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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1 15:54:05, 조회 : 94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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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 31분, 知見不生分(지견을 내지 않는다)
지견(知見)은 불교에서 아주 잘 쓰는 말인데,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아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릅니다. 지혜, 소견과 약간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깨달음에 대한 이해로 보면 됩니다.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 지견이 있어.”“공부가 된 줄 알았더니 그 사람 지견이 아주 형편없더군.”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불법을 통한 지혜, 또 다른 차원의 안목이라는 뜻으로 지견을 쓰는 것입니다. 불자는 지혜와 더불어 지견도 익숙하게 써야 합니다. 여기 지견불생이란 ‘내지말라’는 뜻입니다. 지혜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지요? 아닙니다. 왜 그런지 여기 지견불생분에서 꿰뚫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 공부를 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안다. 본다’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 알음알이로 생각하고 헤아려 아는 것과 보는 것이 끊어져서 생기지 않아야 비로소 반야바라밀의 실답게 알고 실답게 보는 것이 살아나게 됩니다.
여래가 언제 아견, 인견, 중생견을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여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여래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는 여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라고 하는 것이 없어야 된다고 알아야 하며, 보아야하며, 믿어야 됩니다. 백 가지로 많이 아는 것이 구하는 것 없음만 같지 못하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구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음을 배우면 곧 마음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습니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 그를 일러 부처라 합니다.
업장을 참회하는 대신 힘써 보살행을 하라
수보리須菩提야 약인若人이 언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명에 대한 지견을 말하더라'고 한다면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시인是人이 해아소설의부解我所設義不아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은 내가 말한 이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시인是人이 불해여래소설의不解如來所設義이니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이고何以故오 세존世尊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비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卽非我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명이라는 지견은, 곧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명에 대한 지견이 아닙니다.
시명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다.
그 이름이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명에 대한 지견일 뿐입니다.
앞에서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해서 설했습니다. 상相은 어떤 견해에서 나옵니다.예를 들어서 자아의식, 자기 자신에 대한 고집과 유사한 의식, 사고를 아상 또는 아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상, 아견에 대한 설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편의상 그런 것이지 아견(자아의식), 인견(차별의식), 중생견(열등의식), 수자견(한계의식) 등이 고정불변한 실체가 있기 때문에 설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범부들이 살아가면서 그런 성향을 덜어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설령 그런 소리를 했다 하더라도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환영으로 지나가는 소리였다고 이해해야 됩니다. 수보리는 이미 공부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해 말해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상에 대한 실체를 알고, 실상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린느 수보리처럼 아상, 인상, 중생상,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도 그것이 고정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중생의 상황에 맞춰서 해주신 말씀, 이름일 뿐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저 푸른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듯이 잠깐 인연에 의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없앨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푸른 하늘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말했지만 곧 아견.인견.중생견. 수자견이 아니다.왜냐하면 실답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만일 있었ㄷ던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이렇게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번뇌, 망상, 탐, 진, 치 삼독심에 갈등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래 없는 것이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에서 사상四相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삼독을 주로 말합니다. 사상이든, 삼독이든, 팔만 사천 번뇌든 결국 한 꾸러미입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문제삼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 불교는 참회를 강조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번뇌와 지혜가 따로 없습니다.
어느 날 번뇌 무명이 깨달음의 지혜로 얼굴을 바꿉니다. 저 구름 낀 하늘이 푸른 하늘이 되고 푸른 하늘이 때로는 구름 낀 하늘이 됩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항상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만 생각합니다. 구름 좀 끼었다고 해도 금새 걷힐 것이라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는 것이 금강경 공부한 사람의 삶입니다.
금강경에서 여러 차례 사상을 말하면서도 그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비의 논리를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의 문제까지도 즉비의 논리에 해당됩니다. 금강경은 사상마저 다 날려 버리고 부수어 버리는 입장인 것입니다.
저 앞에서는 사상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뤘는데 여기 금강경 끝부분에서는 완전히 바닥을 내어서 없다는 입장을 강조합니다. 죄의식을 갖고 전전생부터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은 업장을 참회하는 대신 힘써 보살행을 하십시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잘 쓰고, 보살행을 하면 됩니다. 금강경 공부를 통해서 모든 부정적인 것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시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열립니다.
신청곡 : 식은 차를 마신다(수안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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