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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8일(금) 아침방송법문 : 자비의 울림,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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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8 08:32:26, 조회 : 55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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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수많은 괴로움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삶의 고통은 때로는 외부의 상황에서, 때로는 우리 내면의 갈등과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존재가 계시니, 바로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이르기를, “중생이 고난 중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음성을 따라 즉시 구제하나니, 이는 자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하시는 자비의 화신입니다.
우리가 절박한 순간, 눈물로 부르는 그 음성을 들으시고,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괴로움을 덜어주시고 희망의 등을 밝혀주십니다.
《화엄경》에서는 “큰 자비의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큰 지혜의 방편으로 고통을 제도하신다.”고 찬탄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시는 그 마음은 편애도 없고, 조건도 없으며, 지극히 평등하고 한량없는 사랑입니다.
보살님은 중생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괴로움 속에 부르는 한 마디 ‘관세음보살’ 소리를 들으시고 그 고통을 거두어 가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슨 힘이 있겠냐며 의심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름에는 힘이 있고, 부름에는 울림이 있으며, 신심에는 불가사의한 응답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자비와 연결되는 길입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명호를 되뇌일 때, 우리는 이미 그 자비의 진동 속에 들어선 것입니다.
《수능엄경》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그 자비심이 중생의 업장을 녹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전하는 바는 간단하지만 매우 깊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덜어내는 힘은 외부에서 오기보다, 그 고통을 자비로 감싸안을 수 있는 내적 전환에서 옵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는 것은 단순히 부르는 것을 넘어, 그분의 자비를 내 마음에 심고, 그 자비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법화경》에서 33응신으로 중생을 구제한다고 설하십니다.
즉, 중생이 있는 그 어디에서든,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몸을 바꾸어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머니로, 때로는 아이로, 때로는 의사나 스승, 또는 나그네로까지도 모습을 바꾸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의 어떤 인연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만남 속에서 자비의 빛을 찾아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또한 ‘관세간음’ 즉, 세상의 소리를 듣는 분입니다.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울림’을 직관적으로 감지하여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이 괴로움 속에서 내지르는 무언의 아우성조차 보살님께는 기도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말로 다 하지 못해도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눈빛과 숨결, 그리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도 고통을 감지하시고 우리를 보듬어 주십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곧 우리의 자비가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보살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자비를 받았다면,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자비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소 짓는 얼굴, 따뜻한 말 한마디, 기다려주는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 자비의 실천입니다.
《대비주다라니경》에는 “보살의 자비는 천 겹의 칼날도 녹이고, 만 겹의 어둠도 밝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 자비를 닮아, 누군가의 어둠 속에 등불이 되고, 아픔 속에 위로가 되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오늘은 관음재일입니다.
이 날 하루,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염하고, 그 자비의 파동을 온몸으로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그 울림을 내 가족에게, 이웃에게, 내가 지나치는 모든 인연에게 나누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염하는 진정한 공양이며 기도가 될 것입니다.
불교의 여러 보살 가운데에서도 관세음보살님은 특히 대중의 신심이 깊은 보살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중생이 괴로울 때, 슬플 때,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이름만 불러도 바로 응하여 주시는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의 두려움에서 중생을 건지시며, 큰 화재 속에서도, 칼날 위에서도 그 이름을 부르면 무사하리라.”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심과 맞닿을 때, 세상의 어떤 고통도 녹아내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관세음보살님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향해 귀 기울이시고, 그 자비의 손길을 내미시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그 부름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의지요, 간절함입니다.
그 간절함이야말로 보살님께서 응하시는 통로이며, 그 통로를 통해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의 수행은 '관음' 즉, ‘세상의 음성을 관찰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듣는 행위가 아니라, 들려오지 않는 침묵의 고통까지도 알아채는 자비의 눈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며, 위로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관세음보살의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믿고 따르는 신행은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그 자비를 본받아 살아가는 삶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보살님의 이름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자비로운 말 한마디, 배려의 눈빛,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가 봅시다.
그것이야말로 관세음보살께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이며 공양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천수경》의 한 구절을 다시 새기며 회향합니다.
“관세음보살의 명호는 천 가지 병을 고치고, 만 가지 업을 녹이며, 억겁의 생사 윤회를 건너게 하느니라.”
오늘 관음재일, 법우님들의 삶에도 자비와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드립니다.
나무 관세음보살마하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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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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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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