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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29
普德華 2021-09-25 13:23:16, 조회 : 946, 추천 : 0
法離好醜(법리호추)하고
法無增損(증손)하며
法無生滅하고
法無所歸하며

‘법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떠났습니다.
법은 더하고 줄어듦이 없습니다.
법은 생기고 소멸함이 없습니다.
법은 돌아갈 바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반야심경』의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온 것과 같습니다.

역시 相敎의 차원에 젖어 있는 목건련의 思考(사고)를 깨뜨리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은 自利의 차원이지, 보살의 利他行은 아닙니다.

法過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心하고
‘법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마음을 지나갔습니다.’

이 부분도 역시 『반야심경』의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를 그대로 표현하였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집착하고 있는 목건련을 깨우치는 설법입니다.

아직은 보살의 길이나 부처의 삶에 대해서는 설명할 단계가 아니라, 空을 터득하여 편안한 열반이나 누리는 自利行이 바람직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法無高下하여
法常住不動하고
法離一切觀行이니

‘법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법은 항상 머물러서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법은 일체의 관행을 떠났습니다.’


진리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알고 모르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법화경』에서 “이 진리가 진리의 자리에 있으므로 세간의 상태 그대로 늘 항상 머물러 있다[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달리 수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觀行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관행이란 觀心行法(관심행법). 또는 관심수행이라고 합니다.
요즘에 많이 알려진 “마음챙김” 또는 “마음의 흐름을 예의주시함”인 위파사나 수행입니다.

대승적 관점에서 보면 진리는 본래로 원만하게 갖춰져 있으며 한 순간도 사람을 떠나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사람을 떠나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온갖 수행이나 참선, 또는 관행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唯大目連이여 法相如是어늘 豈可說乎아
여보시오, 대목련이여, 법의 모습은 이와 같거늘 어찌 가히 설할 수 있습니까?

강설 ; 좀 더 부연 설명하자면 “법이란 이와 같아서 아예 설할 것이 없이 저절로 원만하게 갖춰져 있는데 목건련 당신은 무엇을 그리 설할 것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횡설수설 왈가왈부 법을 설하는가.”라는 뜻이다. 뒤에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에서 침묵으로 최상의 진리를 보여줄 것을 이 자리에서 얼핏 보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夫說法者는 無說無示하고 其聽法者는 無聞無得이니 譬如幻士가 爲幻人說法이라 當建是意하여 而爲說法이니라

대저 법을 설하는 사람은 설함도 없고 보임도 없으며, 법문을 듣는 사람은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을 하는 사람이 마술로 만든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이러한 뜻을 세워서 법을 설해야 할 것입니다.

강설 ; “설법을 하는 사람은 설할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으며, 듣는 사람은 들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라는 말은 유명한 관음찬(觀音讚)에 관음보살무설설 남순동자불문문(觀音菩薩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이라는 게송그대로다.

즉 “관세음보살은 법을 설해도 전혀 설하는 것이 없이 설하며, 그 설법을 듣는 시자 남순동자는 역시 듣는 것 없이 듣는다.”라는 뜻이다.

백아와 종자기와의 관계를 거문고소리를 잘 알아듣는 지음자(知音者)의 관계라고 하는데 관음보살과 남순동자는 진리를 잘 설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잘 이해하는 동도(同道), 즉 도가 같은 수준에 오른 관계다.

선재동자를 南巡童子(남순동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난 뒤, 문수보살의 지시를 따라 남쪽으로ㆍ남쪽으로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법을 물었기 때문에 “南巡童子”라고 부릅니다.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만나서 왜 말이 없었겠습니까만, 그들의 말은 법을 설해도 전혀 설하는 것 없이 설하며,그 설법을 선재동자도 역시 듣는 것 없이 듣기 때문입니다.

當了衆生의 根有利鈍(둔)하며
善於知見에 無所罣礙(가애)하며
以大悲心으로 讚(찬)於大乘하고
念報佛恩하야 不斷三寶然後說法이라하니

‘마땅히 중생의 근기에 영리하고 둔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견이 훌륭하여 걸리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큰 자비심으로 대승법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은혜 갚을 것을 생각해서 3보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법을 설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八百居士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我無此辯일세
是故로 不任詣彼問疾이니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하였을 때에 800명의 거사가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
니다.”

그렇습니다. 설법을 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일이 중생의 근기가 둔하고 영리함입니다.
시대의 상황과 청중의 입장을 고려해서 법을 알맞게 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견이 뛰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안목도 좁고 아는 것도 부족하다면 남을 향해 설법하기가 여간 곤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법을 듣는 사람이 최상승의 진리를 모르는 점을 가련하게 여겨서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찬탄하여 설명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과 3보의 바른 전통이 계승되기를 늘 생각하여 설법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자세로 간절히 법을 설한다면 듣는 사람들은 반드시 감동할 것이며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목건련도 앞의 사리불과 같이 유마거사에게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며 법의 눈을 떴을 것입니다.
한편 혼이 나가고 학을 뗀 과거의 전력 때문에 자신도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습니다.

신청곡 : 나누는 기쁨(해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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