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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불교성전-제3장 보살의 길
법광(法光) 2022-06-15 22:29:25, 조회 : 793, 추천 : 0



제3장 보살의 길



6절 마음 밝히는 길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고 한다. 이 생사에 부딪쳐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지는데, 일에 나고 사라짐이 없어진 것을 고요함[空寂] 이라고 한다.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하고, 고요함 가운데서도 화두가 살아 있는 것을 신령한 지혜[靈知] 라고 한다. 이 텅 빈 고요함 가운데 신령한 지혜는 무너지지도 않고 난잡하지도 않다. 이렇게 공부해나가면 머지않아 깨달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공부가 익을수록 마가 틈을 엿본다>

공부가 무르익어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면, 이때 팔만사천 마군의 무리가 여섯 감각기관의 문 앞에서 틈을 엿보다가 마음을 따라 들고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마군이란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고,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를 말한다. 마魔는 본래 근본이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싹이 트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수행인은 환경에 거스르므로 마가 대든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치성擴盛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정 속에서 송장을 메고 온 상주를 보고 자신의 다리를 찍거나, 또는 돼지를 보고 자신의 코를 잡아 비틀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잘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의 여러 재주일지라도 마치 칼로 물을 베거나 빛을 불어 없애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향엄 스님의 활구참선>

향엄 스님은 키가 7척이나 되며, 아는 것이 많고 말재주가 뛰어나 학문에서 스님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위산선사의 대중 속에 지내면서 현묘한 담론을 가지고 토론하니, 사람들이 그를 선禪의 거장이라 칭송했다. 그 뒤 여러 차례 위산선사에게 찾아가 묻고 대답하기를 마치 물 흐르듯 했다.

위산선사는 그의 학문이 깊이가 없고 경박해 심오한 근원을 통달한 것이 아님을 알았으나, 그의 말재주를 쉽사리 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위산선사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지금껏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눈과 귀를 통해 타인의 견문과 경전이나 책자에서 얻은 것일 뿐이다. 나는 그러한 내용은 묻지 않겠다. 그대는 처음 부모에 게 갓 태어나 아직 동쪽과 서쪽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한마디 일러보아라. 내가 그대의 공부를 가늠해보려 한다."

이에 향엄 스님이 대답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다시 이러쿵저러쿵 몇 마디 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내 선사에게 도를 일러주 실 것을 청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대 스스로 말해야 그대의 안목이 되는 것이다."

향엄 스님은 방으로 돌아가 모든 서적을 두루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알맞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스님은 마침내 그 책들을 몽땅 불살라버렸다. 어떤 학인이 가까이 와서 한 권 달라고 하니, 스님이 대답했다.

“내가 평생 동안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그대는 이것을 가지고 또다시 무엇을 하려 합니까?"

그러고는 하나도 주지 않고 몽땅 태워버렸다. 향엄 스님이 말했다.

“이번 생에는 불법을 배우지 않겠다. 난 오늘까지 나를 당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위산선사에게 한 방 맞으니 그런 생각이 깨끗이 없어져버렸다. 이제는 그저 죽이나 먹고 밥이나 먹는 스님으로 여생을 보내야겠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며 위산선사에게 하직을 고하고 향엄산 혜충국사의 유적지에서 몸과 마음을 쉬었다. 어느 날 잡초를 뽑으면서 번민을 덜고 있다가 기와 조각을 던지던 끝에 껄껄 웃으면서 크게 깨달았다.





<화두 수행의 세 가지 요점>

만일 착실한 참선을 말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요점을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 요점은 큰 신심信心이 있어야 한다. 마치 신심이 수미산에 기댄 것과 같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요점은 큰 분심憤心이 있어야 한다. 분심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때 그 원수를 당장 한칼에 두 동강 내려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 세 번째 요점은 큰 의심疑心이 있어야 한다. 의심은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큰일을 저질러 은폐되었던 일들이 막 폭로되려고 할 때와 같아야 한다. 일상의 공부 가운데 과연 이 세 요점만 갖출 수 있다면 반드시 정해진 날짜 안에 공부를 이루어 독 안의 자라가 달아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진실로 그 가운데 하나라도 빠진다면 마치 다리 부러진 삼발이 솥이 끝내 버려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구와 활구의 차이점>

혀끝을 쉬어서 따로 견해를 내지 말아야 한다.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해서는 안 된다. 활구에서 깨달으면 영겁토록 잊지 않지만, 사구에서 깨달으면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 여러분은 활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마음이 곧 부처다'가 활구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가 활구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가 활구 아닌가? 그렇지 않다. 문에 들어가자마자 방망이를 휘두른 것이 활구인가? 그렇지 않다. 문에 들어가자마자 할喝을 하는 것이 활구인가? 그렇지 않다. 단지 언어가 있으면 모두 사구이다.





사랑해요 부처님 - 해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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