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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59
법광(法光) 2020-11-15 23:13:07, 조회 : 1,030, 추천 : 0



10 송나라의 불교
후주 세종이 죽은 이듬해인 960년, 거란과 괴뢰정권인 북한(951~979)의 연합군이 북변에 침입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총사령관 조광윤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국도 개봉을 출발했다. 개봉에서 북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진교역에 도착한 그는 정변을 일으켜 후주의 공제(재위 959~960)로부터 선양을 받아 송나라를 건국했다. 이를 북송이라 한다. 북송은 이후 1127년 금나라의 침공을 받아 휘종(재위 1100~ 1125)과 흠종(재위 1125~1126)이 포로가 되는 정강의 변으로 멸망하고, 강남으로 피난 한 한족은 강왕 조구(즉 고종, 재위 1127~1162)를 추대하여 남송을 세웠다.


① 불교 교단
후주 세종의 배불로 타격을 입은 불교는 송나라에 들어와 황실의 보호 아래 다시 부흥했다. 당나라 때는 출가와 득도의 법적인 구별이 없었던 데 반해 송나라 때는 이를 확연하게 구별했다. 도승은 관아에서 동행童行의 경업經業을 시험하고 합격자에 도첩을 지급하는 시경도승, 황제나 황후, 황족의 탄생일이나 기일에 시험을 치러 도첩을 지급하는 특은도승, 출가 허가증인 도첩을 파는 행위인 진납도승의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신종(재위 1067~1085) 이후에는 성명을 기재하지 않은 공명도첩도 발행되었다.

시험은 북송에서는 『법화경』을 독송했고, 남송에서는 『대반야경』의 염경 혹은 독경이었다. 이들 승니의 관할은 송나라 초부터 신종 원풍(1078~1085) 이전까지는 공덕사, 그 이후부터 북송 말까지는 홍려시, 남송 시대에는 사부였다. 북송의 중앙 승관은 수도 개봉에 좌우가 승록사를, 서경 하남부에도 승록사를 설치하고, 그 밑에 승록 부승록 · 강경수좌 · 강론수좌, 승록 밑에 서무를 담당하는 감의를 두었다. 남송은 강경수좌 · 강론수좌는 폐지하였고, 정원 외의 승관인 액외감의가 증가되었다. 이 직책의 설치는 공명도첩의 발행이나 자의 · 사호의 남발로 인해 업 무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방 승관은 당나라의 제도를 계승하여 각 주에 관내승정 1명을 두고, 그 밑에 부승정 · 승판을 배치했다. 그 후 온주 · 항주 · 태주 · 호주 · 처주 · 명주 등지에서는 승정 위에 도승정 을 설치했다. 이 외에 오대산과 천태산에는 특별한 승관을 설치했다. 오대산에는 이미 당대에 십사승장이 설치되었는데, 송나라 때도 진용원에 이 관직이 설치되었다.

북송 시대의 사찰은 4만여 곳, 승려는 진종(재위 998~1021) 연간에 비구 39만 7,615명, 비구니 6만 1,239 명이었고, 남송 초기는 승니 20만 명이었다. 이는 공식적인 숫자로, 도첩의 남발로 인해 1125년에는 승려와 도사의 수를 합해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마음으로 가는 길 - 김무한

眞虛性宗 [2020-11-16]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모레(수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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