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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15:47:12, 조회 : 1,02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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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 13분, 여법하게 받아 지니라(如法受持分)
모든 것이 원만하고 구족하고 수승하고 청정해서 생사까지 초월하여 있는 이 도리를 무엇이라 일러야 좋겠습니까? 언어와 문자가 붙을 수 없고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그 자리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할것 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또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금강반야를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저 작은 먼지조차도 말한 적이 없으며 큰 세계도 말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상이 없다.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다.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성과도 없다. 정토 장엄도 없다. 이 몸마저 없다.”고 하시면서 여법수지분에서 금강반야바라밀을 법답게 받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반야바라밀입니까?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입니다.
수보리의 일화를 살펴봅시다. 어느 날 수보리가 좌선하고 있는데 공중에서 꽃을 흩뿌립니다. 수보리가 “꽃을 뿌리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자, “하늘의 제석입니다.”라는 대답이 들립니다. “어찌하여 꽃을 뿌리는가?” “존자께서 반야바라밀을 잘 설하심을 존중히 여기어 꽃 공양을 올립니다.” “내가 무엇을 설하였는가?” “말씀 없으심이 참 다운 설법입니다.”라는 제석의 말에서 여러분은 마음이 열리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금강반야바라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금강경을 여법 수지하라고 간곡하게 설하신 것입니다. 여법과 수지는 불교에서 잘 쓰는 말입니다. ‘여법’은 ‘법대로’, ‘가르침대로’ ‘이치대로’라는 뜻입니다. 인위적인 규칙에 대해 ‘여법하게’라고 했다면 ‘규칙대로’라는 뜻이 됩니다.
수지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하였습니다만, 경을 수지, 받아 지닌다는 것은 첫째 종이와 먹으로 된 책을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둘째 그 가르침을 마음속에 아로 새겨서 늘 잊지 않으며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지니는 수지가 중요하지만,늘 경전을 지니고 다니는 1차적인 수지도 중요합니다. 불자들은 항상 금강경, 천수경 등 경전을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생기면 전철이든 어디든 1분도 좋고, 2분도 좋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제3자가 보더라도 아름답고 근사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로서 삶의 태도가 배어들 수 있도록 늘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이시爾時에 수보리須菩提가 백불언白佛言하사대 세존世尊이시여 당하명차경當何名此經이며 아등我等이 운하봉지云何奉持하리잇고 불고수보리佛告須菩提하사대 시경是經은 명위금강반야바라밀名爲金剛般若波羅密이니 이시명자以是名字로 여당봉지汝當奉持하라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합니까? 그리고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합니까?
부처님께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다. 그대들은 반드시 이러한 이름으로 받들어 가자도록 하라.
지금까지 설한 내용만으로도 훌륭한 경전이 되므로 수보리가 부처님께 공부한 내용을 경으로 묶는다면 제목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여쭙습니다. 부처님께서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다이아몬드와 같이 날카롭고 빛나는 지혜, 명쾌한 지혜인 금강반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언어가 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허망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특히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불교 경전은 제목이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 제목만으로 수행을 삼기도 합니다. 길 가다가 동물을 만났을 때 ‘나무대방광불화엄경’ 하고 세 번 축원해 주면 그 동물은 경 이름만 듣고도 미혹한 중생의 탈을 벗고 제도된다고 합니다. 육조 혜능 스님은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라고 하셨고, 일본의 법화종단에서는 나무묘법연화경을 지성으로 외워 ‘남묘호렝게교’라고 합니다. 물론 이름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염하든지 간에 마음을 얼마나 집중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들은 설화인데, 간단하게 이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만 말
씀드리겠습니다. 귀도 어둡고, 눈도 안 보이고, 방금 전 일도 잊어버리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에게 시주를 받은 한 스님이 염불 공덕을 지으라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일러 주었습니다.할머니가 아무리 짧은 염불이라도 금세 잊어버린다고 걱정하자, 스님이 잊어먹을 때마다 흔들면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하면서 작은 방울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스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염불을 하다가 잊어먹으면 방울을 흔들어 기억을 되살려가며 염불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못된 며느리가 할머니의 방울을 감춰 버렸습니다. 염불을 잊어먹은 할머니가 방울을 찾다가 없으니 며느리에게 “애야, 너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생각나지, 좀 알려다오,”라고 묻자, 못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망신시킬 요량으로, “옆집에 김첨지수염보살이에요, ”라며 쏘아붙이듯 대답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옆집에 김첨지수염보살’은 잊어먹지 않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온종일 정성껏 ’옆집에 김첨지수염보살‘을 염했습니다. 이 염불소리를 못마땅하게 여긴 못된 며느리가 급기야 남편을 꼬드겨 할머니를 고려장시키려 했는데 냇가의 징검다리에 눈먼 할머니를 내려놓자, 할머니의 몸은 돌부처로 변하고, 영혼은 극락으로 갔다고 합니다.
즉심시불을 잘못 알아듣고 짚신불이라고 염해서 어느날 환히 밝
아졌다는 일화 등 이와 비슷한 얘기가 많습니다. 여기서 신통한 이적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이든 관세음보살이든 옆집에 김첨지수염보살이든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초점을 한 곳에 모아 자기 내부에 있는 불성생명력에 불을 지펴내는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신청곡 : 관세음보살(범조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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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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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을 공부하게되어 감사합니다 항상 건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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