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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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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18:46:37, 조회 : 96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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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립망본공
眞不立妄本空하고
진도 세울만한 것이 아니고 망도 본래 공한 것이라
영가 스님이 '진(眞)'과 '망(妄)'의 관계에 대해 수차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밝히는 것이 종교이고, 이를 잘 분별해서 사람들을 깨우쳐주는 것이 종교 지도자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영가 스님은 "이것이 진실이다" 고 주장하지 않고, "저것은 거짓이다" 고 할 만한 것도 본래 없다고 했습니다. 주장할 진실도 없고 부정할 거짓도 없으니, 진실을 성취하려고 끙끙댈 까닭이 없고 거짓을 제거하려고 끙끙댈 까닭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중도적 안목이 정립되었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유무구견불공공
有無俱遣不空空이라
유와 무를 함께 버리니 공하지 않으면서 공하네.
있다와 없다, 참과 거짓 등 상대적 관계에 있는 것들을 '구견(俱遣)' 함께 버린다, 동시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진짜 아무것도 없는 허무적멸(虛無寂滅)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하지 않으면 공하다[不空空(불공공)]'고 했습니다. 이는 불교만이 전개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논리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있다와 없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양자택일(兩者擇一), 하나가 참이면 하나는 반드시 거짓입니다. 이것이 소위 세상 사람들이 가진 상식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어떻게 말하는가? "있다" 와 "없다" 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잘못된 견해이고, 그런 견해를 바탕으로 "있다", "없다" 하는 것은 허구의 관념이라 봅니다. 그래서 동시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비로소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기존에 "있다" 고 했던 것의 실상과 "없다" 고 했던 것의 실상이 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에 따라 "있다" 고 해도 되고 때에 따라 "없다" 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도입니다.
우리네 삶이 무거운 까닭은 망상과 집착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나[我(아)]입니다. 그 단단한 편견과 집착을 깨부수기 위해 철저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에서 "나는 없다[無我(무아)]"는 소리를 입이 닳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허구의 관념을 철저히 부정하면 어떻게 되는가? 참나[眞我(진아)], 위대한 나[大我(대아)]를 긍정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흐르는 강물처럼, 스치는 바람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자재한 삶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신청곡 : 관음전 눈 소식(우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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