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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32
普德華 2021-10-01 17:54:55, 조회 : 930, 추천 : 0
4. 수보리와 취식(取食)

佛告須菩提하시다 汝行詣維摩詰問疾하라 須菩提白佛言하시다 世尊하 我不堪任詣彼問疾하나이다 所以者何오 憶念하니 我昔에 入其舍하여 從乞食이러니 時에 維摩詰이 取我鉢하야 盛滿飯하고 謂我言하되 唯須菩提여 若能於食에 等者는 諸法에도 亦等하고 諸法에 等者는 於食에 亦等하나니 如是行乞이라야 乃可取食이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였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여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억해보니 저가 옛적에 그분의 집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였는데 그때 유마힐이 저의 발우를 가져다가 밥을 가득히 담아주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시오. 수보리여, 만약 능히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모든 법에도 평등하며, 모든 법에 평등한 사람은 음식에도 또한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걸식을 해야 이에 음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강설 ; 걸식이 단순히 밥을 빈다는 뜻이라면 취식(取食)이란 밥을 받아 가진다는 뜻이다. 가섭존자는 가난한 집에만 가서 걸식을 하는 반면 수보리는 늘 부잣집에만 가서 걸식을 하였다. 자신의 생각에는 부잣집이라야 남에게 줄 음식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마거사는 당연히 부잣집이다. 어느 날 유마거사의 집에 가서 걸식을 하여 밥을 얻었는데 그 때 유마거사로부터 들은 법문에 크게 감동하였고, 한편 출가수행자로서 평등하지 못한 걸식에 부끄러웠던 일도 생각이 나서 자신도 문병을 갈 수 없노라고 발뺌을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한 유마경의 명구가 등장한다. 즉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모든 법에도 평등하며, 모든 법에 평등한 사람은 음식에도 또한 평등하다[於食等者 諸法亦等 諸法等者 於食亦等].”는 말이 그것이다.

밥을 얻어 가짐에 있어서 반드시 평등하여야 한다.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수행자가 걸식을 하여 밥을 취하는 일은 단순히 줄인 배를 채우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는 일상의 모든 일이 평등한 진리에 맞게 행해져야 한다.

불교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달성[견성성불]만 하면 된다.”라는 말은 절대 금물이다. 방법이나 목적이 꼭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에 평등한 사람은 모든 법에도 평등하다.”라고 한 것이다.

若須菩提여 不斷淫 ․ 怒 ․ 痴하고 亦不與俱하며
수보리여, 음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끊지도 않고 또한 더불어 함께하지도 아니합니다.

강설 ; 불교에서 말하는 8만 4천 가지의 번뇌 중에서 가장 무겁고 끊기 어려운 번뇌가 삼독번뇌(三毒煩惱)라 한다. 탐욕과 진심과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일반불교에서는 한결같이 그것을 끊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마거사의 법문은 그것을 끊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것과 더불어 함께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에는 “탐욕즉시도 진에역부연 여시삼법중 구일체불법(貪慾卽是道 瞋恚亦復然 如是三法中 具一切佛法)”라 하였다. 즉 “탐욕이 즉시 도며 진심도 역시 그러하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 가운데 일체불법을 다 갖추었다.”라는 뜻이다. 삼독심이 곧 불법심이고 불법심이 곧 삼독심이다. 밥을 담은 몸이 곧 대소변을 담은 몸이고 대소변을 담은 몸이 곧 밥을 담은 몸이다.

번뇌에 대한 소승적 견해와 대승적 안목의 차이는 이와 같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 하였다. 불교를 공부하는 데는 경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경계를 보는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

不壞於身하고 而隨一相하며
몸을 파괴하지도 아니하고 하나의 형상을 따른다.

강설 ; 대소변과 피와 고름등등 사람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잔뜩 담고 있는 이 육신을 버리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의 상태에서 일상(一相)인 공상(空相)을 수순한다는 뜻이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이며 공즉시색(空卽是色)인 이치를 알아 육신에도 걸리지 않고 공상에도 걸리지 않는다. 즉 영명연수 선사가 말한 “몸이 없음을 보되 온갖 모양을 잘 갖춘다[鑒無身而具相].”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이 육신이 텅 비어 공한 줄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장엄하였다. 값을 칠 수 없는 보석을 걸치고 가장 비싼 옷을 입었으며 거기다가 진한 화장까지 하였다. 이러한 모습이 곧 중도적 삶이다.

不滅痴愛하고 起於明脫하며
어리석음과 애착을 없애지도 아니하고 밝은 지혜와 해탈을 일으킨다.

강설 ; 어리석음과 애착은 사람의 어두운 면이다. 지혜와 해탈은 사람의 밝은 면이다. 그러나 밝음과 어두움은 둘이 아니다. 어두운 곳이 곧 밝은 곳이고 밝은 곳이 곧 어두운 곳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음과 애착을 없애지도 아니하고 밝은 지혜와 해탈을 일으킨다.”라고 한 것이다.

나는 1970년 무렵 송광사 문수전에서 정진을 하고 있을 때다. 관음전 법당 부전 소임을 맡아 아침저녁 예불을 드렸는데 어느 날 새벽예불을 올리려고 밖에 나가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캄캄한 새벽이었다.

대강 더듬으며 관음전에 이르러 늘 출입하던 옆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익숙한 걸음으로 방향을 잡아 탁자 앞에 이르렀다. 늘 하던 대로 손을 뻗어 성냥을 찾아 불을 켜는 순간 그렇게 어둡던 법당 안은 환하게 밝았다.

어둠이 어디로 나간 것도 아니었다. 또한 밝음이 어디로부터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두운 것이 곧 밝음이고 밝음이 곧 어두운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번뇌무명이 곧 지혜해탈이고 지혜해탈이 곧 번뇌무명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즉 사람의 삶이 그대로 부처의 삶이요 부처의 삶 그대로가 곧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이었다.

以五逆相으로 而得解脫하며 亦不解不縛하며
오역죄의 모습으로서 해탈을 얻으며, 또한 해탈도 아니고 속박도 아니다.

강설 ; 오역죄(五逆罪)란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죄 가운데서 가장 무거운 다섯 가지 죄를 말한다. 아버지를 죽이는 죄, 어머니를 죽이는 죄, 아라한을 죽이는 죄, 부처님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죄, 승단의 화합을 깨트리는 죄다.

특히 승단의 화합을 깨트리면 불법을 널리 전파하는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에 곧 불법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큰 죄로써 해탈을 얻는 다는 것은 유마거사의 법력으로는 죄의 속박과 죄로부터의 해탈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탈도 아니며 속박도 아니라고 하였다.

신청곡 : 나를 깨워주신 부처님(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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