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
2021-02-05 00:06:31, 조회 : 1,071, 추천 : 0 |
|
|
|
|
6) 겔룩빠의 발전
쫑카빠로부터 법을 들은 제자들은 대단히 많지만, 중요한 제자로는 제얍쎄쑴이라고 하는 갤찹 달마린첸과 케둡 겔레뺄상(1385~1438), 그리고 게뒨둡이 있다.
갤잡 달마린첸과 케둡 겔레뺄상은 쫑카빠와 마찬가지로 싸꺄빠의 렌다와로부터 수학했다. 갤찹 달마 린첸은 불교논리학, 반야 등 현교에 대한 다수의 주석을 남기고 있고, 케둡 겔레뺄상은 현교에 대한 주석을 남기고 있지만, 그보다도 밀교에 대한 뛰어난 주석을 남기고 있다. 쫑카빠가 입적한 후 초대 ‘간댄좌주'는 갤찹 달마린첸이 맡았고, 그 다음 2대는 케둡 겔레뺄상이 맡았다.
쫑카빠 대사가 열반한 후, 그 가르침을 펴기 위해 라싸 근교에는 다수의 겔룩빠 승원이 건립되었다. 쫑카빠 대사 생전에 건립된 간댄 외에도 대붕과 쎄라와 같은 대규모의 승원이 세워졌다. 1416 년에 문수법왕 잠양최제 따시뺄덴(1379~1449)이 대붕을 세웠고, 1419년에 대자법왕인 잠첸최제 싸꺄예쎄(1354~1435)가 쎄라를, 1447년에 게된둡이 시가체에 따시룽보 사원을 세웠다. 이 4대 사원이 위짱에 있는 겔룩빠의 사원 중에서 대규모의 학문사로 자리잡았다.
3대 간댄좌주로서 따시룽보사를 건립한 게뒨둡이 입적하자 겐둔갸초(1475~1542)가 환생자로 인정되었다. 게뒨둡의 전기에는 그가 관음보살의 화신이고, 전생에 쏭짼감뽀 왕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최콜갤사를 건립하고, 쎄라, 대붕, 따시룽보의 주지를 역임했다. 대붕의 주지로 있을 때에는 팍모두빠의 섭정이 간댄궁을 만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대붕의 간댄궁은 역대 게된둡의 환생자들이 머무는 거처로 사용되었다.
겐둔갸초가 입적하자 겔룩빠에서도 까르마빠처럼 적극적인 환생의 제도를 통해 결속력 있는 종파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환생자 쏘남갸초(1543~1588)를 찾아냈다. 이 환생자는 4세에 대붕, 10세에 간댄, 16세에 쎄라의 주지가 되었다. 이를 통해 겔룩빠도 명확한 종파 의식을 세울 수 있었다.
1571년 몽골의 알탄 칸이 사신을 보내 명망이 높은 쏘남갸초를 몽골로 초청했다. 그러나 티베트의 내분으로 초청에 응하지 못했다가 1577년 알탄 칸이 직접 청해로 온다는 전갈을 받고 쏘남갸초는 라싸를 출발하여 간댄을 거쳐 청해에서 알탄 칸과 왕비를 만났다. 왕은 '지금강불持金剛佛 달라이라마'란 칭호를 올렸고, 쏘남갸초는 '법왕대범천法王大梵天'이란 칭호를 내렸다. '달라이'란 말은 몽골어로 '바다'라는 의미이다. 그는 후에 3대 달라이라마로 선정되었다. 3대 달라이라마는 몽골에 대대적인 포교를 행하여 많은 겔룩빠 사원을 세웠다. 마침내 1642년 구시 칸의 도움으로 5대 달라이라마 아왕 롭상갸초(1617~1682)가 티베트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렇지만 5대 달라이라마는 대원만大圓滿의 교의에 기울고, 입적한 후에는 섭정인 쌍개갸초가 닝마빠의 명가 빼마링빠로부터 6대 달라이라마를 찾아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대붕과 간댄 승원의 지도자들이 대단히 우려하여, 섭정이 실각한 후에는 대대적으로 닝마빠를 탄압했다.
이런 과정에서도 겔룩빠에서는 여러 학자가 출현하여 중요한 저술을 남겼다. 먼저 잠양쌔빠(1648~1722)는 유명한 『대학설강요서大學說綱要書』를 저술했다. 쑴빠캔뽀 예쎄뺀졸(1704 ~1788)은 『여의보수사如意寶樹史』라고 하는 불교 역사 서를 남겼다. 짱까 로배도제(1717~1786)는 『짱꺄학설강요서』로 유명하다. 꾄촉직메왕뽀(1728~1791)는 간단한 학설 강요서인 『학설보환學說實環』을 저술했다. 이 학설 강요서는 겔룩빠의 학문사에서 지금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투갠 롭상최기니마(1737~1802)는 『학설수정경學說水晶鏡』이라고 하는 티베트 종파를 위주로 한 학설 강요서를 남기고 있다.
18세기에 들어와 달라이라마가 정권의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 가자, 정치적으로 겔룩빠에 눌려 지내던 여러 종파로부터 반격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겔룩빠의 영향력이 적었던 동부 티베트 캄에서 무종파주의로 나타났다.
켄쩨왕뽀(1820~1892)는 델게 근처에서 태어나 닝마빠에서 구족계를 받고, 싸 꺄빠의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여러 종파의 교의를 통달했다. 24권에 이르는 저작을 포함하여 많은 서적을 출판했다. 만년에 집대성한 『딴뜨라부집성』과 『성취법집성成就法集成」 등은 후기 딴뜨라불교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꽁뚤 왼땐갸초(1813~1899)는 뵌교의 가문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그의 업적은 '오장五藏'이라고 하여 자신의 저작을 비롯하여 각파의 딴뜨라 의궤, 관정의 의궤, 라마들의 가르침 등을 수록한 저술을 발간한 것이다. 꽁뚤이 추구한 무종파 운동은 비겔룩빠의 대인을 조낭빠의 여래장사상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미팜갸초(1846~1912)는 약간 늦게 무종파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주로 닝마빠 복권을 위해 노력했다. 직메링빠는 족첸빠 랑중도제로 알려져 있다. 롱첸랍잠빠 이래 『대원만』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중부 티베트의 닝마빠 사찰인 민돌링에 소장되어 있는 『고파古派딴뜨라집』 25권을 정리했다.
닝마빠 복권을 중심으로 한 무종파 운동은 결국 쫑카빠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겔룩빠 학승들의 업적을 상쇄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13대 달라이라마는 이런 경향을 존중하여 겔룩빠 이외 종파의 서적들을 활발하게 인쇄하여 보급시켰다.
청산은 깊어 좋아라 - 이도일스님 |
 |
|
[2021-02-05] |
: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