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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82
법광(法光) 2021-01-19 22:18:15, 조회 : 996, 추천 : 0



Ⅴ. 티베트불교사
티베트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른 적이 있다. 라마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계승된 불교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티베트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사람들의 눈에 비친 티베트불교의 모습이다. 그러나 티베트불교는 어느 나라보다 순수하고 엄밀한 인도불교의 전통을 계승해 왔기에 오늘날 더는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티베트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티베트인들이 살아온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티베트의 역사는 티베트불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티베트와 티베트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티베트불교사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1. 전전기前傳期
1) 불교의 전래
티베트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후 433년경 최갤 왕조의 28대 왕 하토 토리짼 때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33대 왕인 쏭짼감뽀(581~649) 때로 본다.

594년에 등극한 쏭짼감뽀 왕은 티베트를 통합하여 완전한 통일 왕국을 건설했다. 말년에 왕자 궁쏭궁 짼은 당나라로부터 문성 공주를 왕자비로 맞이했다. 하지만 왕자가 일찍 죽자 문성 공주는 646년에 노왕과 재혼했다. 공주는 당나라의 불교를 티베트에 전하고, 먼저 간 남편을 위해 라 모체小招寺를 건립했다.

쏭짼감뽀 왕은 된미쌈 보따를 인도에 파견하여 인도 글자를 본떠 티베트 글자를 만들게 하고, 문법을 정립하게 했다. 이것은 불교 경전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왕은 또 네팔의 브리꾸띠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 왕비는 문성 공주의 협력을 얻어 툴당大招寺을 세웠다.

그 뒤 티데쭉째(703~754) 왕 때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왕은 당나라의 금성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는데, 열렬한 불교 신자인 공주의 청을 받아들여 라모체와 툴낭을 중수하고, 새롭게 사원을 세우며, 다섯 명의 젊은이를 중국에 보내어 불교를 배우게 했다. 이들이 『십선경十善經』등의 불전을 티베트에 전했다고 한다.

다음 왕인 티쏭데짼(742~797)은 20세가 되자 불교 부흥정책을 펼칠 것을 결심했다. 바셀낭을 네팔에 파견하여 당시 그곳에 와 있던 날란다 승원의 학장인 샨따락쉬따를 초청했다. 그러나 조정의 반대 등에 부딪혀 샨따락쉬따는 네팔로 돌아갔다. 그 뒤 숭불파가 힘을 얻어 사정이 호전되자 왕은 다시 바셀낭을 파견하여 샨따락쉬따를 초청했다.

샨따락쉬따가 두 번째로 티베트에 들어올 때 우드야나의 유명한 밀교 수행승 빠드마삼바바와 동행했다. 빠드마삼바바는 티베트에 들어와 뵌교도의 배불파를 굴복시켰다. 샨따락쉬따는 닥말에 깨끗한 땅을 선택하고 빠드마삼바바가 지진地鎭 의식을 거행하여, 775년에 시작해 12년 만에 쌈예 사원을 완성했다. 777년에 본당인 우째가 완성되자 낙성을 경축하는 법요식에서 설일체유부의 계율을 수지한 열두 명의 승려를 초청하고, 샨따락쉬따가 계사가 되어 바셀낭을 포함한 여섯 명의 티베트인들에게 구족계를 주었다. 이것이 티베트 최초의 출가 승단이다. 또 티 베트의 우수한 젊은이를 선발하여 범어를 가르쳐 국가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불전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왕은 왕비와 고관들에게 숭불의 서약을 하도록 했다.





구절초 꽃 - 범능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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