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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97
법광(法光) 2021-03-03 20:03:23, 조회 : 987, 추천 : 0



Ⅶ. 일본불교사

1 고대
① 아스카 및 나라 시대의 불교
일본에 불교가 유입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다. 그 가운데 공전公傳만 놓고 본다면, 대체로 6 세기 중엽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스카 시대인 552년 10월에 백제의 26대 왕인 성명왕(재 위 523~554) 이 석가불의 금동상, 번개幡蓋, 경론 등과 함께 불법을 전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부처님을 마레비토가미, 즉 외래의 신으로 본 당시 사람들은 불교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정쟁에 휘말렸다. 숭불파의 소가 씨와 배불파의 모노노베 씨의 두 호족이 대표적이었다. 약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정쟁은 소가 씨족의 승리로 돌아갔다. 584년에는 고려의 환속승 혜편을 법사로 하여 일본 최초로 젠신니, 젠조니, 에젠니가 출가했다. 소가노 우마코는 불전을 만들고 미륵상을 안치하여 이들을 모시고 법회를 보았다.

우마코가 모노노베노 모리야를 멸망시킨 후, 596년 우마코는 일본 최초의 절이자 자신들의 씨사氏寺인 아스카데라飛鳥寺를 건립했다. 백제는 혜총, 영척, 혜식 등을 파견하여 불사리를 보냈고, 사찰 건립을 위한 기술자들을 파견했다.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가 당시 모든 사찰의 지도적 위치를 갖게 된 이 시기의 불교를 씨족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스이코 일왕의 섭정을 하게 된 쇼토쿠(574~622) 태자에 이르러 불교는 비로소 고대국가의 확립에 기여한다. 그는 『17조 헌법』의 제2조에 “깊이 삼보를 공경하라. 삼보는 사생의 종귀終歸, 만국의 극종極宗 이라.” 하고, “사람은 악한 자가 적다. 잘 가르치면 이에 따르리라. 삼보에 귀의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굽은 것을 바루겠는가.”라는 것으로 불법의 가르침을 명문화하고, 백성 교화의 지침으로 삼았다. 태자는 『승만경』 『법화경』 『유마경』에 대한 『삼경의소』를 지었다. 여기에는 고구려 승려 혜자의 도움이 있었다. 『법왕제설法王帝說』에 의하면, 태자는 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3경의 본지를 깨닫고 의소를 짓는 데 도움을 청했으며, 혜자는 그 의소를 고구려로 가져갔다. 이로써 당시 한반도의 불교 수준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쇼토쿠 태자의 사후 스이코 일왕은 승려의 악행을 구실로 승정僧正 · 승도僧都 · 법두法頭에 의한 승관 제도를 설치하여 불교를 통제했다. 639년에는 죠메이 일왕의 씨사인 쿠다라오데라가 건립됨으로써 궁정 불교의 막이 올랐다. 645년 코토쿠 일왕은 당나라의 10덕德 제도를 모방하여 승려들을 법답게 지도할 10사師를 임명했다. 다음 해에는 소가 씨족의 멸망을 계기로 국가권력의 강화를 가져온 타이카의 개신改新을 단행함으로써 불법 흥륭과 불교 통제의 권한은 명실공히 일왕의 수중에 들어갔다. 율령 국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8세기에 들어서는 승관제가 확립되고, 승니령이 제정되어 국가불교의 법적인 체제도 정비되었다. 따라서 국가에 봉사하는 정행淨行의 승려 집단을 확보하기 위해 승려의 득도 및 신분을 관이 통제하고 증명서를 교부했다.

710년 수도를 아스카에서 나라로 옮긴 후, 불교는 진호 국가의 기원에 봉사하면서 국가불교의 길을 걸었다. 또한 당나라로부터 불교 전적을 수입하고, 국가에서 사경소를 직접 운영했다. 사경의 목적은 경론의 소유, 수집, 독경, 공양 등을 위해서였다. 722년 일왕의 추선공양을 위해 『화엄경』 등 4백 권의 경전을 서사한 것처럼 많은 불전 사경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겐보는 『개원석교록』에 기록된 경론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사경소에 제공함으로써 승정에 오르기도 했다. 외국으로부터 건너온 여러 승려들에 의해 사경소의 경전들이 늘어났다. 이후 대사찰과 민간에서도 사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편,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세운 대운사를 모방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국분사를 지방에 설치 한 것도 이 시기였다. 741년 쇼무 일왕의 조서에 의해 국분사에는 비구 승려 20명, 국분니사에 는 비구니 승려 10명을 배치하여 전자에서는 『금강명최승왕경』을, 후자에서는 『법화경』을 독송하여 호국과 멸죄를 기도하도록 했다. 토다이지는 총국분사, 홋케지는 총국분니사로 칭했다. 토다이지는 쇼무 일왕의 비로자나대불 건립의 칙령에 의해 건립되었다. 『화엄경』을 근본으로 하여 세워진 이 사찰에 일왕 스스로가 삼보의 노예라고 말하며 개안식에 참석했다. 당시 민간 포교에 공을 세운 도래인계의 승려 교키(668~749)의 노력과 전통신앙인 신도의 협력에 의해 완공되었다. 이는 고대 불교의 신불습합神佛習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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