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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2 12:14:31, 조회 : 89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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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 入不二法門品
문수사리와 유마거사의 길고 긴 담론이 거의 끝나고, 비로소 그 유명한 不二法門이 설해지는 부분입니다.
둘이 아니란 것은 무엇입니까?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사찰에는 반드시 不二門이라는 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을 지나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곳이 불이문입니다.
진정한 佛法의 문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불법의 이치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특히 둘이 아니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32명의 보살과 유마거사, 각자가 알고 있는 둘이 아닌 이치를 피력하는 장면입니다.
최후에 유마거사가 침묵으로써 불이법문을 보여준 것은 만고의 절창입니다.
1. 여러 보살과 유마거사의 불이법문
爾時 維摩詰이 謂衆菩薩言하되
諸仁者여 云何菩薩이 入不二法門이
各隨所樂說之(각수소요설지)어다
그때에 유마힐이 여러 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러 훌륭하신 분들이여, 무엇이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각각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동안 유마거사와 문수사리 등 몇몇 분들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品에서는 32명의 보살에게 불교의 여러 가지 명제와 이치 중에서, 가장 궁극적 이치라고 할 수 있는 中道, 또는 절대 평등한 완전 하나의 경지[不二]에 대한 견해를 듣고자, 유마거사가 청을 하여 하나하나 듣게 됩니다.
會中에 有菩薩하니 名은 法自在라
說言하되
諸仁者여 生滅이 爲二나
법회 중에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은 법자재였다.
말씀하기를,
“모든 훌륭하신 분들이여, 생과 멸이 둘인듯하나,
法本不生이어늘 今則無滅이라
得此無生法忍이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법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 곧 소멸이 없습니다.
이러한 생멸이 없는 법의 진리를 얻는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먼저 法自在보살은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두 가지인데, 진리[法]는 본래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생기고 없어짐이 없는 진리[無生法忍]를 터득하는 것이 곧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不生不滅(불생불멸)이니 生死解脫(생사해탈)이니 하는 말은, 불교에서 깨달아 얻어야할 목표로 설정되어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불이법문입니다.
德守菩薩이 曰
我와 我所 爲二나 因有我故로
便有我所(변유아소)니
덕수보살이 말하였다.
나와 나의 것이 둘이 되지만, 내가 있음을 인하여
곧 나의 것이 있게 된 것입니다.
若無有我면 則無我所라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만약 내가 없으면 곧 나의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無我라는 명제도 불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크게 나누면 나와 나의 것으로 분류합니다.
내가 있기때문에 나의 것이 있게 되므로, 내가 없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의 것이란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유정 무정이 모두 나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없음[無我]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요?
근본불교나 초기대승불교까지 이 無我를 각 방면으로 설명하여 이론이 분분합니다.
不眴(불순)菩薩이 曰
受와 不受 爲二어늘
若法不受則不可得이라
불순보살이 말하였다.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둘이 되는데,
만약 법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얻을 수 없습니다.
以不可得故로 無取無捨하며
無作無行하나니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얻을 수 없으므로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지음도 없고 행함도 없습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사람의 삶이란 다만 이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감수하고 느껴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의 삶이 영위됩니다.
경계를 어떻게 감수하는할까요?
감수하여 또 어떻게 반응하는가요? 이 문제로 일생의 시간이 다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대해서 이 감수하는 일이 해결되면, 취하고 버릴 것이 없게 되므로 지음도 없고 행함도 없어서, 이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德頂菩薩이 曰
垢淨(구정)이 爲二어늘
덕정보살이 말하였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둘이 되는데
見垢實性이면 則無淨相하여
順於滅相이라
是爲入不二法門이니다
더러움의 실다운 성품을 보면 곧 깨끗한 모양도 없어서
적멸의 모습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사람의 삶 대부분은, 깨끗하다ㆍ더럽다. 좋다ㆍ나쁘다. 선이다ㆍ악이다라는 상대적인 문제에 휘둘려 살아갑니다. 그런데 깨끗한 것이든 더러운 것이든 그 실체를 잘 관찰하면,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습니다.
오직 텅 빈 적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신청곡 : 보현행원(김무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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