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44
법광(法光) 2020-10-05 23:35:26, 조회 : 972, 추천 : 0



2) 운강·용문 석굴
북조의 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상징물은 석굴 사원의 조상造像이다. 돈황 막고굴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더욱 유명하다.

북위 문성제 시대가 되면 불교는 세력을 떨쳐 국교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진다. 당시에 사문통이 된 담요는 선제 공양을 위해 석굴 사원의 조영을 주청하고, 수도 평성(현재의 대동)의 서쪽 교외인 운강에 거대한 석굴을 조영했다. 493년에 낙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동서로 약 1킬로미터에 걸쳐 수십 개의 굴이 조성되었다.

수도를 낙양으로 천도하자 운강 석굴의 조영은 일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불교를 존숭한 효문제는 수 · 당 시대에 걸쳐 조영되던 석굴 개착을 낙양 남쪽 교외의 용문에서 계속했다. 494년부터 작은 굴을 조영하기 시작하여 501년에 선무제가 칙령을 내려 부친과 모후를 위해 굴 두 개의 조영을 명했다. 이후 선무 제와 제실을 위해 굴이 계속해서 조영되었다. 용문 석굴은 당나라 때 전성기를 맞아 전대부터 누계 2 천 곳이 넘는 석굴감실이 만들어졌다. 석굴의 위용을 통해 황제와 귀족이 열광적으로 신봉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3) 북제의 불교
북위 말 산서성 진양에 거점을 둔 고환(496~547)은 세력을 잡고 업(현재의 하남성 임장현)으로 천도하여 효정제(재위 534~550)를 옹호했다. 반면 북변에 설치해 유목민과 대처하는 육진의 하나인 무천진에서 남하한 우문태(507~556)는 장안에서 효무제(재위 532~534)를 옹립해 동서로 대치하는 형국을 이루었다. 이를 동위와 서위라고 부른다. 고환이 죽고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고 양나라로 투항한 후인 550년 고양은 동위로부터 선양을 받아 북제(550~577)를 세우고 황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문선제(550~559)이다.

문선제는 신라 왕자 김자장에게 보살계를 준 법상(567~645)을 국사로 초빙하여 『열반경』을 강설케 했다. 또 『열반경』의 주석을 완성한 담연(516~588)을 떠받들어 소현통昭玄統에 임명했다. 인도에서 전해진 선법을 터득한 승조(480~560)에게 조서를 내려 수도에 운문사를 짓게 하고, 도살을 금지 하며, 인민들로 하여금 한 달에 여섯 번, 1년에 세 번 재계토록 하였다. 551년에 소현십통을 두고, 『십지경론』 강설에 뛰어난 법상(495~580)을 대통에 임명했다. 승관 관할 아래 승니 4백만여 명, 사찰 4만여 곳이 있었다고 한다. 『속고승전』의 저자 도선은 “불교가 동쪽으로 와서 이곳에서 성행하였다.”고 할 정도로 불교가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이외에도 고승으로 정토교의 제일인자 담란 (476~ 542), 지론종의 개조이자 율종의 중흥조인 혜광(468~538), 천태종의 창시자 혜문선사 등이 있다. 외국승 나련제야사는 『월등삼매경』 · 『대비경』을 번역했다.





우리 인생은 바람이어라 - 도신스님



  이전글 대보적경 제38권 - 12. 보살장회 ④/4) 여... 법성화 2020-10-07
  다음글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25 普德華 2020-10-05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