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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8 00:17:54, 조회 : 1,04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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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일본불교의 도입
중국인 다음으로 일본인이 들어오면서 불교가 다시 미국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미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단체인 미국불교단은 미국에서 'Shin Buddhism’으로 알려진 정토 진종 니시혼간지의 미국 분원이다. 2011년 현재, 미국불교단은 약 60여 개의 사찰과 분원, 약 1,600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미국 정토진종의 기원은 1870년대 일본인들이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미국 서부에 온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들은 중국인들과 달리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이식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1900년경, 일본계 미국인은 2만 4천 명이 넘었으며 이즈음 정토, 니치렌, 선불교가 시카고의 세계종교회의를 통해 미국에 소개되었다.
1898년 첫 번째 포교승이 일본인 공동체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짧은 체류 기간 동안 재가 불자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이것이 미국불교단의 전신인 불교청년회이다. 불교청년회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1899년 니시혼간지 교토 본부에서 승려 수에이 소나다와 카쿠로 니시지마를 파견했다. 그해 샌프란시스코에 니시혼간지 말사(현재의 미국 본부)가 세워져 토요강연회와 일요법회가 열렸으며 일본인을 위한 사회봉사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일본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거주 지역을 따라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북미불교선교단과 소속 사찰이 세워졌으며 불교여성연합도 창립되었다.
그 후 미국불교단의 역사는 일본과 미국의 관계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 지방에서 반일본 정서가 격화되면서 일본인의 사업체와 건물들이 공격받았으며, 1907년에 이미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만 이민을 허용하는 신사협정이 체결되었다. 그것은 북미불교선교단 활동을 위축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안정적이고 가족 지향적인 일본인 공동체가 절실하게 필요해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일본인 공동체에서 정토진종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 일본에서와 달리, 사찰은 바자회, 댄스파티, 야구 경기, 영화, 장례식, 결혼식, 추도회, 일요법회, 젊은이를 위한 일요학교 등 광범위한 종교적 사회적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1914년 북미불교선교단은 약 25개의 지부와 사찰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교토의 니시혼간지 관할 아래 있었다.
1920년대 초 일본인의 재산 소유권을 제한하는 외국인토지법이 시행되었고 1924년 동양인 추방령이 발의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인은 새로운 사찰을 건립하기 위한 토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을 단결시켜 사찰은 일본 문화와의 연속성을 유지시키는 센터로서, 사회적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부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사찰은 육상 리그, 보이스카우트 캠프, 미국식의 댄스파티 등을 지원함으로써 적응과 변화를 위한 문화적 종교적 연속성과 장치를 제공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했다.
그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가 성장하며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이민 1세와 북미불교선교단 승려들은 일본어를 사용했지만, 1930년대 이민 2세가 나날이 늘어남에 따라 일본어로 된 불교 용어를 번역 할 필요가 생겼다. 단기적으로 기독교화의 우려를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 일본어와 영어가 혼용되어 오늘날까지 뚜렷한 민족적 종교적 특징을 부여하는 새로운 불교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 이후, 11만 1,170명의 재미 일본인이 12개의 수용소에 나누어 수용되었다. 이 수용소에서 북미불교선교단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민 2세 지도자의 등장과 이들의 미국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의식이 영어로 집전되었으며 미 당국과 협상할 일도 많았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한 이민 2세가 자연스럽게 정토진종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또한 재미 일본인들의 충성심과 미국화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하여 1944년 토파즈 수용소에서 '미국불교단'이라는 새 이름이 채택되었으며 차츰 일본 교토에 있는 니시혼간지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불교단은 정상으로 복귀하며 동부에도 사찰을 건립했다. 곧이어 이민 3세 지도자가 등장했고 1966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불교학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로써 일본어로 강의하는 교리 공부를 듣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교토로 갈 필요가 출신 이민 2세가 주지로 선출되었으며 취임식도 처음으로 교토가 아닌 미국에서 거행되었다.
1960년대 일본계 미국인들은 인종적, 종교적으로 소수 그룹이지만 미국 중산층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미국불교단의 주류화는 문제점도 낳았다. 신도들은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을 잃어버렸으며 많은 이민 2세 들이 불교에서 멀어졌다. 회원의 감소와 함께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 늘어나면서 성인교육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했으며 일본 정토진종과 다른 정토종파와의 국제 교류를 촉진시켰다. 동시에 초창기부터 신도이자 교역자로서 활동했던 비일본인에게 중요한 역할과 지위가 맡겨졌으며 좌선 그룹을 사찰에 끌어들이는 등, 개종 불자와 이민자 사이에 소통의 문을 열고자 노력했다.
1980년대와 1990년에 들어서서 미국불교단은 미국 공립학교 종교 교과서 선택 논쟁에서 다른 단체와 연합하여 친기독교적이고 반불교적인 성향의 교과서 사용을 금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한 인종적, 종교적 차별에 대하여 항의하는 등 한 세기 이상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초기부터 미 국불교단의 대들보였던 불교여성연합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여성들도 지도자로 임명 되었다.
좌선에 관심이 있는 개종 불자들은, 염불을 위주로 하는 정토진종에 별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에 미국 불교단은 개종 불교 외부에 작지만 뚜렷한 구역을 형성하였다. 반면 아시아계의 다른 이민 공동체와 철학, 교리, 신행에서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적은 규모와 집단적 성격 때문에 미국불교에 대한 논의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미국불교단은 다른 일본계 또는 중국계 미국인과 더불어 중산층 이민 불자 그룹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사회에 알맞은 형식을 모색하는 개척자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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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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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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