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49
普德華 2020-11-11 09:41:00, 조회 : 1,003, 추천 : 0
각즉요불시공(覺卽了不施功)이라
깨달으면 곧 다 끝나고 더 이상의 노력을 베풀지 않는다.

궁극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란 이치를 알면 그것뿐이지, 그외에 달리 다른 노력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럼, 깨닫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가? 성품에 맡겨 소유자재하고 인연을 따라 자기 분수에 맞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애쓸 일이 없습니다. 꼭 이래야 된다, 꼭 저래야 된다고 하는 것들은 방편입니다.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는 근기들을 깨우치기 위해 좋은 의도로 교묘히 시설한 방편일 뿐입니다. 실상에서 보면 사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치를 알면 그뿐입니다. 진리(眞理)란 참다운 이치입니다. 세상사에 대한 참다운 이치, 인생에 대한 참다운 이치, 그것을 깨달으면 그뿐입니다. 이것이 삶이구나, 이것이 안생이구나, 이것이 걸어가야 할 길 즉 도(道)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법(法)이란 글자는 물 수(水) 변에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갑니다. 아래로 아래로 낮은 곳을 향해 갑니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 조작이 없는 것, 그것이 법입니다. 그런 이치를 깨달아 무리없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불교입니다.


일체유위법부동
一切有爲法不同이로다
일체 유위의 법은 모두가 다 차별되고 다르니라.

앞에서 불시공(不施功), 공을 베풀지 않는다, 공을 들이지 않는다, 육바라밀을 위시한 갖가지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그런 것들은 모두 유위(有爲) 즉 조작하는 것,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열반과 해탈은 무위(無爲)이지 유위가 아닙니다. 만들어진 것은 무상하고 결국은 파괴됩니다. 그런 유위법을 진리라 여겨 집착한다면 그건 부처님의 가르침과 아득히 멀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했을 때는 우리처럼 이렇게 《증도가》도 배우고, 《금강경》《천수경》도 독송하고, 절도 하고, 염불도 하고, 주력도 하고, 참선도 하고, 육바라밀도 닦고, 용맹정진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꼭 그런 방법을 써서 정진해야만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깨닫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실상을 알고 보면 그것과 깨닫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과거 깨달은 분들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육조 혜능대사 같은 분은 나무 팔러 장에 갔다가 《금강경》한 구절 듣고 바로 깨달았지 않았습니까? 알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공력을 들여야 된다는 조건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은 분들 중에 혹자는 지혜도 날카롭고 언변도 유창해 포교를 잘 하고, 복이 있어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고 살림살이도 넉넉하며 수하에 수천 명의 대중을 거느리기도 합니다.

또 혹자는 지혜도 아둔하고 언변도 시원찮아 포교를 못하고, 복이 없어 옆집에 사는 사람조차도 그의 이름을 모르고 살림살이도 궁핍하며 대중은커녕 제자 한 명도 없이 외롭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깨달음의 경지가 다른가? 그건 아닙니다. 그 자리는 누구에게나 평등(平等)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는 안됩니다. 사람마다 생긴 것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해서 그 본래심(本來心), 근본마음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본래 마음자리는 누구나 같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똑같습니다.

또 역으로 본래 마음자리가 똑같다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고 젊은이는 젊은이고 늙은이는 늙은이입니다. 그러니 근본 마음자리는 평등하여 차이가 없지만 현상으로 드러나는 유위의 세계는 그 법이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같은 면도 알아야 하고, 다른 면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하나에 편중되면 곤란합니다. 만법을 다르다고만 주장해도 어리석은 사람이고, 덮어놓고 같다고만 주장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방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사람에겐 개똥을 쥐어줘도 약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산삼을 쥐어 줘도 독입니다. 갖가지 수행과 공력이 실상을 깨닫기 위한 방편인 줄 알고 유위인 줄 알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행과 공력 자체를 절대적 진리라 여기거나 무위법이라 여기면 그 사람은 끝내 참다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무위의 열반과 해탈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청곡 : 수행의 나무(정율스님)


  이전글 대보적경 제39권-12. 보살장회 ⑤/4) 여래... [1] 법성화 2020-11-12
  다음글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57 [1] 법광(法光) 2020-11-11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