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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46
법광(法光) 2021-07-30 09:02:13, 조회 : 941, 추천 : 0



숭산 스님은 1972년 46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자리 잡고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서서히 좌선과 화두, 법문, 염불, 절을 결합시킨 한국불교 수행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곧 브라운대학 학생들이 가르침에 관심을 가졌으며 세력이 급속하게 확장되어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천 명 이상의 학생들을 지도했다. 숭산 스님은 먼저 미국 대학생들에게 선을 가르치고 그들을 중심으로 선원을 개원한 다음, 그곳에 한국계 미국인들이 참여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포교를 했다. 그 때문에 가르침은 이민자들의 '이민 보따리 불교' 차원을 넘어서 미국 주류 사회에 파고들 수 있었다.

1983년 숭산 스님은 한국선의 미국화를 위해 관음선종을 창립하고 32개 나라에 130 개가 넘는 포교 센터를 세웠다. 관음선종은 한국불교 경전과 의식을 그대로 사용하며 굳이 출가를 권유하지 않기 때문에 재가 수행자가 대부분이다. 미국에는 관음 선종 본부인 프로비던스 선 센터를 비롯하여 버클리 공문사, 모하비사막 선 센터 등 여러 지역에 50여 개의 선원이 있으며 한국의 화계사와 무상사와도 연계되어 있다. 또 프라이머리 포인트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숭산 스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르침은 많은 서양인에게 인기를 끌었다. 숭산 스님은 영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지만 문법과 어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어 나열 영어 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달마 대사와 양 무제의 대화에서 가져온 'Don't Know Zen'이라고 불렀다. 무엇을 하든 그저 모른다는 마음으로 일심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파격적이었으나, 쉽고 단순하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정곡을 찌르는 법문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또한 “기독교나 불교나 다 본체로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공부이다. 본체로 돌아가면 대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그러면 아랫배에 센터가 생긴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게 다 진리 아닌 게 없게 된다. 진리를 깨달아 대자연과 하나 되는 공부, 그것을 수도라고도 하고 신앙이라고도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서로 공존하는 것을 추구했으며, 서양에서 활동하는 여러 불교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협력했다. 저서로는 『부처님에게 재를 털기』, 『선의 컴퍼스』, 『오직 모를 뿐』 등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숭산 스님은 불교의 미국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지도자 지위를 넘겨주었다. 그의 법제자는 13명이며 22명의 고참자에게 '지도법사'라는 호칭을 주고 권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관음선종은 2004년 숭산 스님의 입적 이후 미국인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 활동하거나 다른 개종 불교 그룹에 참여하는 등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한국불교와의 연계도 느슨해졌다.

미국 동부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여러 이민 불교 사찰이 활동 중이다. 1974년 법안 스님이 뉴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맨해튼에 원각사를 건립했다. 원각사는 그후 셀리스베리 밀즈의 넓은 부지로 옮겨 졌으며 2007년 스님의 입적 뒤에는 통도사 뉴욕 포교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법안 스님은 1989년에 미주 현대불교신문사를 창간해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포교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 서부에서는 도안 스님이 로스앤젤레스의 관음사를 맡아 2006년 입적 때까지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한국 사찰로 발전시켰다. 청화 스님은 1992년 캘리포니아 하이랜드 스프링에서 10여 명의 스님과 함께 동안거 결제를 했으며 그 후 캘리 포니아 카멜 삼보사에 주석하면서 1995년 1월에는 '순선안심탁마법회’ 열고 참선을 가르 쳤다. 그해 6월에는 삼보사에 금강선원을 개원하고 3년 결사를 하면서 염불선을 가르쳤다. 또한 한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하와이에는 1975년 대원 스님의 발원으로 대원사가 창건되었다.

현재 한국불교 사찰 중 미국 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포교 활동을 하는 곳은 대행 스님의 한마음선원이다. 1987년 모건힐 지원 개원을 출발점으로 하여 2010년 현재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캐나다 토론토,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 한국 교포와 외국인 포교에 노력하고 있다. 대행 스님은 1999 년 부시 대통령의 66회 생일 기념식에 한국 승려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초청되었다. 이러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마음선원은 한국 본원과 해외 지부 사이에 긴밀한 협조와 체계적인 관리 아래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편, 원불교는 1970년대 중반 뉴욕교당을 창건하고 미국 전역에 20여 개의 포교당을 건립했다. 2002 년에는 필라델피아에 원불교미주선학대학원을 개교하는 등 미국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기구로 성장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조계종 사찰들은 대부분 효과적인 행정기구도 없이 개인적인 원력과 노력에 기대고 있다.

이처럼 종단적인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 없이 한 개인의 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스님들의 부족한 영어실력도 이민 2세를 포교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사찰이나 승려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때로는 스님들이 돈을 벌려고 사찰 밖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종종 재가신도나 다른 나라 불교인들의 의혹을 사기도 하며 한때 많은 한국 스님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환속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불교의 미국 포교 활동은 언어, 비자 및 영주권 등의 문제들 때문에 교민을 대상으로 한 포교에 집중되었다. 또한 전통적인 기도, 염불, 제사, 천도재 등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의례를 고수하고 있어 미국 개종 불자들뿐 아니라 이민 2세를 대상으로 포교하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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