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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32
普德華 2021-06-19 13:27:14, 조회 : 937, 추천 : 0
멋진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설하다.

수보리須菩提야 이요언지以要言之컨댄 시경是經은 유불가사의불가칭량부변공덕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하니 여래如來가 위발대승자설爲發大乘者說이며 위발최상승자설爲發最上乘者說이니라

수보리야, 요점만을 말한다면, 이 경은 상상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끝도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여래가 대승大乘의 마음을 낸 사람들을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最上乘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이 경전에는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끝없는 공덕이 있어서 여래까지 아무에게나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대승자, 최상승자에게 설했다고 하셨습니다. 대승자, 최상승자는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고 고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최고의 인격자, 영혼이 가장 맑은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이 인간으로 태어나 최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한 경전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사실 부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말할 수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생부인 정반왕은 늦게 얻은 자식이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는 듯해서 온갖 신경을 다 썼습니다. 여름궁전, 겨울궁전까지 지어서 세속의 향락을 누리도록 하였지만 결국 부처님의 마음을 달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도 세속적인 가치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부귀영화가 보장된 태자의 자리를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만한 대승자, 최승자인가?󰡑 세속적인 작은 욕망, 하찮은 것에 집착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매달려 살다보면 거기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만큼밖에 못 삽니다. 아무리 위대한 마음, 부처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해도 진리에 눈뜨지 못하고, 세속적인 가치에 끄달려 살면 그 마음을 허공처럼 크게 확대시킬 수 없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고 깊이 새겨야 비로소 우리가 확대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자는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의 화두는 무엇이겠습니까? 󰡐불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가 불자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방대한 가르침 속에서 󰡐과연 진정한 불법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남다르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인생을 멋지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최고의 가치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깨달음의 짐을 짊어진 사람의 공덕

약유인若有人이 능수지독송能受持讀誦야 광위인설廣爲人說하면 여래如來가 실지시인悉知是人하며 실견시인悉見是人하야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하리니 여시인등如是人等은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卽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약요소법자若樂小法者는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즉어차경則於此經에 불능청수독송不能聽受讀誦하야 위인해설爲人解說하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이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음을 모두 알고 모두 보노라. 이러한 사람들은 곧 여래의 최상의 깨달음을 온몸으로 짊어진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는 소견, 남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수명에 대한 소견에 집착하여 곧 이 경을 듣고, 받아들이거나 읽고 외우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하여 주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누구나 경전을 가지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또한 글만 알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위해 일러주는 것입니다. 여기 서사라는 말이 빠졌습니다만, 널리 남을 위해 알려주는 것이 서사, 즉 사경이 이에 해당됩니다. 예전에는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아 경전을 베껴서 남에게 전해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법공양도 일종의 서사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공양의 공덕이 최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경 수행도 좋고, 법공양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평소에 법공양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 나름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억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일까 싶어서 법공양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도가 같은 사람끼리는 서로 안다[同道可知]."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정신이 이러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곧 여래의 수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래가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이 이미 여래의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다 본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매우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이러한 사람은 "여래께서 깨달으신 최상의 깨달음을 다 짊어진 사람들이다[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것입니다. 하담荷擔이라는 말은 '짐을 지다'라는말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부처님 당신의 짐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주머니, 핸드백, 걸망 등에 별별 잡동사니를 다 넣고 다니지만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러준다면 이미 마음속에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의 문제, 나의 화두, 나의 과제가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과연 무엇일까?'에  자나 깨나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래의 깨달음을 다 짊어진 사람입니다.

한편 왜 이렇게 부처님이 금강경을 여래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서
이야기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해서 이 경을 받아들이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서 해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인배, 중생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틀, 한계, 기준, 가치관을 설정해 놓고 남들도 그렇게 살아가니까 본인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줄 압니다. 보고 들은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에 자꾸 작아집니다. 성인의 가르침도 몰라봅니다. 우리 중생들의 그릇, 됨됨이,생각이 미치기에는 성인의 가르침이 너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순전히 마음, 생각의 문제입니다. 세월이나 어떤 단계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 생각 돌이키면 됩니다. 자꾸 독송하고, 읽고, 쓰고, 이야기하고, 서로 토론도 하고, 의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에 확 다가오는 계기가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면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육조 혜능 스님은 금강경 사구게 한 구
절을 듣고는 한순간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분도 세속적인 가치관, 노모를 모시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생각하고 살던 분입니다. 그분에게 명예나 부귀영화는 가당치도 않았지요. 그저 몸 하나 간수해 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로 조촐한 삶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런데 이 금강경 한 구절을 얻어듣고는 한순간에 마음이 우주처럼 커져버린 겁니다. 시골의 일자무식 나무꾼 노총각이었던 육조 혜능 스님에 비하면 오늘날의 우리는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고 들은 견문도 넓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폭넓게 접했습니다. 참으로 희망을 가지고 공부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세속적인 가치관은 물론이고, 복을 짓고 공덕을 쌓으면 좋은 결
과를 얻고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믿는 인천인과교 수준인 소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금강경의 수준은 깊이와 높이를 말할 수없는 광대무변의 경지이기 때문에 소법을 가지고 논할 게 아닙니다. 소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고하는 자아의식, 남이라고 하는 차별의식, 부처님과 비교해 봤을 때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는 열등의식, 나이에 대한 한계의식에 늘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을 듣고 받아들이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해설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서 해설한다고 하면 이미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라고 하는 집착에서 떠나려 작정하고,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견이나 인견 못지않게 '중생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타성에 젖어있는 중생견이나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 타령을 많이 하는데, 수자상에서도 벗어나야합니다. 또한 이러한 집착해서는 안 될 집착에서 아직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 이것은 아니다'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족한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아니다’라고 생각할 줄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경지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법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언젠가는 벗어날 기회가 오기 마련 입니다. 한편, 소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금강경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읽지도 않을 것이고,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청곡 :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노사연(duet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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