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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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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18:44:28, 조회 : 88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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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化衆生하되 而起於空하며 不捨有爲法하고 而起無相하며 示現受生으로 而起無作하며 護持正法으로 起方便力하며
중생을 교화하나 텅 비어 없는 데서 하는 것입니다. 유위법을 버리지 아니하나 상이 없음에서 하는 것입니다. 태어남을 보이나 지음이 없음에서 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보호하면서 방편의 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법을 보시하는 일은 중생이 본래 텅 비어 없지만 그 텅 비어 없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또한 중생은 본래로 부처이지만 본래로 부처인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세상은 모두 유위법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 유위법 안에서 생활하지만 그 근본은 아예 상이 없는 데서 한다. 태어남을 보이지만 지음이 없음에서 태어남을 보인다. 정법과 방편은 어떤 면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을 방편을 빌려서 보호한다는 등등의 가르침은 철저히 중도정견에서 하는 본보기다.
치우친 중생교화는 법을 보시하는 것이 아니며 치우친 유위법이나 편견에 떨어진 태어남을 보이는 것이나 편협한 마음으로 정법을 보호하는 일도 진정한 법을 보시하는 일은 못 된다. 그 어떤 불사도 철저히 중도에 입각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以度衆生으로 起四攝法하며 以敬事一切로 起除慢法하며
중생을 제도함으로서 4섭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공경하여 섬김으로서 아만을 제거하는 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부처님은 진리를 깨닫고 나서 평생을 중생을 교화하는 일로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삼았다. 그것은 곧 유마경에서 말하는 법을 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여 가르침으로 남겼다. 그것은 곧 4무량심과 6바라밀과 여기에 소개되는 4섭법이다.
그 중에서도 이 4섭법만치 훌륭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첫째 보시다. 누구에게든 또 무엇이든 주어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만하는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이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에게 덕이 되고 이로운 것을 싫어할 사람도 또한 없다.
넷째, 상대가 하는 일을 따라서 같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누구나 다 좋아한다.
이와 같이 상대가 좋아할 일을 가지고 교화하는 것이 법을 보시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김으로 자신의 아만심을 제거하게 되는 일도 훌륭한 법을 보시하는 일이다.
於身命財에 起三堅法하며
몸과 목숨과 재산에 있어서 세 가지 견고한 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몸과 목숨과 재산은 허망하여 무상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그 무상한 것으로 무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세 가지 견고한 법이다. 몸과 목숨과 재산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면서 또한 허망한 것이다.
그것이 허망한 줄을 잘 알고 그 모든 것을 부처님의 바른 법을 널리 유포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것이 된다.
중국 오대산의 청량국사는 화엄경을 읽다가 “내가 그 죽을 곳을 얻었다[得其死所].”라고 하여 평생을 화엄경을 연구하여 화엄경을 널리 전파하는데 그 한 몸을 다 받쳤기 때문에 오늘 이 순간까지 더욱 청청하고 더욱 크게 살아 계신다.
그 죽을 곳을 얻었다는데 무엇인들 바치지 않았겠는가. 무엇을 아꼈겠는가. 참으로 무상한 몸으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법을 일으킨 사례가 된다. 법을 보시하는 일은 이와 같다.
於六念中에 起思念法하며
여섯 가지 생각하는 것에서 생각하는 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여섯 가지 생각하는 것이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과 보시와 계율과 하늘의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이 생각이라는 것은 항상 일어나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왕 일어나서 흘러가는 생각들을 스스로 관리하여 이 여섯 가지를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이 생각을 일으키고 관리하는 법이다. 이 또한 훌륭하게 법을 보시하는 일이다.
於六和敬에 起質直心하며
화경으로서 질박하고 정직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강설 ; 6화경(六和敬)이란 불교교단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이며, 사원 생활에서 생기는 불화나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불, 법, 승, 삼보 가운데 승을 승가(僧伽)라 하고 화합중(和合衆)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6화경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뜻이다.
첫째, 신화동주(身和同住)는 몸으로 화합하여 같이 살라는 말이다.
둘째, 구화무쟁(口和無諍)은 입으로 화합하여 다투지 말라는 말이다.
셋째, 의화동사(意和同事)는 뜻으로 화합해 함께 일하라는 뜻이다.
넷째, 계화동수(戒和同修)는 계율로 화합해 같이 수행하라는 말이다.
다섯째, 견화동해(見和同解)는 바른 견해로 화합하여 같이 이해하며 살라는 뜻이다.
여섯째, 이화동균(利和同均)은 이익을 균등히 나누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질박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함께 사는 그 자체가 큰 모범이 되므로 곧 법을 보시하는 일이다.
正行善法으로 起於淨命하며 心淨歡喜로 起近賢聖하며 不憎惡人으로 起調伏心하며
선한 법을 바르게 행함으로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정하고 늘 기뻐함으로 현인과 성인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을 미워하지 아니함으로 자신을 조복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강설 ; 법을 보시하는 일은 성인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그대로 실천하는 일이다. 선한 법을 바르게 행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 기쁜 마음으로 현인과 성인을 늘 가까이 하는 일, 악인을 결코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으로 거두어 주는 일 등이 참으로 법을 보시하는 일이다.
신청곡 : 옛절을 지나며-한보리(청허당 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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