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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10:32:35, 조회 : 1,00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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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2분. 선현(善現)이 법을 청하다(善現起請分)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고 하여 제자가 묻지 않는데도 부처님께서 설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전에서는 제자가 이런 상황에 서 부처님께 법을 청합니다. 선현은 수보리를 번역한 말입니다. 수보리는 부처님 제자 중에 공의 이치를 제일 잘 알아 흔히 ‘해공제일解空第一수보리’라고 합니다. 수보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금강경에 공公의 이치가 주된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 경전의 등장인물은 철저하게 배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은 수보리가 평소 의심스러웠던 점과 알고 싶었던 점들을
부저님께 여쭙는 대목입니다. 즉 보리심을 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공은 반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반야의 삶은 무엇이며 부처로서의 삶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여쭙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꼭 부처님께 물어야 합니까?
어떠한 길이든 다 수보리 자신 속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수보리 자신이거늘 어찌 밖을 향해서 찾는단 말입니까?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 걸식하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심으로써 이미 다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본래면목, 반야의 참모습을 일상 속에서 보여주셨고, 수보리는 확인하는 차원에서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청하고 경전을 읽는 자세
시時에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가 재대중중在大衆中이라가 즉종좌기卽從座起하사 편단우견偏袒右肩하시며 우슬착지右膝著地하시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사 이백불언而白佛言하사대
그때 덕이 높으신 수보리須菩提 존자尊者가 대준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옷차림을 바르게 정돈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수보리는 연세도 많고 존경받아 마땅한 부처님 10대 제자 중의 한 분이라서 장로長老라는 말을 썼습니다. 장로는 본래 나이도 많고 덕도 높고, 학식과 인품이 뛰어난 분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입니다.
편단우견偏袒右見은 스님들이 가사를 입을 때 매듭을 왼쪽 어깨에 걸쳐놓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장로 수보리가 오른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계약을 한다거나 고백할 때 이런 자세를 취하여 그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입니다.
이러한 수보리의 모습이 바로 법을 듣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이렇듯 간곡한 마음으로 법을 청하고 들을 때 큰 깨달음이 옵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심심해서' 또는 '상식적으로 불교가 궁금하기 때문에'하는 정도 가지고는 큰 깨달음이 오기 어렵습니다. 수보리처럼 간곡한 마음으로 청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도론智度論』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설법을 듣는 사람은 자세를 단정히 해야 한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일심一心으로 말의 의미 속에 들어가라. 그런 뒤에 기쁜 마음으로 법을 듣고 감격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가히 그를 위해서 법을 설할 수 있으리라."
자. 이제 경전을 읽는 마음과 자세를 잘 가다듬으셨습니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希有[희유]하십니다. 世尊[세존]이시여
如來[여래]가 善護念諸菩薩[선호념제보살]하시며 善付囑諸菩薩[선부촉제보살]하시나니
世尊[세존]이시여 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이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는
應云何住[응운하주]며 云何降其心[운하항복기심]하리잇고
佛言[불언]하사대 善哉善哉[선재선재]라 須菩提[수보리]야 如汝所說[여여소설]하야
如來[여래]가 善護念諸菩薩[선호념제보살]하며 善付囑諸菩薩[선부촉제보살]하나니
汝今제廳[여금제청]하라 當爲汝說[당위여설]하리라
善男子善女人[선남자선여인]이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니는
應如是住[응여시주]하며 如是降伏其心[여시항복기심]이니라 唯然[유연]이니다.
世尊[세존]이시여 願樂欲聞[원요욕문]하나이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잘 당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수보리야.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잘 당부하느니라.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선남자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반드시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 지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데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희유는 '드물다.', 선善은 '잘', 호념護念은 '염려하고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수보리는 여래가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가르치고 당부하신다며 찬탄합니다. 부촉이라는 말은 '어떤 수행을 해라.' '잘 지키고 유념해라.' 등등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당부하실 때 쓰는 말씀입니다. 절에서 소임을 줄 때도 부촉한다고 말합니다.
제보살諸菩薩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의미있고 보람 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살은 수행을 열심히 하면서 모든 사람을 보살피며 교화하는 분들입니다. 이러한 뜻이 함축되어 있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말에 우리 삶의 지향점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금강경 입장에서는 어떤 관념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무주상 보살행을 하는 사람이 보살입니다. 이러한 보살들을 잘 호념하고 부촉하시는 부처님께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겠습니까?"라며 확실하게 내용을 콕 집어서 질문합니다.
선남자선여인은 줄여서 선남선녀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훌륭하게, 위대하게 보고 더 나아가서 보살,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점만 보더라도 불교가 진정한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지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최상의 깨달음'입니다. 이에 대해서 마음을 내는 것을 발심, 발보리심했다고 합니다. 보리심은 자비와 원력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연민과 자비심이 일어나고 잘 보살펴 주겠다는 원력을 세웁니다. 이 원력을 보리심, 깨달음의 마음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불교를 제대로 알면 자비심, 연민심이 저절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굶고 헐벗은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갖는 것도 좋지만,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에게 최상의 법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고, 삼일 닦은 마음이 천년의 보배라는 말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당장 눈앞의 몸뚱이를 살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의식의 질적인 향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대자비와 대원력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항복받는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말 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기 인연도 아닌데 욕심을 낼 수도 있고, 조금 좋은 일을 해 놓고도 생색을 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금강경은 '마음을 다스리는 길'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수보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보리의 질문에 선재선재라. '훌륭하고 훌륭하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이는 수보리의 질문이 훌륭하다는 뜻도 있습니다만, 모든 생명을 찬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질문을 잘 못하고 묵묵히 앉아만 있어도 부처님께는 모두가 선재로 보입니다. 또한 이 말에는 '참 훌륭하고 훌륭하다. 어찌하면 그렇게 볼 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화낼 줄도 아느냐. 참 신기하고 신기하다.'라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의 말을 그대로 긍정하면서 설해 줄 테니 자세히 들으라고 하십니다.여기서 여汝는 수보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 모인 1,250명의 대중이기도 하고, 바로 지금 금강경을 읽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수보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부처님 법을 청하였고, 부처님 또한 수보리의 뜻을 알아차리고 흔쾌히 모든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과 수보리의 중생을 예민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입니다.
한편 이대목에서 주목할 것은 여시如是입니다. 여시는 '아래와 같이' '앞으로 말 할 내용과 같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석가들은 '여시'라는 말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앞으로 설명되어질 삶의 방식과 마음을 항복받고 그와 같이 살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자, '유연唯然이니다. 세존이시여',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유唯라는 말은 '예'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유연이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한 호흡 읽어야 합니다.원요욕문願樂欲聞, 듣기를 정말 좋아하는 마음 자세로 법문을 듣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법을 설해주어야 제대로 알아듣고 가슴에 젖어들어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신청곡 : 바랑에 꽃을 담고(Keep Flower Into Knapsack)-우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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