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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12
普德華 2021-05-06 17:31:00, 조회 : 1,024, 추천 : 0
병에 따라 약을 준다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소설법[如來所說法]은 개울가취[皆不可取]에 불가설[不可說]이며 비법[非法]이며 비비법[非非法]이니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일체현성[一切賢聖]이 개이무위법[皆以無爲法]으로 이유차별[而有差別]이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설법은 모두가 취할 수가 없으며, 말할 수도 없으며, 옳은 법도 아니며, 그른 법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 성현[聖賢]들은 모두가 조작이 없고 꾸밈이 없는[無爲] 법으로써 온갖 차별을 꾸며서 펼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수보리의 말을 통해 부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수보리는 여래의 설법을 다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다'라고 관념에 떨어지고, 상에 집착하면 이미 부처님의 진정한 정신에는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인들은 다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위, 무위는 불교 특유의 용어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조작이 있고 마음 * 조건 * 이유 등이 개입하는데 그와 같은 것을 유위법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꿰둟어 보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다 떨어져 나가서 없습니다. 그것을 무위법이라고 합니다.

그 무엇도 고정된 법은 없다는 말은 결국 병이 났으니 처방전과 약이 있는 것이지 본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위법'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이라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 병에는 이 약을 먹고, 저 병에는 저 약을 먹는 것입니다.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부정관을 시키고,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자비관을 시키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인연의 이치라고 하는 연기관을 통해 지혜를 증장시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이런 저런 방법을 쓰는 것이지 고정된 가르침은 없습니다.

금강경은 '무상[無相]'을 으뜸으로 삼아 '모든 것은 아니다. 없다' 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상병[相病]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병을 고치면 금강경도 잎요 없어집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보리가 "개이무위법 이유차별(모든 성인들은 무위법으로써 온갖 차별을 꾸며서 펼쳐보였다)" 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전단향나무로 불상도 조각하고 보살상도 조각하였습니다. 조각하다가 떨어진 나뭇조각이나 톱밥조차도 재료가 전단이기 때문에 다 전단향내가 납니다. 그렇듯이 불법은 무위법, 없는 것이 재료인데, 그것을 가지고 사성제, 팔정도, 십이인연, 육바라밀, 십이처, 십팔계, 이십오유 등 여러 가지 차별된 법을 펼쳤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근사한 말씀입니까? 빝줄을 긋고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명구입니다.
명구 한마디가 "혁범성성[革凡成聖범부를 고쳐서 성인을 만든다]."이라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정황한 이야기보다 짧은 명구 한마디에서 감동을 받고, 지혜의 눈을 뜨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육조 혜능[慧能] 스님도 금강경 한 구절에 눈을 떴습니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도 본래 다른 종교를 믿었는데, 부처님의 제자인 마승 비구에게서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아불대서문[我佛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 이라는 한 구적을 듣고 발심해서 그 길로 부처님께 귀의한 것입니다. 그러곤 부처님의 오른팔, 왼팔과 같은 역활을 하며 많은 이들을 불법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도 해인사 선방에서 정진할 때 "정청어독월靜聽魚讀月,  고요히 들으니까 고기가 달을 읽는 소리를 듣겠더라."는 주련 내용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심[禪心]이 지극히 깊어지지 않으면 그렇듯 기가 막힌 구절이 나올 수가 없어요. 저는 이 구절을 보고 화두고 뭐고 다 집어 던졌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참선 수행이든 상[相]으로 하면 안됩니다. 중생들은 종하서 경을 뚫어지게 보지만, 옛날 선사들, 한 경지를 넘어선 분들은 눈가리개로 경[經]을 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온종일 경을 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속에 어떤 고정불변의 셩상으로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래서설법[如來所說法]은 취할 것도 아니며 설할 것도 아니며 법도 아니며 비법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할 것도 없고, 고정된 법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양한 근기를 가진 수많은 중생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다 보니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해 주었고, 인연이 맞아 떨어지면 깨닫기도 합니다. 그물을 크게 많이 펼쳐 놓으면 어느코에선가 걸립니다. 결국은 본래 성불자리고 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동안 수도 없이 해온 팔만사천법문은 하나마나한 소리가 됩니다. 따지고 보면 출발하기 이전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 도리와 아울러 아무리 작은 행위, 염불 한 마디라도 결코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모든 존재는 양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참으로 공한 가운데 묘하게 있고, 묘하게 있으면서 또 공합니다.  우리 마음, 감정, 육신, 가지고 있는 물건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공한 가운데 있고, 있는 가운데 공한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하고 수긍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것이 중도[中道]입니다.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는데, 부처님인들 당신의 설법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굳이 있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설법 역시 모든 존재의 실상의 원리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그것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의 실상이 바로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래서 제7분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얻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청곡 : 홀로피는 연꽃(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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