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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