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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69권 - 16. 보살견실회 ⑨ 22) 광과천수기품(廣果天授記品)
법성화 2022-09-25 05:21:31, 조회 : 706, 추천 : 0
저 이름은 이름의 자성을 떠났고 나아가 시설도 시설의 자성을 떠났나이다. 만일 법에 자성이 없어서 얻을 수 없다면 곧 그것은 물건이 아니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곧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면 곧 나거나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나거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은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옵니다.

만일 3세(世)에 속하지 않은 것이면 그 이름은 곧 모양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며, 작용도 아니요 가설(假說)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요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남을 위하여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인식(認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검은 것도 아니요 흰 것도 아니옵니다. 그리고 굴택(窟宅)이 아님은 굴택을 떠났기 때문이요 이르는 것이 아님은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얻는 것이 아님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증득하는 것이 아님은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범부가 아니고 범부의 지위도 아니며, 성문도 아니고 성문의 지위도 아니며, 연각이 아니고 연각의 지위도 아니며, 보살도 아니고 보살의 지위도 아니며, 지위도 아니고 지위가 아닌 것도 아니옵니다. 이것은 곧 진여(眞如)이니 진여와 다르지 않고 진여가 아닌 것도 아니어서 적멸하여 모양이 없고 다만 작용일 뿐이요 가설일 뿐이니, 여래(如來)란 다만 세속에서 일부러 말하여 여래라 하는 것이요 첫째가는 이치[第一義]에서는 여래가 있지 아니하옵니다. 왜냐하면 저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여래도 없는 것입니다. 저 계(界)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마땅히 이와 같은 눈·귀·코·혀·몸·뜻의 계와 법의 법계(法界)와 의식의 경계[意識界]에 들어가야 하고, 이와 같이 그 밖의 모든 경계도 그렇게 알아야 하며 이렇게 널리 법의 경계에 들어가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 법의 경계에서 5음을 말할 때에도 그 법의 경계의 본성품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12입(入)을 말할 때와 18계(界)를 말할 때와 네 가지 진리를 말할 때와 12인연을 말할 때에도 본래 법의 경계의 체성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그 법의 경계는 말한 바의 처소에 따라 모든 법에 이름을 붙였으되 모두가 그 법의 경계의 체성을 무너뜨리지 않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지계(地界)는 그 있는 곳에 따라 다른 이름을 지었으면서도 그 본래 지계의 성품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의 경계도 그 있는 곳에 따라 다른 이름을 지었으면서도 법의 경계의 본 성품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이와 같이 수계·화계·풍계도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은 있는 곳에 따라 서로 다르게 작용하면서도 그 허공의 체성을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이와 같이 수계·화계·풍계도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은 있는 곳에 따라 서로 다르게 작용하면서도 그 허공의 체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의 계도 있는 곳에 따라 서로 이름과 작용이 다르면서도 그 법의 경계의 체성을 무너뜨리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근(根)에 들어갈 때에는 곧 법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모든 근이라 함은 이른바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과 남근(男根)·여근(女根)·명근(命根)과 낙근(樂根)·고근(苦根)·희근(喜根)·우근(憂根)·사근(捨根)과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과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지근(知根)·지이근(知已根)이 그것이옵니다.

저 눈[眼]은 눈의 바탕을 얻을 수 없고 근(根)은 근의 바탕을 얻을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이 눈은 눈의 자성을 떠났기 때문이옵니다. 법에 체성이 없으므로 그것은 곧 물건이 아니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곧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곧 나지 않나이다. 만일 나지 않는다면 곧 없어지지도 않고 나거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말로는 그것이 과거요 현재요 미래라고 설명할 수 없나이다. 만일 3세 중에서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곧 눈도 아니고 안근도 아니거늘 어떻게 작용이 있겠나이까?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빈주먹은 거짓이요 물건이 없고 다만 이름과 나아가 말만 있는 것과 같으니, 첫째가는 이치 가운데서는 빈주먹도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눈과 안근도 마치 빈주먹과 같아서 허망하여 진실이 아닌데도 거짓 모양을 나타내어 범부를 속이나니 다만 이름과 나아가 말만이 있을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에서는 눈과 안근을 모두 얻을 수 없나이다. 이러함에도 세존께서는 일체지(一切智)를 얻으신 뒤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근(根)이라고 이름하신 것이나 저 모든 근들은 첫째가는 이치 가운데서는 성품이 스스로 떠났기 때문에 근의 바탕은 모두가 공하나이다. 그 법의 바탕이 공하다면 작용도 허망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진실한 것도 아닌데 어리석은 범부를 미혹되게 하나이다. 제 성품을 떠났기 때문에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나니, 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과거요 현재요 미래임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나이다.

만일 3세 가운데에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안 것도 아니고 장차 알 것도 아니며 이미 들은 것도 아니고 장차 들을 것도 아니며, 인식할 것도 아니고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증득한 것도 아니고 장차 증득할 것도 아니며,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장차 얻을 것도 아니며, 이미 본 것도 아니고 장차 볼 것도 아니며, 이미 도달한 것도 아니고 장차 도달할 것도 아니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그의 꿈속에서 쾌락을 느껴 기뻐서 웃고 잠꼬대를 하며 재미있게 놀다가 이 사람이 그 때에 잠에서 깬 뒤에 그 꿈속에서 쾌락을 받고 재미있게 놀던 기억을 하면서 그것을 찾아보았으나 볼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 것과 같나이다. 왜냐 하면 저 사람이 꿈속에서 쾌락을 느껴 기뻐서 웃고 잠꼬대를 하며 재미있게 놀았던 그 자체가 오히려 진실함이 없거늘 하물며 깨어났을 때에 보거나 얻는 일이겠나이까? 만일 보게 되고 얻게 된다면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모든 근은 마치 꿈속에서 쾌락을 받고 재미있게 노는 것처럼 진실을 얻을 수 없으며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체성도 얻을 수 없나이다.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과거요 현재요 미래라고 말할 수 없으며, 만일 3세 중에서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곧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니, 모든 근도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리다.세존이시여, 만일 법의 경계에 들어가면 곧 모든 법에 들어가는 것이요 모든 법에 들어가면 곧 그것이 법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진리[四諦]의 법에 들면 곧 법계에 드는 것이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진리냐 하면, 괴로움[苦]·쌓임[集]·사라짐[滅]·도[道]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또한 모든 법은 공하므로 중생(衆生)도 아니요, 목숨[命]도 아니요, 보특가라(補特伽羅)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요, 모양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들은 이 법에 대하여 의심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없기 때문에 또한 괴로움도 없나니, 왜냐 하면 중생이 없는 곳에는 괴로움의 진리[苦諦]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쌓임의 진리[集諦]도 없나니, 왜냐 하면 이러한 원인이 없으므로 결과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쌓임이 없기 때문에 사라짐의 진리[滅諦]도 없나니, 왜냐 하면 쌓임의 진리가 없기 때문에 쌓임을 끊을 것도 없기 때문이옵니다. 사라짐이 없기 때문에 도의 진리[道諦]도 없나니, 왜냐 하면 쌓이는 것을 끊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도의 과위라는 것은 곧 사라짐의 진리인데 그 번뇌는 끊어지게 할 수도 없고 번뇌를 사라지게 할 수도 없으며 사라지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도[道]를 얻을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도가 없는지라 그 결과도 없나이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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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스님/아제아제 바라 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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