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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16:09:06, 조회 : 977,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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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顆圓光色非色
(일과원광색비색)이라
한 덩어리의 둥근 광명은 빛이면서 빛이 아니로다.
이것 역시 여의주, 즉 마음의 작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음이 눈. 귀. 코. 혀. 피부. 뜻의 육근을 통해서 작용하는 측면을 '육반신용(六般神用)'으로 표현했다면, 그런 여섯 가지 작용의 바탕이 되는 하나의 근본 마음자리를 '일과원광(一顆圓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한덩어리의 원만한 광명이 따로 있고, 여섯 가지 신통한 작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근본과 지말, 본체의 작용이라는 구분에 따라 표현을 달리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한 덩어리 둥근 광명은 빛깔이면서 빛깔이 아니라"라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근본인 마음의 실상은 무엇인가? 마음이 육근을 통해 여섯 가지 작용을 드러내지만 그 여섯 가지 작용이 곧 마음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슬을 예로 들자면 구슬이 상황에 따라 붉은색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붉은색이 분명 구슬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저 구슬은 붉은 색이다."라고 단정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구슬은 상황에 따라 다시 파란색, 노란색 등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익혀온 습관과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성격이 각양각색이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건에 따라 감정과 생각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일로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흔히 "마음이 기쁘다.", "마음이 슬프다."는 등등의 말을 합니다. 영가 스님의 말씀에 따라 이것을 되돌아 보자면, 마은이 기쁘거나 슬픈 것이 마음의 본모습은 아닙니다.
이처럼 옛 성현들의 말씀은 한번 듣고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에 작용시켜 깊이 음미해보고 사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모여 이런 문젤르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참 좋습니다. 그렇게 할수록 성현들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하나 하나가 뜻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준느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혜와 자비, 평화와 행복, 공덕과 자유도 모두 우리 마음속에 갖춰져 있습니다. 이처럼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이 잇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고려청자를 요강 단지로 쓰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지금 각자 여의주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 공부란 무엇인가? 바로 그 여의주인 마음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이해하고, 그 무한한 능력을 한껏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교 공부입니다.
정오안득오력(淨五眼得五力)은
다섯 가지 눈을 갖추고 다섯 가지 힘을 얻는 것은
앞에서 불교 공부란 마음의 불가사의한 공능(功能)을 이해하고, 무한한 능력을 한껏 활용해 자유와 행복을 만깍하면서 사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마음에 갖춰진 불가사의힌 능력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가 스님은 일단 오안(五眼)과 오력(五力)을 거론했습니다.
오안(五眼)은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법안(法眼) · 불안(佛眼)을 말합니다. 육안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일부로서의 눈을 말합니다. 즉 사물을 보는 눈을 육안이라 합니다. 그러면 천안은 무엇인가? 육안은 한계가 있습니다. 즉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받습니다. 과거나 미래의 사물은 볼 수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장애물이 앞을 가리고 있으면 그 너머의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천안이란 그런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육신통(六神通)에도 천안통(天眼通)이 있지요? 육안 밖에 없는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실로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초능력이고, 하늘나라 사람들
이나 가질 법한 신통방통한 능력입니다. 혜안이란 무엇인가?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입니다. 육안과 천안은 인연 따라 생멸하는 현상을 존재의 생멸로 여깁니다. 그 존재의 실상이 공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혜안이란 그 실상을 꿰뚫어 눈앞에 펼쳐진 현상들을 꿈처럼 환상처럼 물거품처럼 그림자처럼 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법안이란 무엇인가? 공한 실상을 깨달아 지혜를 갖췄다 해도 중생을 이롭게 할 줄 모른다면 그는 소승(小乘)이고 성문(聖聞)입니다. 공한 가운데 갖가지 방편도(方便道)를 시설해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고 그들의 아픔을 덜어 줄 수 있어야 비로소 대승(大乘)이고 보살(菩薩)입니다. 그렇게 중생에게 적절한 방편도를 시설할 줄 아는 능력을 법안이라 합니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보살이 끝없이 노력하며 방편도를 시설한다지만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중생의 근기를 파악하는 능력, 근기에 알맞은 방편을 시설하는 능력, 그 방편으로 중생을 잘 이끄는 능력 등에 있어서 아직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완전한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셨기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뜻대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부처님의 눈, 불안이라 합니다.
또한 불안(佛眼) 즉 부처님의 눈을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는 눈'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무학(無學)대사께서 이성계에게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라고 하셨지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누가 자주 험담을 늘어놓을 경우, 그가 헐뜯는 사람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더 못날 때가 많지요. 또 칭찬을 자주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칭찬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칭찬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처가 되어야 세상만물을 부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완전히 부처님이 되진 못하더라도『법화경』이나『화엄경』을 배우고 선불교의 궁극을 탐구하면서 깊이 사유하다 보면 모든 사람을, 나아가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부처님으로 보는 힘이 조금씩 생기게 됩니다. 100퍼센트 완전한 부처님의 눈을 갖추진 못하더라도 이해
하고 노력하고 깨닫는 만큼 조금씩 생기게 됩니다.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관이 눈이듯이, 우리 인생사에서도 안목(眼目)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가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 어떤 견해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이 바뀌기 때문입니다.그러니,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바른 안목을 갖춰야 합니다. 그 안목을 세분하자면 위에서 언급했듯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마니주와 같은 마음에 갖춰져 있는 그 오안을 청정하게 하여 활용해야 합니다.
'오력(五力)'은 신력(信力) · 정진력(精進力) · 염력(念力) · 정력(定力) ·혜력(慧力)을 말합니다. 이 다섯 가지 힘을 갖춰야 불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력, 즉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은 불교 공부의 첫걸음이고, 마지막 성불할 때까지도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불법에 믿음을 일으켰더라도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 살림살이가 되지 않습
니다.
믿음이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믿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리라고 스스로 확신했다면 어찌 당장 실천에 옮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가르침을 실천할 때도 흔들림 없이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둘째 정진력, 즉 정진의 힘입니다. 기도를 하건, 염불을 하건, 독송을 하건, 간경을 하건, 사경을 하건, 참선을 하건, 보살행을 하건, 불사를 하건, 포교를 하건 모두 이 정진력이 필요합니다. 치밀하게 뜻을 다잡아 오로지 한길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합니다. 그런 힘이 있어야 불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염력입니다. '염(念)'은 기억, 집중된 생각을 뜻합니다. 또한 정진할 때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올바른 이치를 되새겨 일거수일투족에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힘이 없게 되면 불현듯 헛된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게 됩니다. 넷째는 정력, 선정의 힘입니다. 순간순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망상과 감정에 휩쓸리는 일이 잦아들고 고요한 안정감이 찾아들게 됩니다. 세월이 가면서 그 고요함과 편안함이 쌓이고 쌓이면 그 힘이 실체화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또 어떤 일을 겪건,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선정의 힘입니다. 그런 선정의 힘이 쌓이고 쌓여 궁극에 다다르면 사실 그대로 실상을 보고 아는 지혜, 부처님의 지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힘을 얻어야 불도를 성취하는 것인데, 영가 스님은 마니주와 같은 우리 마음에 이미 그 오력이 갖
춰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신청곡 : 경허선사(鏡虛禪師)-홍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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