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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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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0:09:12, 조회 : 1,03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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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근을 심은 사람들은 상(相)이 없다
당지시인(當知是人)은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에 이종선근(而種善根)이라 이어무량천만불소(已於無量千萬佛所)에 종제선근(種諸善根)하야 문시장구(聞是章句)하고
내지일념생정신자(乃至一捻生淨信者)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실지실견시제중생(悉知悉見是諸衆生)이 득여시무량복덕(得如是無量福德)이니라.
하이고오 시제중생이 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무법상(無法相)하며 역무비법상(亦無非法相)이니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이나 셋 넷 다섯 부처님에게만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다.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의 처소에서 여러가지 선근을 심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글귀를 보고 한 생각이나마 청정한 믿음을 내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는 것을 다 알고 다 보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은 더 이상 나라는 상(相)이나, 남이라는 상이나, 중생이라는 상이나, 수명에 대한 상이 없느니라. 그리고 옳은 법이라는 상도 없고 그른 법이라는 상도 없기 때문이니라.
여러 부처님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해도 좋고 아미타 부처님이라고 해도 좋고 그동안 여러 경전에서 만났던 부처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무량 천만 불소라고 하면 이미 일체가 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일불, 이불, 삼불, 사불, 오불은 가장 가까운 부처님을 뜻합니다. 아버지부처님, 어머니부처님, 아내부처님, 남편부처님, 우리가족부처님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 인연이 있든 없든 일체 모든 부처님이 무량 천만 불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등 경전에 명시되어 있는 부처님이나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부처님만을 뜻한다면 이런 표현은 있을 수가 없겠지요.
대승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부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제일 중요한 열쇠입니다. 거듭 말씀드리면, 모든 사람을 다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받들어 섬기라는 것이 대승경전의 뜻입니다.
종제선근(種諸善根), 여러가지 선근을 심는다고 하였는데, 경전을 읽고, 염불을 외우고,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받들어 섬기며, 배려하고, 어여삐 여기고,불쌍히 여기는 것 등이 전부 선근입니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라도 더 전해 주려고 하는 마음도 선근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가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경전 말씀을 들으면 청정한 믿음을 낸다고 하였는데, 이는 너니 나니 하는 차별심.분별심을 가질 필요 없이 똑같이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때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것입니다. 금강경의 첫번째 사구게인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볼 줄 알면 곧 여래를 본다)"의 참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신지 얼마 안 된 분들은 부처님하면 법당에 계신 부처님, 조금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부처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금강경을 공부하고, 불교가 깊어지신 분들은 "형상에 속으면 진짜 부처님을 못 본다. 사람도 외모나 첫인상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안목이 열립니다. 이런 분들은 금강경 말씀에 신심을 내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각박한 현실에서 투쟁하듯 살아가는 삶으로 되돌아간다손 치더라도 경전공부를 할 때 '이치를 들어보니 참 그럴듯하네'하는 작은 깨달음만 있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청정한 믿으을 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청정한 믿음이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준하는 마음상태 내지 정신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살계를 줄 때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하더라도 받는 그 순간, 그 인연이 아주 지중한 것입니다.
그 한순간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나의 삶이고 한순간이라도 청정한 믿음을내면 그것이 종자가 되어 어느 순간 활짝 꽃피울때가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보리가 의심하고 염려하는 것을 불식시켜버립니다.
또한 금강경 공부의 한량없는 복덕은 부처님과 사람을 궁극즉인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나 돈다발이 떨어지는 차원이 아닌 우리들 자신 속에 이미 갖추고 있는 무량복덕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에 대해 눈 뜬 사람은 더 이상 상(相)이 없습니다. 나의 내면이 저 태양처럼 밝은데 소소한 나무 그림자나 산 그림자 등에 마음 쓸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이라고 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와 같은 그림자인 것입니다. 구름이 얕게 떠있으면 비가 무수히 쏟아지지만 그것을 넘어서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태양만 찬란하게 비추는 것처럼 궁극적 차원에 눈을 뜨면 이 모든 것이 다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다' '이것은 훌륭한 가르침이다'라고 하는 것이 법상입니다. 또한 '불법답지 못하다' '진리답지 못하다' '다른 종교이니까' '다른 가르침이니까'하는 차별상이 비법상입니다. 예를 하나 든다면, 사람들이 법당에 참배를 할 때, 앞서 온 사람들이 켜놓은 초를 빼고 자기가 사온 초에다 불을 켜서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향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면 법당 관리하는 사람들이 쫒아와서 다른 사람이 꽂아 놓은 초를 빼고 자기 초를 꽂는다고 면박을 줍니다. 이렇듯 모처럼 절에 와서 정성 드리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화나게 해서 신심을 떨어뜨리게 하는 예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가 아는 것을 옳다고 고집하고, 그것이 굳어져서 형상화된 것이 법상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 고정된 법은 아무 것도 없는데, 고정된 관념때문에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남이 하는 일을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남을 평가하기 이전에 아집(我執)과 알량한 틀에 얽매인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신청곡 :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심진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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