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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25
普德華 2021-06-06 17:01:54, 조회 : 972, 추천 : 0
부처님의 32상도 부정하는데 다른 것이야 오죽하겠는가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으로 見如來不[견여래부]아 不也[불야]니다 世尊[세존]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불가이삼십이상]으로 得見如來[득견여래]니 何以故[하이고]요 如來[여래]가 設三十二相[설삼십이상]이 卽是非相[즉시비상]일새 是名三十二相[시명삼십이상]이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 두가지의 거룩한 상호로써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서른두 가지의 거룩한 상호로써는 여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서른두 가지의 거룩한 상호는 곧 상호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서른두가지의 거룩한 상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부처님의 32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가슴에 만卍자가 있고, 정상頂相에 육계肉髻가 있고, 미간에 백호白毫가 있고, 귀가 길고, 코가 높고, 무릎을 지날 정도로 긴 팔, 긴 손가락, 평발 등 특별한 32길상吉相을 지녀셨습니다. 32상은 오백생을 거듭하는 동안 쌓은 선인善因으로 얻게 된다고 합니다. 32상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잇으면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를 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길상입니다. 그런데 32상을 가지신 부처님께서 32상을 보고 여래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자 수보리는 곧바로 아니라고 답합니다.

사람의 얼굴 모습을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얼굴에 대해 말하지는 않지요.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고 인격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감히 수보리는 하늘같은 스승의 신체문제까지 꼬집어서 "32상이라고 하는 그 이름이 32상일 뿐이다."라고 하여 부처님의 32상을 가차없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 와서는 정말로 탄복할 일입니다. 어떤 종교, 철학, 성인의 말씀에서도 이러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예로부터 소견이 뛰어난 선사들이 금강경을 높이 숭상하는 것은 이렇게 시원스러운 가르침 때문입니다.부처님의 32상도 부정하는데, 우리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해가니 결국에는 무상한 것이고, 고정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무상한 것에 대한 인식이 철저해질 때 우리의 참모습, 참 마음자리가 드러납니다.

객진번뇌客塵煩惱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을 떠난 나그네가 여관에서 하루 밤을 묵고 다음날 행선지를 향해 떠나갑니다.그런데 여관 주인은 떠나지 않습니다. 이 떠나는 나그네처럼 우리 마음 속에서 쉼 없이 요동치는 번뇌를 놓아버려야 합니다. 무상한 번뇌를 다 놓아버렸을 때 떠나지 않는 주인처럼 우리의 진실한 주인인 참 마음자리가 홀연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낱낱이 부정한 이면에는 진실생명이라는 대긍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것이 목숨을 보시한 공덕보다 크다.

수보리야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이 以恒河沙等身命(이항하사등신명)으로 布施(보시)하고 若復有人(약부유인)이
於此經中(어차경중)에 乃至受持四句偈等(내지수지사구게등)하야 爲他人說(위타인설)하면 其福(기복)이 甚多(심다)니라.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수많은 목숨을 바쳐 널리 보시한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경전 가운데서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설명해 주었다면 그 복이 훨씬 많으니라."

존중정교분에서처럼 금강경의 높은 가치에 대해 설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앞에서는 칠보로 비유했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목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우주와도 맞먹는 것이 바로 우리 목숨입니다. 그런데 목숨을 보시한 공덕보다도 금강경을 전한 공덕이 훨씬 수승하다는 내용입니다.

몇 년 전 일본 지하철에서 살신성인한 부산출신의 한국 대학생 이수현씨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수현씨의 거룩한 죽음은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바꿀 정도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추모사업회와 추모식을 통해 이수현씨를 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언젠가는 새어버릴 유루복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금강경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금강경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이 목숨을 한 번, 아니 수십 번을 버린다 하더라도 금강경의 도리를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신심 깊은 불자라면 누구나 금강경을 수백 번 읽어보고 마음에 새겨보고 깊이 사유할 가치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물론 금강경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까지 강조한 것은 다 그만한 까닭이 있지요. 지금까지 "금강경은 금강경이 아니고 그 이름이 금강경이다."라고 하여 자칫하면 소홀하게 취급당할까봐 매우 강한 비유를 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금강경이라는 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말 그대로 取不得(취부득)捨不得(사부득)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반야의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반야의 안목이 열리면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불생불멸의 불가사의한 힘이 넘쳐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열어줍니다. 이렇듯 삶의 실상을 밝혀주기에 금강경의 가치가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목숨을 보시한 것보다 수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청곡 : 옥아의 꽃신(심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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