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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84
법광(法光) 2021-01-23 22:53:18, 조회 : 1,034, 추천 : 0



2. 후전기後傳期
불교 부흥운동은 동쪽의 청해 지방과 서쪽의 아리, 중앙티베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것은 계율을 부흥하고 승가를 재흥하는 토번 시대 정통 불교의 재건을 의미했다. 계율의 부흥은 11세기 초 티베트 동부와 서부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동부의 캄 지방에 전해진 계율의 전통을 저지율低地律이라고 하는데, 중심인물은 공빠랍쌀이었다. 서부의 아리 지방에 전해진 계율의 전통을 고지율高地律이라고 하는데, 중심인물은 린첸상보(958~1055)와 옥 렉빼쎄랍이었다.

이 시기의 불교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데, 전전기 불교의 특징을 국가불교라고 한다면 후전기의 불교는 종파불교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인들이 불교를 재해석하면서 티베트불교의 성격이 종파불교의 형식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종파불교는 인도의 부파불교와 마찬가지로 교학과 수행 측면에서 대 립하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티베트불교의 한 특징인 정교일치의 문제와 맞물려 종파 간의 갈등이라는 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1) 까담빠
불교 교단이 어느 정도 정비되었을 때 아리의 왕 장춥외는 인도 비끄라마쉴라 승원의 대학승 아띠샤(982~1054)를 티베트에 초청했다. 아띠샤는 벵골의 어느 왕가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다섯 가지 학문에 통달했고, 『정리일적』을 한 번 듣고 외도의 논리학자를 굴복시켰다. 29세에 보드가야에서 대중부의 계율을 수지하고, 디뺨까라스리즈냐란 법명을 받았다. 그 후 대소승의 논서를 배웠고, 셀링빠로부터 보리심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무형상유식설로 유명한 라뜨나끄라샨띠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다.

1040년 말에 인도를 떠난 아띠샤는 다음 해에 네팔에 이르러 1년 정도 머물고, 1042년 토딩에 도착했다. 여기서 아띠샤는 대역경승 린첸상보를 만났다. 린첸상보는 인도와 카슈미르에서 약 17년간 유학하면서 다수의 범어 경론을 티베트어로 번역하여 불교부흥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아띠샤는 린체상보의 도움으로 티베트인들을 위해 불교를 배우는 기본적인 수행 차제로서 소승, 대승, 금강승을 아우르는 『보리도등론』을 설했다. 이 『보리도등론』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대승의 보살행을 실천하고, 아울러 딴뜨라 불교의 수행으로 보다 깊은 깨달음의 길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모든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키움으로써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증득하는 보리심을 키우고, 이타의 방편과 반야의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을 쉼 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2년 후 귀국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귀국하지 못하던 차에 중앙티베트에서 돔뙨 갤왜중내(1005~1064)가 찾아와 중앙티베트로 갈 것을 청하자, 요청을 받아들였다. 쌈예에서 세친의 『섭대승론』을 낙초의 번역가와 번역했다. 옥 렉빼쎄랍의 초청으로 라싸의 튈낭으로 가서 청변의 『중관사택염』등을 번역하고, 『개보협론』 등을 저술했다.

아띠샤의 불교철학적 입장은 티베트인들을 위해 설한 『보리도등론』에 잘 나타나 있다. 『보리도등론, 은 68개의 게송에 불과한 작은 논서이지만, 11세기 이후 티베트불교에 준 영향은 크다. 또한 『자주自註」에서는 논서를 성문장, 바라밀장, 비밀진언장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불교를 수학하는 사람들이 배우고 닦아야 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논술했다. 아띠샤는 중앙티베트에서 13년 동안 머물면서 역경과 포교에 힘쓰다가 라싸 근교의 녜탕에서 입적했다.

까담빠는 아띠샤를 기원으로 하는 종파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띠샤가 까담빠의 개조는 아니다. 아띠샤의 가르침인 『보리도등론』을 근거로 하는 종파이다. 까담빠의 개조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아띠샤를 중앙티베트로 초청했던 돔뙨이다. 돔뙨은 원래 쎄쭌 왕축 쇤누의 제자 였다. 스승은 공빠 랍세로부터 계율을 받았고, 둠 예쎄 겔첸의 가르침을 받았다. 돔뙨은 아띠샤가 입적한 후 1056년에 라뎅에 밀교 도량을 건립하고 후학을 지도했다. 제자들 중에 밀교의 실천을 중시하는 교계파와 까담육종전을 중시하는 현교의 교설파가 생겼다.

교계파의 밀교는 짼아와 출팀발(1038~1103)에 의해 아띠샤 자신의 의도를 반영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자율와 쇤누외(1075~1138)에 이르자 교계파처럼 현교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점차 현교 겸수의 경향을 띠었다.

뽀또와 린첸쌜(1031~1105)과 샤라와 왠땐닥(1070~1141) 등으로 대표되는 교설파는 『보리도등론』을 소의경전으로 삼았으며, 까담육종전인 『대승장엄경론』, 『보살지』, 『대승집보살학론』, 『입보리행론』, 『보살본생만론』, 『법집요송론』을 강설하여 현교를 위주로 했으며, 밀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위 지방에 있던 옥 렉빼쎄랍은 1073년에 라싸의 남쪽 쌍푸에 네우톡 학당이자 현교의 전문 도량인 쌍푸 승원을 건립하고, 중관과 유식을 근간으로 하는 현교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 도량은 조카인 로댄쎄랍(1059~1109)에 의해 한층 성황을 이루었다.





출가(出家) - 보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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