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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42
법광(法光) 2020-10-01 17:59:25, 조회 : 1,062, 추천 : 0



3) 진나라의 불교
후경이 일으킨 반란은 양나라의 번영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경구(현재 강소성 진강시의 한 지역) 에 주둔하고 있던 한인 출신인 진패선, 즉 고조 무제(재위 557~559)가 거병하여 지방 할거 세력을 격파하고 후경을 제압했다. 경제(재위 555~557)를 옹립한 그는 557년에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라 국호를 진陳나라로 정했다.

무제는 즉위하자마자 전란으로 파괴된 사찰을 수리하고, 불아佛牙 사리를 받들어 승속귀천의 구별 없이 무차대회를 열고 친히 예배했다. 이 불아는 제나라의 승통 법헌이 우전에서 획득하여 종산 정림상사에서 소장하고 있었는데, 후에 고조의 손으로 넘어갔다. 고조는 인심을 수습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했다. 고조는 4회에 걸쳐 대장엄사에 행차하여 사신이나 무차대회를 열었다. 또한 경읍의 대승통이 된 보경(504~584)을 불러 중운전에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강설하게 했다. 뒤를 이은 문제(재위 559~566) · 선제(재위 568~582) 등도 고조처럼 불교를 받들었다.

이 시대에 활약한 승려로 천태종의 남악혜사가 있다. 법화의 이치를 터득한 후 호남성 남악(즉 형산) 에서 거주하여 남악선사라고 불렸다. 『대승지관법문』 · 『안락행의』 등을 저술하여 법화의 깊은 뜻을 논하였다. 외국 승려로는 서천축 출신의 월파수나가 있다. 우전의 승려 구나발타가 가지고 온 『승천왕반야경勝天王般若經』을 강주 흥업사에서 번역했다.


4) 신멸불멸과 이하 논쟁
동진 시대부터 유교와 도교 · 불교 사이에 사문불경왕자론, 신멸불멸, 인과응보의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불교 신도가 삼세인과응보의 이치를 설하여 인간의 정신은 불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유가는 사람이 죽으면 형신 모두 없어져 후세에 응보가 없다고 반박했다. 동진 시대부터 진행된 신멸불멸의 논쟁은 남조에서도 격렬하게 계속되었다. 426년에 죽은 송나라의 정도자가 『신불멸론』을 남겼다. 이어 혜림은 『백흑론』을, 하승천(370~447)은 『보응론』 · 『달성론』을 지어 모두 불교를 배척했다. 이에 혜원의 제자 종병이 『난백흑론』 · 『명 불론(신불멸론)』을, 안연지(384~456)는 『석달성론』을 발표하여 반론에 나섰다.

종병은 신의 불멸을 역설하는 동시에 성불의 과정을 고려하여 형태를 떠나 완성된 신을 윤회로부터 초월한 부처님의 법신과 동일시했다. 당시 한역된 『열반경』에 설한 불성론이 전해져 신은 불성과 혼동되어 수용되었다.

제나라 · 양나라 시대에 범진(450~510)은 『신멸론』에서 “신은 즉 형形이고, 형은 즉 신이다."라 는 형과 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원칙에서 형과 함께 신도 죽는다고 주장하여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부정 했다. 이 논의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제나라의 소자량은 많은 승려들에게 이를 논의시켰고, 법운은 양 무제에게 의견서를 보내 왕공, 귀현에게 인과응보설 부정에 대한 비판설을 제출토록 요청했다. 황제 스스로도 마음의 분석을 통해 무명과 상즉相卽하는 신명神明의 불멸을 인정하고, 신명에 의한 성불을 설했다. 범진의 『신멸론』에 대해서는 그의 인척인 소침(476~512)과 사학가로 저명한 심약(441~ 513)이 『난신멸론難神滅論』을 지어 반박했다.

시멸불멸 논쟁과 더불어 도교와 불교 사이에 『이하론夷夏論』이 전개되었다. 467년 송나라 도사 고환은 『이하론』을 저술하여 도교와 불교 양자의 '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하지만 습속 · 풍속은 이(외국)와 하(중국)가 결정적으로 다르며, 열악한 이夷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한 교법인 불교는 중국에 시행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불교 측의 반론이 나왔는데, 승민의 『융화론』은 이夷인 천축 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으로서 천축에서 출현한 불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수하다고 논하여, 중국 본위의 이하론을 역전시켰다.

한편 북조에서는 520년에 궁정에서 도교 · 불교의 논쟁이 벌어졌다. 불교 측에서는 담무최가, 도교 측에서는 강빈이 참여하여 부처님과 노자의 출생 전후에 관한 내용을 두고 토론했다. 남북조 시대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 사이에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나 당시의 일반적인 풍조는 삼교 일치였다.





가을산 - 범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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