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오월의 불교
오월의 창시자 전류(재위 907~932)는 황소 반란군의 절강 지역 침공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907년에 후량 태조 주전충으로부터 오월 국왕에 봉해졌고, 978년에 오월왕 전숙(재위 948~978)이 송나라에 귀순할 때까지의 72년간 전란없이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다.
전숙은 제일의 불교 신봉자로 8만 4천 철탑에 각기 인쇄된 '보협인탑다라니'를 넣도록 지시했다. 항주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찰 수백 곳을 건립했고, 정토 · 천태 · 율종 · 선종 · 화엄종 등도 중흥되었다.
천태종의 나계의적(919~987)이 전란으로 잃어버린 천태종의 논조를 구하고 싶다고 전숙에게 청하자, 왕은 사신을 고려 · 일본에 파견하여 이를 구해 오도록 했다. 고려는 『천태사교의』의 저자 제관(?~970?)에게 여러 부의 논소를 가지고 나계의적에게 가도록 조치했다. 중국에 들어간 제관은 의적과 함께 10년간 천태학을 연구했다.
④ 민의 불교
민은 왕조(846~898) · 왕심지(재위 909~925) 형제가 복건에 세운 일종의 정복국가다. 태조 왕심지는 불교를 보호한 황제로 504권의 대장경을 청산에 납부했다고 한다. 그는 “북에는 조주가 있고 남에는 설봉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성을 떨친 선종의 설봉의존(822~907)에게 귀의해 가르침을 받고 민을 불교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태종도 불교를 존경하고 2만 명을 승려로 인정했다. 당시 선종이 가장 성행하여 청량문익(885~958)은 남당(937~975) 왕에 부름을 받아 금릉(현재의 남경)의 청량사에 주석하여 법안종을 열어 선종 5가 중 일파를 확립했다. 문익의 제자 천태덕소(891~972)와 그의 제자 영명연수(904~975) 는 충의왕 전숙의 존경을 받고 선과 정토를 융합 · 통일시켰다.
오대 시대에 불교학의 진전이 특별하게 눈에 띈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는 의초의 『석씨육첩』과 초기 선종 사서인 『조당집』이 완성되었다. 본서는 위앙종펨이나 조동종의 옛 자료, 신라 · 고려 출신 선승의 전기 및 많은 시게詩偈를 볼 수 있는 점에 특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