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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2 22:47:34, 조회 : 96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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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근대국가 체제와 국체론의 확립 과정에서 나온 신교 자유 보장의 방침(1875)에서 보듯 신정부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하였다. 즉 "정치의 방해가 되는 경우, 주의할 뿐만이 아니라 인민을 선유하고 통치를 익찬할 것"이라는 점에서 종교 활동을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신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헌법 제28조에 "일본 신민은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않거나 신민다운 의무에 위배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 신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문화하였다. 신민의 안녕질서와 신민다운 의무라는 것은 일왕의 신성 불가침성과 국가가 정한 규율을 침해하거나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헌법에서 일왕의 권한 17조 가운데 특히 제3조 "일왕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다."고 하는 조항은 국체론적 국가와 사회를 전면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불교계를 비롯해, 모든 종교계가 일왕을 정점으로 한 종적인 질서를 유지하지 않는 한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불교 교단의 지도자 및 불교학자들의 국가주의 행보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결국, 불교의 이념은 군국주의 및 파시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불교계의 국가불교화는 불교호국단처럼 해외전쟁을 승인하는 한편 국민 교화 및 국민정신의 통일을 위한 불교도의 결집 활동으로 이어졌다. 각 교단은 자발적으로 1894년 청일전쟁 및 1904년 러일전쟁 때부터 국가에 적극 협조했다.
먼저 정토진종은 청일전쟁 때부터 군인 포교, 종군승 파견, 자금 등을 지원했다. 이러한 국가불교화의 논리는 신심정인칭명보은과 왕법위본인의위선이라는 진속2제의 교의로써 드러났다. 즉 전자는 자력 수행을 버리고 아미타불의 본원력을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왕생 정토하며, 이러한 득신 후 염불은 자신을 왕생 정토하도록 결정해 주신 불에 대한 감사의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후자는 왕법을 근본으로 하고, 세속의 윤리인 인의를 앞세워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의 아래 정토진종이 다른 교단보다도 적극적인 전쟁 수행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왕실과의 친인적 관계를 가진 법주에게 집중된 절대적인 권력 때문이기도 했다. 조동종은 청일, 러일 전쟁기에 군인 포교 및 해외 포교, 초혼제, 법계증보, 계맥증수 등의 전사자 특별 공양, 감옥 내 포교 등을 통해 국가불교의 길을 걸었다. 1890년 재가자들을 교화 전도하는 전범인 『조동교회수증의』를 편찬한 오우치 세이란은, 같은 해에 발포된 교육칙어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1891년 『존황봉불론』에서 불교의 사은 중 국왕은을 제시하며, 불자로서 왕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일왕과 신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보고, 불법을 보호하는 일왕을 존숭하도록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많은 선사들이 소위 전쟁선을 통해 병사들의 살생 행위를 정당화시켰다. 특히 절학자 니시다 키타로(1870-1945)에 의한 일왕제의 추종 원리는 선적인 기반에서 나왔다. 그는 화엄의 '일즉다 다즉일'의 교리를 원용하여 왕실을 순수 절대의 존재로 보았으며, 그의 언설은 젊은이들을 비롯한 많은 일본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련종이야말로 말법사상에 의거한 시대적 위기의식의 조장과 현세의 초복 및 불국토 건설을 목표 로 한 현실주의적 사고가 전쟁 수행의 기반이 되었다. 일련주의를 제창한 타나카 치가쿠는 국체론을 받아 들여 일본이 독자적인 역사성을 갖는 통일국가로서 전 세계를 지배할 유일한 국가로 보았다. 그리고 니치렌이 세속법과 불법의 일치를 설한 왕불명합론을 개조하여 부처님과 동일시된 일왕이 일련주의를 전파할 사명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것이 실현되었을 때 최승의 땅인 영산정토와도 같은 곳에 계단이 건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왕에게 전쟁으로 세계를 통일할 사명이 있다고 보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대외 침략을 정당화했다. 타나카의 영향 아래 우익 활동가 이노우에 닛쇼, 만주국 육군 참모 이시하라 칸지, 일왕기관설의 제창자 키타 잇키 등 많은 군국주의자들이 배출되었다.
불교연합회가 왕국 불교로서의 길을 선언한 다음해인 1939년, 종교단체법이 귀족원과 중의원 양원에서 통과되지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파시즘 체제로 나아갔다. 그리고 국민정신 총동원 체제하에 전쟁 수행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불교를 비록한 모든 종교를 적극 활용했다. 불교계는 이러한 전시 교학에 기반을 두고 스스로 국주법종의 길을 걸었다. 그 대가로 대외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타이완탕떼 궈만주 등 이웃 국가에 포교의 노선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신도들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 전락시킨 과오는 씻을 수 없었다. 청일전쟁 이후, 거의 10년 단위의 전쟁 과정을 거쳐 마짐내 1945 년 태평양전쟁의 패배에 이르기까지 행해진 근대 불교의 굴절과 왜곡의 뼈아픈 유산을 현대의 일본불교는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찬미의 나라 - 김성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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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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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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