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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07일(목) 아침방송법문 : “기쁨을 나누는 자의 마음은 연못이 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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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7 08:10:40, 조회 : 545,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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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불기 2569년 8월 7일, 목요일입니다.
절기상으로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입니다만, 여전히 태양은 뜨겁고 땀방울은 이마를 적십니다.
뜨거운 햇살은 여전하지만, 새벽 공기에 스민 은은한 서늘함이 새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계절을 바꾸어 갑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는 옮겨지고, 새벽 공기에는 이른 서늘함이 묻어나며, 들판의 벼 이삭은 점차 고개를 숙입니다.
자연은 이미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논밭의 곡식은 알찬 열매를 채우고, 숲속 나뭇잎은 황금빛으로 물들 차례를 기다리죠.
화엄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일체중생에는 여래의 지혜가 원래 구족하되 다만 망념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하느니라."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가을 결실의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다만 번뇌의 더위에 가려 보지 못할 뿐이죠.
"기쁨을 나누는 자의 마음은 연못이 되어..."
이 말씀은 <법구경>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쁨 가운데서 기쁨을 낳고 빛 가운데서 빛을 얻나니"
진정한 기쁨은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치 연못이 비를 받아 고이듯 나눔의 마음은 기쁨을 저장하는 그릇이 됩니다.
얼마 전 웅천 오일장에서 만난 한 노스님의 이야기입니다.
더위에 지친 상인에게 시원한 작은 생수 한 병을 권하더군요.
"스님, 이렇게 더운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는 스님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러자 스님의 답변이 참 경이로웠습니다.
"차가운 물 한 잔 줄 때마다 내 마음의 연못이 깊어진다네."
이것이 바로 유마경의 가르침입니다.
"중생이 병들면 나도 병들고, 중생이 낫기를 바라면 나도 낫느니라."
타인의 기쁨에 함께 웃을 때 우리 내면에 평화의 연못이 출렁입니다.
입추는 수확의 계절로 가는 관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뿌린 나눔의 씨앗이 가을에 어떤 결실로 돌아올지 생각해보세요.
한 아이가 길가에 핀 들꽃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넸습니다.
그 순간 두 아이의 얼굴에 가을 햇살보다 밝은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또한 화엄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기듯 작은 나눔 하나에 무량한 기쁨이 깃듭니다.
오늘 하루, 이 입추의 아침에 누군가에게 기쁨의 꽃 한 송이를 건네 보시겠습니까?
그 행동이 깊어질수록 마음의 연못은 더욱 넓고 깊어질 것입니다
오늘 입추(立秋)는 변화의 시작입니다.
눈으로 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말씀은 숫타니파타 경전에 나오는 아름다운 경구입니다.
“기쁨을 나누는 자의 마음은 연못이 되어 세상의 슬픔을 스며들게 하리니,
그 물 위엔 반드시 천 개의 연꽃이 피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시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자비, 공감, 그리고 보살행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첫째, 기쁨을 나눈다는 것.
우리는 보통 기쁨을 혼자 간직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나누는 순간 더욱 커지고 깊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남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남의 기쁨에도 함께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입니다.
둘째, 연못 같은 마음.
연못은 깊고 조용하며, 들어오는 모든 것을 품어냅니다.
기쁨을 나눌 줄 아는 자는, 자연스레 세상의 슬픔도 스며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싸 안고, 그로 인해 더욱 깊어집니다.
셋째, 연꽃이 피어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기를 품습니다.
기쁨을 나누는 자의 마음에도 그와 같은 연꽃이 핍니다.
그는 세상의 괴로움을 받아들이되 번뇌로 물들지 않고, 자비와 지혜로 승화시킵니다.
법우 여러분,
이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지닐 마음은 바로 연못과 같은 마음입니다.
내 안에 작은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움켜쥐기보다 미소로, 따뜻한 말로, 관심과 배려로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그 작은 나눔이 한 송이 연꽃이 되고, 그 연꽃은 또 다른 연꽃을 피워 천 개의 꽃이 되어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입니다.
보시란 금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손 내미는 따뜻함도 보시입니다.
특히 기쁨을 나누는 것은, 상대의 괴로움을 잊게 하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잡보장경에 이르길
“밝은 얼굴은 향을 피우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만큼 기쁨을 얼굴에 담고, 마음에 담는 일이 수행의 첫걸음입니다.
입추의 이 아침,
비록 여전히 덥고 바쁘고 복잡한 세상이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이미 연못이 되어, 자비의 연꽃을 피워내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미소가 또 다른 이의 하루를 밝혀주고, 한 사람의 기쁨이 천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내가 지닌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세상과 나누십시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고개 끄덕임 하나가 곧 연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가 쌓여 수행이 되고, 그 수행이 쌓여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법우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그 연못이 되시고, 그 위에 연꽃을 피우는 보살이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법구경에는 “기쁨은 나눌수록 자라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기쁨을 나눈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연민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삶은 단순히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의 괴로움에 귀 기울이고, 그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괴로움에 함께 눈물짓는 자비의 삶입니다.
기쁨을 나누는 자의 마음은 넓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괴로움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조용히 끌어안습니다.
마치 깊은 연못이 더러운 물도 담고, 하늘도 비추는 것처럼. 그 마음은 결국, 스스로 연꽃을 피웁니다.
자비와 지혜, 깨달음의 연꽃이 핍니다.
진흙이 있기 때문에 연꽃이 피어나듯, 세상의 괴로움이 있어야 연민이 생깁니다.
우리는 괴로움 없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괴로움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낼 수는 있습니다.
그 연꽃의 씨앗이 바로 ‘기쁨을 나누는 마음’입니다.
보시란 재물을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여유를 나누고, 자리를 양보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그 모든 것이 불자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보시입니다.
입추의 문턱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 봅니다.
나는 오늘 하루, 누구에게 기쁨을 나누었는가?
내가 가진 미소, 말, 마음을 세상과 나누었는가?
사찰에 와서 합장을 올리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기쁨을 나누는 수행자입니다.
함께 절하는 마음, 예불하는 소리, 모두가 하나의 자비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 맑은 연못이 되어야 합니다.
연못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물결은 하늘을 비추고, 슬픔을 감싸 안으며, 연꽃을 피워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 기쁨을 얼굴에 담으십시오.
그 얼굴은 수행자의 등불입니다.
기쁨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연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연꽃은 또 다른 연꽃을 피워냅니다.
마지막으로 퇴옹(退翁) 성철(性澈) 큰스님의 시 한 구절로 법문을 마칩니다.
"한 알의 모래 알갱이에 삼천대천세계를 담고 한 순간에 영겁의 시간을 머금는다."
우리의 나눔이 쌓여 마음의 연못이 될 때, 그 연못에는 온 우주가 비쳐질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에 자비의 꽃이 피어나길 발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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