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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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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3:16:58, 조회 : 1,02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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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에도 매달리지 말라.
약부유인若復有人이 어차경중於此經中에 수지내지사구개등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위타인설爲他人設하면 기복基福이 승피勝彼하리라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일체제불一切諸佛과 급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及諸佛阿록多羅 三먁三菩 提 法 이 개종차경출皆從此經出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말해 주었다면, 그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 훨씬 뛰어나리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부처남과 모든 부처님의 최상의 깨달음의 도리는 다 이경전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곧 불법이 아니니라.”
경전을 지니는 것도 수지에 해당됩니다만, 여기서 수지는 ‘잘 터득을 해서’라는 뜻입니다. ‘저 복’은 ‘칠보를 보시한 복’입니다. 칠보를 지구에 가득히 채워서 보시한 복보다도 금강경 아니 금강경의 사구게만 잘 이해하고 남을 위해서 설명해준다면 그 복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복은 아무리 많더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이 지구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보시를 했다 하더라도 한 생각 잘못하면 큰 보시를 하고 얻은 그 복도 순식간에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1억을 보시하고 나서 자나 깨나 ‘내가 보시를 했네’하는 상相을 내고 있으 면 마이너스 2억,3억이 됩니다.
하지만 금강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무량대복, 인간의 궁극적 내면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량이고, 한계가 없습니다. 누가 뺏어 가고 싶어도 뺏어 갈 수가 없고, 빌려 주고 싶어도 빌려 줄 수 없고, 저당도 못 잡히고, 사기도 안 당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자기만이 수용할 수 있고, 한편 남에게 끊임없
이 한량없이 베풀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무량대복이 이미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성립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 내면의 가치에 눈을 뜨라고 간곡하게 일러주십니다. 거기에 눈을 뜨게 되면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정말 몇 푼어치도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없는 복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복을 누렸다 해도
요즘 중산층이 누리는 것보다 못합니다. 진시황이 비행기를 탔습니까? 잠수함을 탔습니까? 그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현대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풍요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유루복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허망한 것입니다. 불교는 이러한 이치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수준에서 살든지 다 른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를 하든지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어디에도 걸리지 않게 자 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종차경출皆從此經出’이라는 대목은 ‘모두가 이 경, 이 도리, 우리들의 궁극적 차원에서 나왔다는 것, 부처님의 깨달음도 여기에서 나왔음을 일러주는 내용입니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언제나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채근담』에 나오는 위 내용은 바로 우리 마음의 경전, 곧 우리 모두가 본래 신통한 빛을 감추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말하고, 숨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것이 신통입니다. 사리탑에서 방광을 했다, 모모 큰 스님이 방광하였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세상 빛으로 하면 전깃불이 훨씬 더 밝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방광보다 더 빛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생명의 실상이 얼마나 신통하고 훌륭한지를 확실하게 이해하면, 다시 말해 알고 보면 우리 가족, 내 이웃, 일체 생명이 부처님이라는 진실이 가슴에 척 와 닿으면 공부를 다 마친 것입니다. 여기에 눈을 뜨면 우리 모두 달라지고 변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열반하시기 직전까지 전도여행을 다니셨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팔만사천대장경을 설하신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위대한 불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에 집착을 하거나 그 관념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금강경입니다.
우리는 불법에 그만 목을 맵니다. 옴짝 달짝 못합니다. 금강경이 대단하다고 하 면 거기에 다 말려듭니다. 그러나 금강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방하착放下着, 그것마저 놓아버려야 합니다. 좋다고 집착하면 이미 떨어지는 것이고, 상으로 굳어지는 것이고, 금강경의 대의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이 대단하다고 하는 관념에 사로잡혀 버리면 이미 진정한 불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곧 불법이 아니다’라는 ‘즉비卽非’가 나옵니다. 뒤에 가면 ‘이 이름이 불법이다’라고 하는 논리가 이어져서 자주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불법과 깨달음을 소중하게 말해놓고도 󰡐거기에ㅐ 매달리지 말라󰡑는 말씀을 강조하시는 뜻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칠보를 이 우주에ㅐ 가득 채운 그 복이 얼마나 많으냐. 하지만 금강경의 이치는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뛰어난 복도 전부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만 거기에 목을 매고 그 가치에 어찌 할 바를 모르지만 그것마저 버려라. 소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 이 이름이 불법이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시원하고 통쾌합니다. 옛날부터 선사들이 특히 금강경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념을 싹 쓸어버립니다. 금강경은 마당을 깨끗이 쓸면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마저도 깨끗이 쓸어버리는 가르침입니다. 후련합니다.
“불법이란 곧 불법이 아니다”라는 것은 불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칠판에 뭔가를 가득 써 놓았다면 더 이상 칠판의 구실을 할 수 없지요. 깨끗이 닦아야만 다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법을 불법이 아니라고 할 때 진정한 불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진짜 불법이 가슴에 녹아듭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면 세상만사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끈적끈적하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치를 조금만 이해해도 정말 홀가분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청곡 : 사랑해요 부처님(박소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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