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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61
普德華 2021-11-12 18:27:00, 조회 : 864, 추천 : 0
9. 보살행

是故로菩薩이 不當住於調伏ㆍ不調伏心이니
離此二法이 是菩薩行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조복하거나 조복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법을 떠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이 병든 몸으로 마음을 조복하는 방법과, 그 바른길을 말하면서 지혜와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을 아울러 밝혔습니다.
이어서 보살행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행을 가장 중요한 신행활동과 수행으로 삼습니다.
어떤 공덕을 닦고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그것이 보살행으로 廻向(회향)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보살행은 참으로 중요한 불교의 덕목입니다.

보살행을 여러 가지로 열거하는데요.
맨 먼저 마음을 조복하든지 조복하지 않든지, 그것에 머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떠나야 보살행이라고 하였습니다.

在於生死하되 不爲汚行하고
住於涅槃하되 不永滅度가 是菩薩行이며

“생사에 있으나 더러운 행동을 하지 아니하고,
열반에 머무나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또 보살행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生死속에 함께 살더라도, 그 생사에 이끌려 온갖 추하고 더러운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살기 위해서, 또는 죽지 않으려고 갖가지 방법과
수단을 법답지 못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게 생각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흡족하게 받아드리면서 순리대로 살고 죽습니다.

또 보살행은 열반에 머물지만, 고요히 죽은 듯이 있는 게 아니라, 활발하게 중생교화를 펼칩니다.
즉 보살에게서 열반은 더욱 열심히 사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보살행입니다.

非凡夫行이요非聖賢行이 是菩薩行이며
非垢行非淨行이 是菩薩行이며

“범부의 행도 아니며 성현의 행도 아님이 보살행입니다.
때가 묻은 행도 아니며 청정한 행도 아님이 보살행입니다.”

또 보살행이란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범부의 行도 아니며, 그렇다고 聖賢의 행에 집착하여 사는 것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의 행이 필요하면 보통 사람의 행을 하고, 성현의 행이 필요하면 성현의 행을 합니다.

때 묻고 탐욕이 넘치는 행으로 사람을 제도할 수 있으면, 때 묻고 탐욕스러운 행위도 하는 것이 곧 보살행입니다.
보살행은 언제나 청정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교화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雖過魔行이나 而現降伏衆魔가 是菩薩行이며 求一切智하되
無非時求가 是菩薩行이며

“비록 마군의 행을 지나갔으나 온갖 마군을 항복받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일체지혜를 구하되 때마다 구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이 보살행을 제대로 하는 일은 무수히 많습니다.
보살로서 마군의 문제는 이미 떠난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군을 항복받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일체를 아는 지혜를 이미 구하였지만, 항상 구하는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보살을 표현할 때, 上求菩提(상구보리)하고 下化衆生(하화중생)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끊임없이 자신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꾸준하게 중생교화를 위한 노력을 겸비하는 것이 곧 보살행입니다.

雖觀諸法不生이나 而不入正位가 是菩薩行이며
“비록 모든 법이 생기지 아니함을 관하나 정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모든 법이 생기지 아니함을 관찰한다는 것은, 不生不滅의 이치를 깨달아 삶과 죽음을 초월하였다는 뜻입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正位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깨달음의 지위에 들어가지만, 그곳에 安住하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에만 안주하는 것은 불교를 성불이 지상목표인줄 잘못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불교의 최종목표는 중생을 제도하는 일입니다.
成佛은 중생제도를 위한 중간단계며 임시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진정한 보살행을 하려면,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雖觀十二緣起나而入諸邪見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12연기를 관하나 모든 사견에도 들어가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는 길은 緣起의 법칙입니다.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그 존재의 실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교리로서는 12연기를 듭니다.
12연기로 사람의 일생을 관찰하여 이해하는 것이 바른 견해, 즉 正見입니다.

그 외에 다른 많은 견해가 있어서 존재의 법칙을 연기로 보지 않고 創造說(창조설)로 보기도 하고, 자연으로 보기도 합니다.
불교는 그와 같은 견해를 삿된 견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온갖 종류의 견해들을 다 이해하고 다 수용합니다.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을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雖攝一切衆生이나 而不愛着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일체중생을 포섭하나 애착하지 아니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다 사랑하고 아끼고 교화하고 다 건져야 합니다.
그 어떤 중생이든 갓 낳은 嫡子(적자)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애착하지는 않습니다. 애착과 자비는 근본이 다릅니다.

雖樂遠離(수락원리)나 而不依身心盡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멀리 떠나는 것을 즐기나 몸과 마음이 다하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보살은 탐진치 3독과 온갖 번뇌를 멀리 떠나기를 즐기지만, 그렇다고 번뇌의 근본인 몸과 마음이 다한 소극적인 상태를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 몸, 이 마음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3독과 번뇌에서 멀리 떠나있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三界나 而不壞法性(이불괴법성)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3계에 다니지만, 법성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3계는 현상이고 法性은 本體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 쫓아다니지만, 보살은 3계에 다니면서도 본체인 법성을 떠나지 않고, 법성의 이치를 따릅니다. 그것이 보살행입니다.

雖行於空이나 而植衆德本이是菩薩行이며

“비록 공을 행하나, 온갖 덕의 근본을 심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불교적 견해의 근본은 모든 존재의 空性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 세상 모두가 근본적으로 텅 비어 空하다는 사실을 깊이 체득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일체의 선행과 온갖 덕행을 닦아야 그 선행과 덕행을 바르게 닦게 됩니다.

중생이 본래로 공한 줄 잘 알면서 그 공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진정한 보살입니다.
나아가서 중생이 본래로 부처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면서 그 부처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진정한 보살입니다.

신청곡 : 중생의 마음(지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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