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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05일(화) 아침방송법문 : "이 또한 지나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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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5 08:46:35, 조회 : 58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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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위로의 문장이지만, 그 뿌리는 아주 깊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닿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기쁜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지며, 모든 것은 변한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의 진리입니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왕비 마야 부인은 꿈에 흰 코끼리가 품으로 들어오는 상서로운 꿈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슬픔에 잠긴 정반왕 앞에 나타난 아시타라는 수행승이 전한 "대왕이여, 이 아픔도 지나가리라" 는 간절한 위로가 불본행집경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왕은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나라를 다스렸고, 수십 년 후 아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통의 강물은 결국 지혜의 바다로 흘러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별, 병고(病苦), 좌절이 찾아올 때면 마치 이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유마경이 일갈하듯 "번뇌는 그림자와 같아 붙잡으면 커지고 놓으면 사라지느니라." 고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의 50년 된 국밥집 주인장은 1997년 IMF 때 가게를 잃었습니다.
빚더미에 앉아 벽에 새긴 글씨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지요.
10년 후 같은 자리에서 재기한 그는 지금도 주방 벽에 그 글귀를 걸어둡니다.
그리고 식당일을 하다가도 힘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쳐다보곤 한다고 합니다.
지나간 고통은 반드시 내게 힘을 돌려준다는 걸 가르쳐주니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항상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한 승려가 절벽에서 떨어지며 기적적으로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 위로는 나뭇가지를 갉아먹는 두 마리 쥐.
그때 바위틈에서 피어난 야생화가 속삭였습니다.
"손을 놓으시오. 땅은 이미 네 발 아래 있노라."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붙잡는 것들, 체면, 미련, 두려움을 놓을 때 비로소 삶의 땅이 보인다는 깨달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금강경의 구절이 빛납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느 곳 없이 마음을 내라,
흐름에 맡기라, 이 말씀입니다.
무상(無常)이 가르치는 역설이 있습니다.
"모든 지나감 뒤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는 진리, 열반경은 이를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부릅니다.
상(常): 시간을 초월한 본성
낙(樂): 고통이 닿지 않는 평안
아(我): 참 자아(眞我)의 발견
정(淨): 번뇌에 물들지 않은 청정
파도가 해변의 모래성을 무너뜨려도 모래 알갱이 자체는 영원히 존재하듯 우리의 본질은 모든 변화 너머에 있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흐르는 구름 한 조각을 따라가 보십시오.
그 구름이 지금 당신의 마음에 드리운 어둠이라 여기며 이렇게 속삭여 보십시오.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나는 푸른 하늘,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참된 본성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6년 고행의 시절, 한 농부의 딸 수자타가 우유죽을 공양하며 전한 말이 있습니다.
"이 고통도 반드시 지나가리라"
그 한 그릇의 죽이 고행의 굴레를 깨뜨렸고, 보리수 아래서 중도(中道)의 진리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불본행집경은 이 순간을 "고통에 대한 집착이 진정한 고통이로다." 라고 기록합니다.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옥죄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의 스님 혜근이 3년간 앓던 병고(病苦)를 겪으며 남긴 글귀 중에서, "아픔이 밤새도록 나를 엄습하더니 새벽닭 울음에 스러지더라. 고통도 잠을 자나 보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 한 수에 반야심경의 "공즉시색(空即是色)" 의 진리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아픔이라는 색(色)이 공(空)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양식이 됩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산중에 은거할 때 제자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계곡 물소리는 밤낮으로 흘러가지만 산은 천 년을 한 자리에 서 있도다.
흐름 속에 머무름이 있고 머무름 속에 흐름이 있으니 이것이 무상(無常)이 가르치는 불변(不變)이로다." 흐르는 물은 지나가지만 강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본성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비구니 묵향 스님이 화엄사에서 들려준 법문 중 깊이 와 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을 쓸며 깨달았노라.
한 잎 한 잎이 제 시간에 제 자리로 돌아가더구나.
우리의 슬픔도 이 낙엽과 같아서
때가 되면 땅으로 돌아가 뿌리가 되고,
봄이 오면 새 잎이 되어 피어나리."
이 말씀은 화엄경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의 진리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것입니다.
또한 유마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슬픔도 기쁨도, 모두 인연 따라 생긴 그림자일 뿐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감정의 뿌리가 실체가 아니라 인연이라는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도 집착하지 않으면, 결국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자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실제로 붙잡을 수 없고 머무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슬픔이 찾아왔을 때는 너무 절망하지 마십시오.
기쁨이 왔을 때에도 지나친 집착은 경계해야 합니다.
인연 따라 왔으니, 인연 따라 갈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시련이 끊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병고로, 때로는 인간관계로, 또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다가오듯이, 고통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면 영원히 낫지 않을 것 같고, 사업이 어렵거나 관계가 힘들어지면 이 괴로움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를 무상, 고, 무아라고 합니다.
무상이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며, 고는 집착할 때 생기는 괴로움이고, 무아는 그 모든 것에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움 뒤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 뒤에는 즐거움이 있다. 둘 다 머물지 않는다."
이 말은 단지 철학적 가르침이 아니라, 일상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무상한 흐름 속에 있고, 그러므로 고통도, 기쁨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지혜롭게 맞이하고, 자비롭게 보내는 것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법우 여러분,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며, 그 안에서 자비와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순간 고통은 더 이상 우리를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줍니다.
또한 기쁨이 찾아왔을 때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만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웃을 수 있다면, 다른 이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보살의 삶이고, 그것이 자비의 실천입니다.
잡보장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밝은 얼굴은 향을 태우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소 하나로도 다른 이의 하루를 환하게 밝힐 수 있다면, 그 또한 보살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소의 뿌리는 어디에서 올까요?
바로 고통이 지나갈 것을 아는 지혜, 기쁨도 머물지 않음을 아는 무상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일고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십시오. 마치 하늘을 흐르는 구름처럼, 그것들은 떠오르고 사라지며,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 한마디가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비심을 일으키며, 우리를 부처님의 길로 이끕니다.
삶은 언제나 변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으로 향하려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도록, 늘 정진하며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은 법구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즐거움 뒤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 뒤에는 즐거움이 있다. 둘 다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반드시 평온이 찾아오고, 그 평온 또한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무상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의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은 대부분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돈, 명예, 건강, 인간관계...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들을 내 것으로 붙잡으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기고, 그것이 떠나갈 때 고통이 생깁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지혜이자 자비의 표현입니다.
누군가 슬퍼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해 주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 기뻐하고 있다면, 그 기쁨에 함께하면서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강물 위를 떠가는 존재들입니다.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고요한 지혜를 발견하고, 그 지혜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면, 고통도 기쁨도 결국에는 우리 수행의 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무상한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잡보장경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밝은 얼굴은 향을 태우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
고통의 순간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마음이 바로 해탈의 문이며, 괴로움 속에서도 다른 이에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그 행위가 바로 보살의 길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이 법우님들 마음속 깊이, 위로가 되고 자비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 안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상(無常)'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도, 기쁨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변하고 사라지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더 맑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괴로움도 지나가고, 기쁨도 머무르지 않으며, 이 생 또한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자비심과 지혜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이 곧 부처님의 길이며, 그 실천이 바로 우리가 걷는 수행의 길입니다.
새벽이슬이 잎 새에 맺혔다가 해가 오르면 사라지듯, 불기 2569년 8월 5일 화요일 아침을 맞은 법우님들께 무상(無常)의 지혜가 마음 깊이 스며드시기를 발원합니다.
부디 이 하루, 그 길 위에서 흔들림 없이 정진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을 드리면서 8월 5일 아침방송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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