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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02:30:58, 조회 : 98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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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내외의 계몽운동과 개혁의 기운이 활발히 일어나는 가운데 출재가를 막론한 혁신운동도 새롭게 전개되었다. 출가인들로는 광명주의의 야마자키 벤네이(1859~1920), 계율운동의 와타나베 카이쿄쿠(1872~1933), 정신주의의 키요자와 만시(1863~1903) 등이 대표적이다. 재가 불교인들은 선과 검 일치의 무상검을 주장한 야마오카 텟슈(1836~1888),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주장하며 명도협회를 창립한 토리오 토쿠안(1848~1905), 관음신앙을 바탕으로 구제 활동을 펼친 구세교의 다이 도 쵸안(1843~1908), 그 밖에도 니치렌의 법화사상에 기반을 두고 일련주의를 내세우며 국립 계단 설립을 주장한 국주회의 타나카 치가쿠(1861~1939) 등을 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와 종교의 근본적인 일치를 주장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공인교 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불교계의 국수주의적 잡지인 『일본인』의 발간에 참여한 이노우에 엔료(1858~1919)는 공인교 확립의 논리를 『일본정교론』(1889)을 통해 전개했다. 이는 불교계로 확산되어 불교계의 각종 협회를 통해 각 종파의 관장을 연서로 하는 청원서가 내무대신 앞으로 제출 되었다. 비록 공인교 운동과 관련한 종교 법안은 귀족원의회에서 1900년 2월에 부결되었지만, 이에 고무된 불교 교단은 승려들의 국민적 권리인 참정권 문제를 제기했다.
1915년 13종 56파가 결집한 불교연합회와 다음 해에 설립된 불교호국단은 과거의 제정일치, 정교일치의 풍조에 비추어 종교 교사나 승려에게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1925년 의회에서 정부의 치안유지법을 대가로 성립된 보통선거법의 실현으로 해결되었다.
이 시기 대일본제국헌법 발포 및 황실전범皇室典範 제정(1889)을 계기로 불교계의 국가주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근대 일본불교계의 국가주의적 색채는 메이지 초기 일왕제 국가 성립 선언과 연이은 제도의 정착, 그리고 국체론적 국가 의식의 확산 아래 복고적인 왕법불법상의론 사상을 띠었다.
앞의 이노우에 엔료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동시에 호국과 애리愛理의 불가분의 원리를 제창했다. 또 불교의 정신에 입각한 국가의 형성과 전통적인 왕법불법론을 통해 일왕제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의 윤리 도덕을 제창했다. 이러한 논리는 앞에서 언급한 1889년 불교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결집한 존황봉불대동단에 의해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결사운동의 특색은 국수주의와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세 말기의 호국, 호법, 기독교 배척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나눔 - 이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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