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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01
법광(法光) 2021-03-12 20:07:51, 조회 : 1,079, 추천 : 0



2 중세

① 가마쿠라 시대의 불교
일본 중세에 해당하는 가마쿠라(1180~1333) 시대는 현재 일본불교를 대표하는 조사들이 등장하여 불법의 시대화와 대중화를 외친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천태와 밀교 역시 고대 진호 국가의 사상을 기반으로 국가불교화했다. 권력을 둘러싼 왕실 내부의 암투와 실권을 향한 무사들의 항쟁 속에서 민중들의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불교는 왕법불법의 논리에 안주하여 불법 고유의 정신이 점점 쇠퇴해 가고 있었다. 특히 전국의 동란은 물론 천지자연의 이변은 민중들의 피난처마저도 앗아가 버렸다. 시신이 인산인해를 이루는가 하면 수도가 불타는 광경은 말세에 가까워 왔음을 실감케 했다. 불교의 말법사상은 이러한 현상에 더욱 심리적인 절망감과 자괴감을 부여하여 민중이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시대의 조사와 종파는 호넨(1133~1212)의 정토종, 에사이(1141~1215)의 임제종, 호넨의 제자인 신란(1173~1262)의 정토진종, 도겐(1200~53)의 조동종, 니치렌(1222~82)의 일련종, 잇펜(1239 ~ 89)의 시종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통불교권 내에서 수학하고 수행하며, 한계를 절감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천태종의 본찰이 있는 히에이산에 입산해서 내면의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깊은 교학과 수행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도겐은 중국에서 구법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성 종단에 대한 반발로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자기류의 불교 개혁을 완수한 인물들이었다.

이 시기 조사들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말법 시대라고 하는 인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기에 시기상응의 불법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길장의 『법화현론』에 근거한 정법 천 년, 상법 천 년 설이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당나라 법림의 『파사론』에 나오는 기원전 949년 (주나라 목왕 53년)을 부처님의 입멸설로 봄에 따라 1052년에 말법의 시대에 들어왔다고 보았다.

조사들은 말법사상을 자기 교설의 근간으로 삼았다. 단 도겐의 경우는 비록 말법사상을 부정했지만, 정법인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 근원을 대고자 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의식해서였다. .

둘째는 염불, 좌선, 제목題目 등 일행一行을 통한 선택과 집중의 교화 방식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택일 사상은 당시의 민중 입장에 서서 불법의 가르침을 하나로 모음으로써 삶 속으로 보다 쉽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더욱이 천태와 밀교가 고대사회의 몰락 속에서 자신의 안위와 번영만을 챙기는 교단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쉽게 누그러뜨렸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단인 무사 정권이 탄생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기성 종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막부는 왕권을 견제하는 세력이었으므로 신흥불교세력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또한 선택과 집중은 무사들의 정신세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전환의 시대를 잘 활용하여 불법의 토착화에 성공한 것이다.

셋째는 앞의 선택과 집중에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들이 불법승 삼보의 한 가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먼저 불보에 해당하는 조사는 정토계의 호넨, 신란, 잇펜이다. 호넨은 선도의 『관무량수경소』를 읽고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칭명염불이야말로 극락왕생을 위한 바른 정정업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본원염불집』(1198)을 통해 법멸의 시기에는 자력을 버리고 타력에 의지하는 이행도로써 왕생 정토하는 구제의 길을 걸을 것을 역설했다. 아미타불의 본원에 기반을 두고 염불을 선택한 것이다.

호넨의 사후에는 그의 묘당이 파괴되는 등 박해가 이어졌다. 그러나 염불에 대한 민중의 신앙은 더욱 깊어져 갔다. 또한 다른 교단 승려들의 귀의도 늘어나면서 자연히 교의에 대한 해석에 따라 분파되어 갔다. 대표적으로는 벤쵸의 진서의, 쇼쿠의 서산의, 코사이의 일념의, 류칸의 다념의, 쵸제이의 구품사의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벤쵸의 진서의는 다시 6파로 나뉘어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다. 7개의 대본산과 교토 지온인을 총본산으로 하는 현재의 정토종은 진서의의 흐름을 잇고 있다.

신란은 스승 호넨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신심의 염불을 세울 것을 주장했다. 『교행신증』(1224 년 경)에 신란의 이러한 교설이 설파되어 있다. 그는 『무량수경』에서 법장비구가 세운 본원이 아미타불 성취로 인해 중생들이 이미 구제되었다는 신심의 염불을 세우고, 현생에서 왕생의 인치인 정정취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미타불의 본원에 나타난 중생 구제를 위한 모든 가르침이 가장 진실하다고 했다. 진실한 행은 아미타불의 48원 가운데 제17원, 진실한 신信은 제18원, 진실한 증은 제11원으로 보았다. 따라서 신심위본, 타력회향 등의 개념에서 보듯 자력으로 행증을 세우지 못하는 중생, 즉 번뇌 로 가득 차 있고 한없는 생사유전으로 죄악에 물든 범부임을 먼저 철저히 자각하는 동시에 믿음에 의지 하는 것이 말세 중생 구원의 근본임을 설하고 있다.

신란의 사후 그의 묘당은 사원화되어 혼간지로 불렸다. 이후 분파가 이루어졌으며, 초기에는 제자 신부츠가 주지로 있던 붓코지를 중심으로 한 고전파의 세력이 가장 컸다. 그러나 15세기 부터 신란의 8대손 렌뇨의 활동으로 혼간지파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다. 에도 막부 시대를 연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분할정책을 써 현재의 니시혼간지와 히가시혼간지로 세력을 나누었다. 전자는 본원사파로, 후자는 대곡파로 불리며 양대 교파가 오늘날에도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다.





찬란한 미소 - 도신스님

眞虛性宗 [2021-03-13]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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