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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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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30 11:44:47, 조회 : 89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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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적의 게송 5
稽首十力大精進(계수10력대정진)하며
큰 정진으로 열 가지 힘을 얻으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이 『유마경』에는 열 가지 지혜의 힘[十力]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앞에서 보살들의 덕행을 설명하는 부분과 그 외에도 이미 나왔지만, 부처님이 가지신 힘이므로 좀 더 익숙하게 공부하기 위해서 다시 설명합니다.
1.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도리와 이치가 옳고 그른 것을 다 아는 지혜의 힘
2. 業異熟智力(업이숙지력)
일체중생의 삼세 업보를 다 아는 지혜의 힘
3. 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
여러 가지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다 아는 지혜의 힘
4. 根上下智力(근상하지력)
중생들의 근기가 높고 낮음을 다 아는 지혜의 힘
5. 種種勝解智力(종종승해지력)
중생의 여러 가지 지식과 이해를 아는 지혜의 힘
6. 種種界智力(종종계지력)
중생의 여러 가지 경계를 다 아는 지혜의 힘
7. 遍趣行智力(변취행지력)
중생의 여러 가지 행업으로 어디에 가서 나게 되는 것을 다 아는 지혜의 힘
8. 宿住隨念智力(숙주수념지력)
숙명통으로 중생의 가지가지 숙명을 다 아는 지혜의 힘
9. 死生智力(사생지력)
천안통으로 중생이 죽어서 태어날 때와 선한 곳과 악한 곳을 걸림 없이 다 아는 지혜의 힘
10. 漏盡智力(누진지력)
온갖 번뇌와 습기를 영원히 끊어 없애는 지혜의 힘
부처님을 찬탄하는 보적의 게송이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쳐서 넘쳐나는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씩 찬탄할 때마다 곧바로 “머리를 숙여 예배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稽首已得無所畏하며
이미 두려울 것 없음을 얻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데는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보살들의 덕행을 이야기하는 데서 이미 나왔습니다. 수행은 반복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도 반복함으로 우리들의 의식 속에 깊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神也者 不過習者之門(신야자불과습자지문)”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이든 神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오로지 반복해서 익숙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많은 達人(달인)들은 타고난 재능덕분이 아닙니다. 무수히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이뤄진 능력입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습니다.
부처님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어떤 악한 사람을 만나거나 설법을 하더라도 전혀 의심하거나 두려울 것 없이 당당하다는 뜻입니다. 즉 四無所畏입니다.
1. 正等覺無畏(정등각무외)
깨달아 정각에 오르는데 두려움이 없다
2. 漏永盡無畏(누영진무외)
온갖 번뇌를 끊어 두려움이 없다
3. 說障法無畏(설장법무외)
설법하는데 비난을 받는 장애가 있어도 두려움이 없다
4. 說出道無畏(설출도무외)
고통을 끊어 해탈에 이르는 사제와 팔정도를 설하는데 장애가 있어도 두려움이 없다
천하의 세존이 무엇엔들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당연히 온갖 것에 두려움이 없어야합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반드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는 이유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稽首住於不共法하며
특별한 법[不共法]에 머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특별한 법, 즉 열여덟 가지 특별한 법[十八不共法]으로도 표현합니다. 이 역시 보살들의 덕행을 나타내는 내용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처님의 열여덟 가지 공덕법이라고도 합니다.
1. 身無失(신무실) 몸이 실수가 없고
2. 口無失(구무실) 입이 실수가 없고
3. 의무실(意無失) 생각이 실수가 없고
4. 무이상(無異想) 두 가지 생각이 없고
5. 無不定心(무부정심) 선정을 여읜 마음이 없고
6. 無不知已捨(무부지이사) 알고서 버리지 않는 것이 없고
7. 欲無減(욕무감) 하고자 하는 욕망이 줄어듦이 없고
8. 精進無減(정진무감) 정진이 줄어듦이 없고
9. 念無減(염무감) 憶念(억념)함이 줄어듦이 없고
10. 慧無減(혜무감) 지혜가 줄어듦이 없고
11. 解脫無減(해탈무감) 해탈이 줄어듦이 없고
12. 解脫知見無減(해탈지견무감) 해탈지견이 줄어듦이 없고
13. 一切身業隨智慧行(일체신업수지혜행) 온갖 몸으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4. 一切口業隨智慧行(일체구업수지혜행) 온갖 말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5. 一切意業隨智慧行(일체의업수지혜행) 온갖 뜻으로 하는 일이 지혜를 따르고!
