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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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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06:12:39, 조회 : 98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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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 사후, 조동종계는 2대 코운 에죠, 3대 텟츠 기카이, 4대 케이잔 죠킨에 이르러 아산파와 명봉파로 나뉘어 전국의 민중 속으로 전파되었다. 조동종에서는 도겐을 고조, 케이잔을 태조로 칭하고, 도겐이 주석한 후쿠이현의 에헤이지와 케이잔이 세운 요코하마의 소지지를 양대 본산으로 하고 있다.
일본 가마쿠라 신불교의 조사들은 이처럼 시대인의 삶이 요구하는 불법을 창의적으로 개혁하여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불법승 삼보 중 선택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를 통해 신앙과 수행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형식을 불문하고 불법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를 각자의 위치에서 선택하여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즉 일불一佛은 일체불一切佛, 일법一法은 일체법一切法, 일승一僧은 일체승一切僧의 정신, 그리고 이를 통해 불법의 궁극으로 향하는 정신이 일본에서 극적으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신불교의 조사들 외에도 구불교 측도 시대에 대해 다양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원래 교학 중심이었으므로 실천 수행에서 근본적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도 불교 측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전수專修 불교에 대해 불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화엄사상을 계승한 묘에(1173~1232)였다. 그는 『최사륜』 (1212)에서 호넨이 왕생 정토를 위해서는 칭명만을 주장하며, 지계, 독송, 보리심 등의 제행을 부정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묘에는 둔세의 수행을 행하며 교토 북부의 코잔지에 머물며 화엄교학의 도량으로 삼았다.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보살행을 함으로써 귀족은 물론 무사 계층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법상종의 죠케이(1155~1213) 또한 남도 불교의 핵심 사찰 중 하나인 코후쿠지 에서 호넨의 염불 집단을 비난하며, 전수염불의 금지를 요청하는 상소문을 작성했다. 전통적인 8종 체제의 입장을 9개조의 과실로 개진하여 신종파를 경계한 것이다. 죠케이는 불교의 재건에는 계율 부흥이 우선됨을 역설한 『계율흥행원서』를 지었다. 묘에와 마찬가지로 죠케이도 석가 이후 출현할 미륵을 신앙했다.
이처럼 구불교는 계율 부흥을 주장했고, 당시 가장 앞장선 종파는 율종이었다. 율종은 교토의 북경율과 나라의 남경율로 나누어져 있었다. 북경율에는 슌조(1166~1227)가 입송하여 남산율을 전하고 교토의 센유지를 재흥하여 계율의 강설을 행했다. 남경율에서는 에이존(1201~1290)과 닌쇼(1217 ~ 1303)가 계율의 민중화에 노력했다. 에이존은 특히 민중 포교를 위해 비인非人 구제 사업에 앞장섰으며, 닌쇼는 나환자의 숙소를 만드는 등의 활동으로 세인들은 물론 막부 권력자들의 존경을 받고 이들이 교단에 귀의하기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는 앞에서 본 것처럼, 구불교의 타락에 반발한 신불교 조사들이 시대와 민중을 지향하는 불법을 태동시킨 시기로 현대 일본불교 교단의 기원은 전자와 함께 후자의 성립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사화(相思花) - 우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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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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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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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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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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