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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05:05:39, 조회 : 91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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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行無相이나而度衆生이是菩薩行이며
雖行無作이나而現受生이是菩薩行이며
雖行無起나 而起一切善行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상이 없음을 행하나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비록 지음이 없음을 행하나 태어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비록 일어남이 없음을 행하나 일체 선행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금강경』은 無相으로 그 근본을 삼습니다.
존재의 차별한 상이 없음을 잘 알고 삶을 실천하지만, 그 무상인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살입니다.
무상이라고 하여 두 손ㆍ두 발 다 묶어놓고, 세월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불교도 아니고, 소승도 아니고, 순전한 외도 마군입니다.
또한 본래로 모든 존재는 지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지음이 없이 세상에 태어나서 온갖 교화활동을 펼쳐 보이는 것이 또한 보살입니다.
비록 일체존재가 일어나고 소멸함이 없음을 행하나, 일체선행과 덕행을 일으키는 것이 진정한 보살입니다.
이처럼 보살행은 모두가 中道에 입각한 行이 됩니다.
雖行六波羅蜜이나 而遍知衆生의 心心數法이 是菩薩行이며
雖行六通이나 而不盡漏가 是菩薩行이며
“비록 6바라밀을 행하나, 중생의 마음과 심수법을 두루 아는 것이 보살행 입니다.
비록 6신통을 행하나 번뇌가 다하지 않음이 보살행 입니다.”
“心과 心數法”은 新譯(신역)에서는, 심과 心所法(심소법)이라고도 합니다.
즉 마음의 본체와, 마음의 여러 가지 작용을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보살이 6바라밀을 통해서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데는, 무엇보다 중생의 갖가지 마음작용을 잘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중생의 마음작용을 모르고 교화하는 것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통을 얻었다면 이미 번뇌가 다하여 없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번뇌가 있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번뇌를 남겨둔 채 중생제도를 합니다.
생사를 초월하였으나 생사 속에서 중생과 함께하는 것이 보살입니다.
雖行四無量心이나
而不貪着生於梵世가 是菩薩行이며
“비록 4무량심을 행하나,
범천 세상에 태어남을 탐착하지 않음이 보살행입니다.”
4무량심인 慈悲喜捨(자비희사)를 하면 그 공덕으로 梵天 세상에 태어나지만, 보살은 그와 같은 곳에 태어나는 것을 탐하여 慈悲喜捨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雖行禪定解脫三昧나
而不隨禪生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행하나,
선정을 따라 태어나지 않음이 보살행입니다.”
선정과 해탈과 삼매는 불교수행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그와 같은 결과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선정을 따라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선정이나 해탈이나 삼매에 도취하여 머물러 있지 않고, 더욱 열심히 중생교화에 매진한다는 뜻입니다.
雖行四念處나
不畢竟永離身受心法(불필경영리신수심법)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4념처를 행하나,
필경에 身受心法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四念處란 몸은 부정한 것이라고 관찰[觀身不淨]하는 것과, 받아드리는 느낌은 괴로운 것이라고 관찰[觀受是苦]하는 것과, 마음은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한다고 관찰[觀心無常]하는 것과, 모든 사건과 물건인 법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관찰[觀法無我]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 身受心法을 벗어나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여깁니다.
20년쯤 전부터 한국에 “위빠사나”라는 남방불교의 수행법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그 내용이 곧 4념처 관법입니다.
그러나 대승보살불교는 이와 다릅니다.
4념처를 다 체득하였으나 이 몸을 떠나지 않고, 느낌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떠나지 않고, 법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합니다.
雖行四正勤이나
而不捨身心精進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4정근을 행하나,
몸과 마음을 버리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四正勤(사정근)은 四正斷(사정단)이라고도 하는데요.
첫째는 斷斷입니다.
이미 생긴 惡을 없애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둘째는 律儀斷(율의단)입니다.
악이 생기지 않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셋째는 隨護斷(수호단)입니다.
善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넷째는 修斷(수단)입니다.
이미 생긴 선을 늘리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모두가 몸과 마음이 하는 일을 삼가는 수행입니다.
그러나 보살은 더욱 적극적인 길을 갑니다.
雖行四如意足이나
而得自在神通이 是菩薩行이며
“비록 4여의족을 행하나,
자재한 신통을 얻음이 보살행입니다.”
四神足(사신족). 또는 四如意足(사여의족)이라고도 합니다.
수행을 통해 얻는 자재한 경지를 의미합니다.
“如意”는 뜻대로 자유자재한 신통을 말하며, “足”은 신통이 일어나는 脚足(각족)으로서 근본원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자유자재한 힘을 얻기 위한 네 가지 기반’이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인 의욕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欲意如足(욕의여족). 정진으로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精進意如足(정진의여족). 마음을 가다듬고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心意如足(심의여족). 사유하고 관찰하는 선정을 닦아 자유자재한 힘을 성취하는 思惟意如足(사유심의여족)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을 얻고도 다시 자유자재한 신통을 얻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신청곡 : 제행무상(법만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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