16. 智慧知見過去世無碍無障(지혜지견과거세무애무장) 지혜로 지나간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고!
17. 智慧知見未來世無碍無障(지혜지견미래세무애무장) 지혜로 이 다음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고!
18. 智慧知見現在世無碍無障(지혜지견현재세무애무장) 지혜로 지금 세상일을 아는 것이 걸림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점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稽首一切大尊師하며
일체대중에게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송은,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라는 글인데요.
즉 ‘천상과 천하에 부처님 같은 분 없고, 시방세계에도 또한 비교할 분 없네. 세간에 있는 모든 분을 내가 다 보았지만, 그 누구도 부처님과 같은 분 없어라.’라는 뜻입니다.
대웅전의 주련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부처님의 존귀함을 표현합니다. 또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비하신 어버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숙여 예배합니다.”라고 합니다.
稽首能斷諸結縛하며
능히 모든 결박을 끊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불교의 이상은 해탈입니다.
모든 속박ㆍ모든 구속ㆍ모든 결박으로부터의 벗어남입니다. 부처님의 가장 부처님다운 점은 모든 것으로 부터의 해탈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王侯將相(왕후장상)이라는 벼슬 따위로부터 일찍이 벗어난 분입니다.
부귀영화로부터 멀리 떠난 분입니다.
남의 비방과 칭찬으로부터 해탈한 분입니다.
온갖 번뇌와 생사와 열반에까지 전혀 흔들림이 없는 분입니다. 이와 같은 불교의 진정한 이상을 다 이루신 분이기 때문에 진실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稽首已到於彼岸하며
이미 저 언덕에 이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彼岸(피안)이라는 저 언덕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데요. 미혹의 이 언덕에 대하여 깨달음의 저쪽 언덕을 뜻합니다.
이 언덕이 병고가 많고, 문제가 많고, 장애가 많은 세계라면 저 언덕은 병고를 병고로 보지 않고 훌륭한 가르침으로, 또는 새로운 눈뜸의 방편으로 완전히 활용하여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온갖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면 그 문제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여 다른 차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생사라는 장애 속에서 생사가 없음을 보는 안목입니다.
번뇌라는 장애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일입니다.
손해를 보되 보다 다른 차원의 이익을 얻는 일입니다.
정리하면 인생의 밝은 낮과 같은 시간보다 어두운 밤과 같은 시간을 훨씬 더 잘 활용하는 안목입니다.
세존은 이미 이러한 경지를 터득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稽首能度諸世間하며
능히 모든 세간을 제도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도란 무엇인가요?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삿되게 보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이 터득하신 지혜를 “열어주고ㆍ보여주고ㆍ깨닫게 해주고ㆍ그것에 들어가게 해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란 무엇입니까?
무지몽매하고 탐진치와 온갖 번뇌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을, 위대한 부처님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곧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임을 아는 지혜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제도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세상을 제도하였다는 것은, 곧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부처로 살아가는 경지입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별별 모습의 인간들을 그대로 부처님으로 승격시켰으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稽首永離生死道하사오니
영원히 생사의 길을 떠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불교수행에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신 동기도,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生死解脫(생사해탈)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불교를 통해서 인간사 일체 문제를 다 해결하였다 하더라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불교궁극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생사의 길을 떠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잘하는 절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나, 저 어느 나라 사람들처럼 수 100리를 가면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나, 1000배 10000배 온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위와 같은 사실들에 대해서 우러나는 존경심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절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서 스스로, ‘내가 이제 쉴 곳을 얻었구나. 내가 이제 진정으로 이 목숨 바쳐 귀의할 데가 생겼구나. 내가 이제 죽을 곳을 얻었구나.’라는 심정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예배하여야 하겠지요.
신청곡 : 석가여래 부처님(머루와 다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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