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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5 20:02:24, 조회 : 1,04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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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불교 종파의 성립
1) 여러 불교 종파
위진남북조 400년의 연구를 거듭 축적한 끝에 중국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종학宗學의 체계가 갖추어졌다. 먼저 보법종普法宗을 주장한 신행(540~594)은 말법을 의식하고 범부를 구제하려면 보법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삼계교를 제창하여 화북의 민중에 침투했다. 적극적인 구도정신에 서서 삼계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실천성이 충만한 교설로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나라 때는 장안에 무진장원이라는 대부 영리기관을 경영하여 종종 정부의 탄압을 받아 교세가 쇠퇴하였다.
삼론종 조사 길장(549~623)은 남북조 시대에 구마라집이 번역한 『중론』 · 『십이문론』 · 『백론』의 강구를 통해 발달한 삼론의 교학을 대성하여 『삼론현의』를 저술했다. 그는 『화엄경유의』 등 주요한 대승 경전을 주석하여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 초기의 불교학의 한 정점을 이루었다. 한편 지의는 남악혜사로부터 교설을 받아 강남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천태사상을 만들어 냈다. 그의 설은 제자 관정이 『법화문구』 · 『법화현의』 · 『마하지관』으로 정리했고, 절강성 천태산 국청사를 본거지로 여러 지방에 전파되었다.
당나라 초에 천축으로부터 수많은 범본을 가지고 온 현장은 황제의 비호와 다수 학승의 협력을 얻어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을 시작으로 『유가사지론』등 다수의 경전을 번역했다. 인도에서 발달한 유가유식의 교학이나 논리학도 현장에 의해 중국에 퍼졌다. 그의 교학은 문제인 자은 대사라 불리는 규기(632~682)에 의해 법상종으로 대성되어 일시 융성했으나 화엄과 선종의 대두로 교세가 쇠미해졌다.
법상종의 유명한 인물로 신라 출신인 원측(613~696)을 빼놓을 수 없다. 15세 때 중국 장안으로 유학을 떠나 법상 · 승변에게서 유식론을 배웠고 후에 현장의 문하로 들어갔다. 당시 법상종의 정통으로 자처하던 규기의 자은파와는 경전 해석에서 의견을 달리했다.
불교 교단의 강화 · 발전에는 중국화된 계율의 역할이 지대했다. 당나라 초에 법려(569~635)의 상부종, 도선(596~667)의 남산종, 회소의 동탑종 등의 율종이 성립했다. 특히 『사분율』을 기본으로 하는 도선의 학파가 주가 되어 율학의 전통을 쌓았다. 도선은 『사분율행사초단도경』을 저술하여 수계 · 지율의 제도화에 힘쓰는 한편, 『광홍명집』 · 『속고승전』 등 호법 · 사전 · 목록을 찬술하여 교단의 사회적 지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당나라 중기 이후 선종이 번창할 때 형계담연(711~782)이 나타나 천태 중흥의 조祖로 떠받들어졌고, 화엄의 교설도 집어넣어 정비에 노력했다. 감찰어사를 지낸 인물로 담연에 사사한 양숙은 『천태지관통례』를 저술했다. 그는 유가의 궁리진성과 천태의 지관은 상통하고, 인성의 근본을 회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화엄종에는 4조 징관(738~839)이 『화엄경소』 · 『수소연의초』등 다수의 저작을 남겨 황실에 접근하여 강경에 힘썼고, 천태나 선의 사상을 섭취하여 화엄교학을 시대에 적응시켰다. 그의 고제 규봉종밀(780~841)은 화엄과 선을 융합하고 일치시키려는 선교일치론을 주장했다. 화엄경의 해석에도 선의 사상을 넣어 『선원제전집도서』 · 『선문사자승습도』를 찬술했다. 그는 중국 선종의 법계를 정리하여 사상의 특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힘썼다. 또한 『원인론』을 저술하여 불교의 여러 종파를 통일하려고 시도했을 뿐 만 아니라 불교와 유교·도교 삼교의 조화를 지향했다.
화엄종의 이조 지엄(602~668)의 제자 중에는 신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화엄을 배운 의상(625~702)이 있다. 후에 귀국하여 독창적인 화엄을 창조하여 해동화엄의 초조라고 불린다.
한편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희구하는 정토교는 북위 담란(476~542)의 『정토논주』에 영향을 받아 도작(562~645)의 『안락집』으로 전개됐으며, 선도(613 ~ 681)에 이르러 꽃을 피워 사회 각층에 침투했다. 그의 『관무량수경』을 비롯한 저작은 실천 법문으로써 속세의 신도 에게 널리 전파되었고, 후에 동아시아 각지에 널리 퍼지는 기초가 되었다.
정토교의 법조는 『정토오회염불송경관행의』 등에 의한 염불법을 선포하여 일 반 민중에 수용되었다. 당나라 중기 이후 재가신자가 하루 밤낮에 한하여 준수해야 할 8종의 계를 받는 팔관재회가 유행하여 대규모의 만승재도 성대하게 열렸으며, 사람들도 향화사 · 구품 왕생사 등으로 결사를 조직하여 불사를 행한 결과 상호 부조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지엄 · 법장(643~712)의 『화엄경』을 근거로 완성된 화엄종은 측천무후의 두터운 비호를 받아 당나라 전기 불교학의 정점을 이루었다. 법장의 『화엄경탐현기』 등은 지식인에게 고도의 형이상학으로 받아들여졌다.
화남의 소주 조계산 보림사에 주석했던 육조혜능 이후, 가장 중국적인 불교라 할 수 있는 선종이 급속히 흥성하여 각지로 퍼졌다. 혜능의 교설은 『육조단경』으로 편집되어 돈오 · 견성을 중핵으로 하는 계 · 정 · 혜의 삼학 일체를 설하여 남종선의 비조가 되었다. 그의 제 자 하택신회는 신수(606~706)의 점오설을 북종이라 하여 배격하고, 혜능의 설을 선의 주류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마조도일로 이어졌다.
사상사적으로 인재를 배출하며 각 종파들이 발흥한 당나라 중기에 비해 후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종파가 쇠락해 사상적인 발전은 중단되다시피 한다. 다만 선종계 종파들만은 이 시기에 본격적인 종파의 형성과 분파를 이루어 '오가칠종'이라는 여러 종파의 완성을 이루었다. 일부 승려들의 노력으로 화엄종 내지 정토종과 교리상의 융화를 모색하거나 선과 염불의 결합이라는 실천적 · 민중적 모습으로 전환 되었다.
무상계(無常戒) - 김성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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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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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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