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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52
普德華 2021-07-29 20:00:06, 조회 : 1,167, 추천 : 0
금강경 제 29분, 위의가 조용하다(威儀寂精分)

불교에서는 삼천 위의 팔만 세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의는 행동거지입니다. 수행자들은 삼천 가지, 좀 더 센분화하여

팔만 가지의 미세한 행동거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교인은 만인의 사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씨, 몸가짐, 눈빛, 걸음걸이, 지식, 성격 심지어 필체까지 잘 다듬고 갖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위의적정이라는 말은 가고 오고 앉고 머물고 눕고 하는 모습이 적정하다는 것입니다.
가도 가는 것이 아니고 와도 오는 것이 아니고 앉아도 앉는 것이 아니고 누워도 눕는 것이 아니므로 고요할 적, 고요할 정을 썼습니다. 그런데 금강경 제29분 위의적정분에스는 오고 가고 앉고 눕는 모습을 여래로 본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하였지만 어떤 고정된 모습을 부처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우리 마음과 연관시켜 생각해도 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 관념, 희로애락, 가족관계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체에 대해 고정관념을
텅 비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래란 본래 감도 없고 옴도 없어서 여래라 합니다. 부처님게서는 "만일 사람들이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거나 한다면 그 사람은 나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가고 옴이 있으면 상[相]이 있고, 상이 있으면 집착이 있습니다. 그래서야 어찌 시방과 삼세에 충만하고 융통 자재할 수 있겠습니가? 다만 물이 흐리면 달이 숨습니다.

이와같이 달이 오고 감이 아니듯이 물이 맑고 흐림을 인연할 뿐입니다. 한마듬 청정하면 부처가 나타나고 한마음 어두우면 부처가 숨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고 흐림이 있을지언정 부처가 오고 감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본래 위의와 거동이 텅 비어 고요할 뿐입니다.


부처도 여래도 신도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수보리須菩提야 약유인若有人이 언言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如來가 약래약거약좌약와若來若去若坐若臥라하면

'여래가 혹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라고 하면
시인是人은 불해아소설의不解我所說義니
이 사람은 내가 말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자如來者는 무소종래無所從來며 역무소거亦無所去일새
왜냐하면 여래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명여래故名如來니라
그러므로 '그렇게 오다'라고 부른다.

세존은 세상에서 존경받을 만한 분, 여래는 진실에서 오신 분, 진리를 깨달으신 분, 진리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볼 대 현상적인 입장과 역사적인 입장, 궁극적인 입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천차만별의 남녀노소는 역사적이고 현상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 궁극적인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여래입니다. 그래서 행동거지를 보고 여래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오고갈 수 있지만, 궁극적 입장에서 보면 온 것도 아니고 간 것도 아닌지라 오고 가는 것을 자유자재로 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육신이 이동하려면 걸어 가든 차를 타고 가든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교통 수단도 필요 없고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거리가 멀고 가까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먼 거리도 0.1초안에 갈 수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한 불자는 무슨 말인지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것이 모든 일을 이뤄가고 일체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궁극적 나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는 과감하게 여래라고 했습니다만, 이제 어느정도 스스로 여래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불교는 간혹 눈에 들어오는 현상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사실에 눈을 뜨라고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철들어서 좀 더 성숙된 삶, 지혜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여래의 모습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나는 어디로 부터 온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유자재로 순식간에 수억 만리도 갈 수 있는 여래입니다.

불교에서 흔히 잘 쓰는 "무소종래無所從來 역무소거亦無所去 와도 온 것이 없고 가도 간 것이 없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지만, 불자들은 이해합니다. 말장난이 아니라 궁극적인 입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불신보변佛身普遍 충만어법계充滿於法界,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가듣 차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하면 신앙의 대상, 위대한 스승, 복을 주는 분, 성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분을 떠올리는 데, 여기서 부처님은 진리, 우리의 궁극적 입장을 가르킵니다. 그래서고명여래故名如來, 이름을 여래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달마와 저와 모든 분이 똑같이 평등합니다. 같은 격입니다. 그래서 위의가 적정한 것입니다. 가고 오고 앉고 눕고 하는 것이 끊어진 자리가 똑같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마음은 여래와 같이 오고 감이 없으면서 자유자재로 오고 갑니다. 이 마음 밖에 다른 여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일체유심조, 전부 다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불교는 진리를 확연하게 깨달으신 부처님이 당신의 마음에 비춰온 존재의 실상 그대로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수행이 깊어지고 눈이 열릴수록 수긍이 갑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아! 정말 맞는 말이다.'하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 철이 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신청곡 : 옛 절을 지나며-오영묵·허설 노래,한보리(청허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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