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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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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13:08:58, 조회 : 92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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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을 환하게 밝히는 길
수보리須菩提야 약보살若菩薩이 심주어법心住於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하면 여인如人이 입암入暗에 즉무소견則無所見이요 약보살若菩薩이 심부주법心不住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하면 여인如人이 유목有目하야 일광명조日光明照에 견종종색見種種色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온갖 것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보살이 마음을 온갖 것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은, 마치 사람에게 밝은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칠 적에 갖가지의 온갖 사물들을 분별하여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심주어법心住於法’. 여기서 법은 모든 대상, 존재를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조건을 붙이고 대가를 바랍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계산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마음에 집착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하면서 행하는 보시는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암흑 세상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어딘가에 부딪치고 굴러서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될 것입니다. 어떤 조건 , 이유를 달고 보시하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어떤 보살이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한
다면 태양빛도 환하게 잘 비치고 눈도 밝아져 가지가지 사물을 잘 분별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목에 불교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여기에서는 보시라고 표현했지만, 이 말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일체 행위가 다 포함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머무르면, 집착하게되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나 운영하는 것도 옆에서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뻔히 눈에 보이는데, 본인은 그만 어떤 상황에 마음이 딱 달아 붙어 보이지 않는 겁니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곧 집착하지 않고 조건도 붙이지 않고 행하면 무엇을 하든지 그르치지 않습니다. 불자라면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대만에서 자제공덕회를 이 끄는 증엄 스님은 이 시대의 관세음보살로 칭송받는 분입니다. 그분이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교회를 지어준 일이 있습니다. 이분은 이미 마음속에 ‘나다 너다, 불교인이다 기독교인이다’하는 분별과 차별을 떠난 분입니다. 이런 분이야말로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사람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불자들이 모두 그러한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지만 한 생각 돌이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의 빛, 지혜의 빛입니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입니다. 지혜가 있을 때 자비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무슨 일을 해도 캄캄합니다. 지혜가 없어 집착하기 때문에 결국 상처투성이 인생이 됩니다. 스스로 상처가 많은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동안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식, 아내, 남편, 형제, 집안, 부모 때문에 등등 별별 ‘ 때문에’라는 이유를 붙이지만 모두 아닙니다. 단 한 가지 이유는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만 있으면 주변상황이 어떻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혜로 워서 마음에 조간과 이유를 달지 않고 베풀고, 거기에 마물지 않는다면 밝은 눈과 태양빛이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있으니 계단이 아무리 좁고 험하더라도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잘 오르내립니다.
도로에 차가 아무리 씽씽 달려도 그 차를 피해서 다닙니다. 인생길을 가는 데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순리에 따라서 잘 살 수 있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당래지세[當來之世]에 약유선남자선여인[若有善男子善女人]이 능어차경[能於此經]에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면 즉위여래[則爲如來]가 이불지혜[以佛智慧]로 실지시인[悉知是人]하며 실견시인[悉見是人]하야 개득성취무량무변공덕[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하리라.
수보리야, 다음 세상에서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곧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에 대하여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본다. 이 사람은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남김없이 성취하리라."
당래지세는 불멸 후 제1 오백년이 됐든, 제5 오백 년이 됐든 간에 앞으로 오는 세상, 미래세상을 말합니다. 오는 세상에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하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공덕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열심히 보시하고, 절하고, 기도해서 얻는 공덕은 몇 푼어치 안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덕은 없는 것을 쌓아서 얻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방편으로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만, 본래 갖추고 있는 공덕을 알고 누리고 쓰라는 것이 불교의 바른 가르침입니다.
무량무변공덕[無量無邊功德]이 알량하게 몇 푼 희사 했다 해서 나오겠습니까? 무량무변공덕은 우리들 자신 안에 충만해 있는 공덕입니다.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볼 줄 몰라서 못 쓸 뿐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는 것은 결국 공덕을 가린 것이 환상인 줄 알고 공덕을 드러내서 잘 쓰기위해서입니다.
한편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한다고 할 때, 이 경전은 금강경 전편을 뜻합니다만, 특히 앞서 말씀하신 "여인[如人]이 입암[入暗]에 즉무소견이요 약보살[若菩薩]이 심부주법[心不住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하면 여인[如人]이 유목[有目]하야 일광명조[日光明照]에 견종종색[見種種色]"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집착이 있으면 캄캄하고, 집착이 없으면 환하다'는 말씀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훌륭한 열쇠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 열쇠만 있으면 인생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 끝에 한 번 더 금강경의 위대함을 부각시킨 다음 "누가 몰라줘도 걱정하지 마라. 여래는 내가 다 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래는 이천육백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의 지혜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는 캄캄해도 남의 일 같으면 환하게 알고 훈수를 잘 두기 마련입니다. 제3자의 입장이 되면 누구나 부처의 지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제3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자기가 당면한 일과 자기 가족의 일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좋은 해결책이 떠오를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본래 갖추어진 지혜, 안목이 열린 것을 뜻합니다.
이상 금강반야바라밀경 상권이 끝났습니다. 권[卷]은 말을 권자입니다. 한 발 정도 종이를 둘둘말면
그것이 한 권입니다. 그 이상이 되면 간수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내용이 아니라 양에 따라서 경전을 1권, 2권으로 나누었고 여기까지가 상권에 해당됩니다.
신청곡 : 인생(도신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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