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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92
법광(法光) 2021-02-12 14:59:21, 조회 : 923, 추천 : 0



1. 내륙아시아 초원 유목사회의 불교 수용
그동안 몽골과 불교의 관계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는 유목을 위주로 하는 몽골 사회를 대승불교의 주요 전파 지역 중 하나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도로부터 북방 중앙아시아로 전파된 대승불교는 중원을 거쳐 동아시아로 전파되었으며, 만리장성의 북쪽은 중원의 문화와는 극히 이질적인 세계이니 한 전漢傳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와는 무관하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에 주로 몽골이 티베트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몽골 지역에 전파된 불교를 중국이나 한국에 전파된 대승불교와는 별개로 인식하고 막연한 거리감을 두어 왔다.

그러나 인도 북서부에서 이슬람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도불교는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에서 새롭게 자리잡았고, 12세기 말경 티베트불교는 후기 인도불교의 계승자로서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되었다. 7세기 현장 이래 인도와의 직접 교류에서 점차 소원해지기 시작한 중원의 경우와는 다른 경로를 걷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승불교의 긴 호흡 속에서 티베트는 물론 몽골 지역의 불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 시작은 물론 티베트불교의 몽골 전교가 시작되는 13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인도와 중원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는 중앙아시아와 현재 중국의 신강성을 잇는 실크로드였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쓰기 시작한 용어 '실크로드'는 비단을 운송하는 교역로의 의미를 널리 부각시켰지만, 종교를 포함한 각종 문화 현상이 소통되는 통로로서 더욱 중요 했다. 파미르고원을 넘나드는 이 교통로는 페르시아(현재 이란)나 북부 인도의 문화를 중원으로 유입시키며, 불교 출현 이전부터 인도 북부 및 중앙아시아와 신강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 주는 역할을 했다. 불교는 물론 마니교, 동방기독교(네스토리안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이 지역을 통과해 동아 시아로 전파되었고, 마지막으로 전파된 이슬람교가 오늘날 신강과 중앙아시아를 석권했다. 파미르의 동서로 뻗어 있는 이 교통로가 중앙아시아 각지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자락은 다시 신강을 거쳐 중국 감숙성의 기련산맥을 따라 하서회랑이라는 좁은 통로를 통해 감숙성 난주, 섬서성 서안(장안)에 이른다. 하서회랑에는 돈황, 주천, 장액, 무위 등의 도시가 동서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중원과 서역을 이어주는 동서 교통의 요지임은 물론 몽골초원과 서역, 또는 티베트 지역을 연결하는 남북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후에 몽골이 티베트로부터 불교를 수용하는 통로도 바로 이곳이었다. 따라서 중원의 왕조는 물론 초원에서 출현한 여러 정권들도 이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서역과 티베트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고자 했으니, 흉노, 선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도 북부와 중앙아시아에 쿠샨 왕조를 건설한 월지계 승려들이 후한의 수도 낙양에서 활동하면서 중원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에 앞서 이들이 몽골초원에서 활동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인정되지만 분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가능성은 흉노를 이어 몽골초원을 제패하는 선비의 시대에 들어 사실로 입증된다.

하서회랑에서 몽골초원의 동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장악한 선비는 기타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와 함께 16국을 세우고 본격적인 불교 수입에 나섰다. 이는 장강 유역에 성립된 동진 등 남조의 여러 정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서성 오대산 및 운강과 용문 석굴로 대표되는 이 시기 불교 유적과 구마라집의 역경 및 법현의 구법 활동,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그려진 낙양의 모습을 통해 선비 시대 불교의 동아시아 전파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결국 초기 중국불교의 북아시아적 전통에 대한 의미심장한 회고이기도 하다.

이렇듯 중국의 전통 왕조로 여겨지는 북위, 수, 당, 요, 금, 원, 청 등은 모두 몽골초원에서 기원한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만주 등 여러 민족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들 정권은 민족의 기원과는 별개로 중원문화에 동화되어 독자성을 상실한 대표적인 민족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기반으로 불경을 번역하고 이를 중원에 적극 소개함으로써 동아시아 불교문화 발전에 이정표를 남겼다. 그럼에도 유목 정권에 의한 불교의 발전은 중국불교의 한 부분으로 처리되어 정작 동아시아 불교 수용의 북아시아적 전통은 무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유목사회와 불교의 관계는 이것의 중국 유입 경로가 보여 주듯이 실크로드는 물론 신강 북부를 관통하는 초원의 길과 결코 무관할 수 없었다. 중원과 초원을 아울러 통치했던 이상의 정권은 물론, 중원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6~9세기 몽골초원의 패권을 장악했던 돌궐이나 위구르의 경우에도 중앙아시아와 중원의 선비계 정권 사이에서 불교를 수용하고 확산시켰던 예가 확인된다.

제1돌궐 제국 시대(552~612) 때 이미 돌궐 사회에서 불교 승려의 활동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북주(556~581)의 효민제 때 장안에는 돌궐계 불교 사원이 건설되었고, 북주의 명제가 세운 비문에는 돌궐의 무한 카간(553~572)이 불교에 귀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또한 북제(550~577) 조정이 파견한 승려 혜림이 무한 카간을 계승한 타파르 카간(572~581)을 불법으로 귀의 시켰다고 전하는데, 이때 전래된 『열반경涅槃經』은 당시 동서 교통로에서 주요한 상인 집단으로 활동했던 소그드인과 그 문자의 영향을 받아 소그드어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6세기 후반 몽골초원에 세워진 부구트 비문에서는 타파르 카간의 명령에 따라 돌궐 사회 내부에 승가가 성립되었고, 쿠샨의 중심지 카피샤에서 온 승려 지나굽타(528~605?)가 돌궐에서 활동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계속 뿌리를 내리지 못해 8세기 초 혜초는 이미 돌궐 사회에 석가의 가르침이나 승려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돌궐의 뒤를 이어 등장한 위구르 제국(744~840)의 경우, 이전까지 불교의 흔적이 보이다가 762년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사라진다. 하지만 위구르 제국 분열 이후 하서회랑 일대 감주와 사주, 그리고 오늘날 신강성 타림분지 북부 천산 지역으로 이주한 위구르 왕국들은 10세기 말경 이미 상당 부분 불교로 개종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부터 위구르 집권층은 사원의 건설은 물론 역경사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아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장아함경長阿含經』 등 다양한 계통의 경전과 주석서 80여 편을 남겼다. 이러한 위구르어 경전은 소그드어 경전과 쿠차, 투르판 일대의 토카라어 경전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며 이후 티베트, 서하, 한문 경전과 함께 몽골어 경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상에서 언급한 돌궐과 위구르의 예를 통해서도 부분적이나마 동아시아 불교 수용의 다양한 경로가 존재했음을 이해해 볼 수 있다. 7세기 신라 출신의 승려 원측(613~696)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가 티베트어 대장경 텐주르에 실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이 한문 이외의 경전 사이에 교류가 활발히 있었고 이를 비교 분석하는 일은 서로의 교류 사실을 밝힘은 물론 경전의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좋은 인연- 김양희,이준형

眞虛性宗 [2021-02-13]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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