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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44
법광(法光) 2021-07-27 23:16:15, 조회 : 960, 추천 : 0



7. 기타 아시아불교 전통
① 베트남불교-베트남 전쟁, 틱낫한과 참여불교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베트남불교 지도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불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중 특히 중요한 인물은 틱티엔안(1926~1980)과 틱낫한(1926~ )이다.

틱티엔안은 일본에서 임제종을 수행했으며 1966년 UCLA의 교환교수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학생들의 요청으로 참선을 가르치게 되었다. 1971년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베트남불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불교를 가르치는 기관인 국제불교명상센터를 장립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밀려오는 망명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미국 생활을 안내하고 교육하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틱티엔안은 베트남불교의 전통만 고수하지 않고 미국적 환경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1976년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구니계를 주었으며 재가신도들에게도 계를 주었다. 또한 그는 미국 개종 불자와 베트남불교 공동체 사이에 교량을 놓으려고 노력했다. 1980년 입적 후에는 미국에서 첫 번째 구족계를 받은 비구니 카루나 다르마가 지도하고 있으며, 오늘날 국제불교명상센터는 복합적이며 다민족 출신 불자들의 센터로 이용된다.

베트남불교의 기여는 전통 수행이나 교리를 서양에 알린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던 불교의 사회참여라는 면모를 베트남불교는 극적으로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중 하나가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 발생한 승려들의 집단적 분신자살 사건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3년, 틱광둑(1897 ~1963)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디엠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한낮에 사이공 시내에서 집단 분신자살을 했다. 충격적인 모습이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대학생들의 반전운동과 맞물러 베트남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켰을 뿐 아니라 불교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불교가 촉발시킨 젠붐이 주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에 호소했다면 베트남불교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 결과 불교는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기초로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틱낫한은 불교의 사회적 실천 방향을 제시한 선구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이전부터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정책에 항거한 반식민주의자였다. 베트남전쟁 동안 반전 평화 사상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전쟁 후에는 사회적 실천에 적극 나선 참여불교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그는 평화 사상을 표명한 많은 시와 저술로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으며, 1967년에는 마틴 루터 킹이 노벨평화상 후 보자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현재 서양에서 진보적 시인, 정신적 스승, 정치 지도자로서 달라이라마에 비견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틱낫한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7세에 출가하여 선과 정토를 배웠으며 1949년 구족계를 받고 곧 바로 사이공의 불교계에서 진보적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프린스턴대학에서 종교학을 배웠으며 컬럼비아대학에서 현대 불교를 강의했다. 1964년 베트남으로 돌아갔으나 곧 디엠 독재정권이 몰락하자 남북의 평화로운 화해 방법을 찾는 종교 조직인 베트남 통일불교교회에 깊이 관여했다. 1965년에는 상즉종을 창립했으며 재가자, 비구, 비구니를 포함하는 이 조직은 곧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1966년 틱낫한은 베트남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하여 19개국을 순방하면서 수많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여행의 경험으로 그는 반전운동을 고취하는 『베트남: 불바다에서 핀 연꽃』을 저술했다.

암살의 위험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1969년 소르본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동시에 파리평화회의 기간 중 베트남 불교평화사절단을 결성하여 막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남베트남이 패망할 때 틱낫한은 이미 반체제 인사로 지목되어 프랑스에 망명해 있었기 때문에, 전쟁 후 공산 정권이 많은 승려들을 처형하거나 수감했음에도 그는 프랑스에서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사실과 보트피플에 대하여 냉정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것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아직까지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사이공 함락 후 틱낫한은 베트남 망명자의 활동과 정치범의 석방, 베트남과 서방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며, 1982년에는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정신적, 사회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인 공동체인 플럼 빌리지를 설립했다. 그는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지만 미국에도 많은 추종자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디어 파크 사원, 뉴욕의 벽암사, 미시시피의 목련 숲 사원은 여름과 겨울 대규모의 수행 프로그램이 개최되며 주말에도 안거 프로그램이 열린다.

1980년대 초 수많은 서양 불자들이 상즉종에서 계를 받았으며 1983년 틱낫한은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비영리조직인 '염처생활공동체'를 설립하고 안거를 지도했다. 염처생활 공동체는 전 세계에 200개 이상의 지부가 있지만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 그는 또한 전쟁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특히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퇴역 군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염처 수행 안거를 제공했다.

틱낫한은 지난 30년간 학문적 저술에서 시에 이르기까지 100권 이상의 불교 관련 서적을 저술했으며,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염처의 기적』, 『평화로움』, 『살아 있는 붓다, 살아 있는 예수』 등의 책에서 모든 존재의 상호 연관성과 자비에 대한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또 그는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행으로서 '염처수행법’을 강조했으며 걷기 명상과 통찰 명상을 중점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당신은 나의 부처님 - 비뮤티(홍범석)

眞虛性宗 [2021-07-28]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 7월 29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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