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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1일(월) 아침방송법문 : 복(福)은 지을 수 있을 때 지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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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 09:07:38, 조회 : 55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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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8월 11일(월)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복(福)은 지을 수 있을 때 지어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법문의 주제는 “복(福)은 지을 수 있을 때 지어야 합니다.”입니다.
오늘은 지장재일입니다. 지장보살님은 ‘중생이 다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으로 지옥의 고통을 헤매는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복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때임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한 노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님은 매일 새벽 산책길에 가시덤불을 치우셨는데, 제자가 “왜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하시나요?” 라고 묻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지금 이 길을 걸을 이들의 발에 가시가 박히기 전에, 내가 걸으면서 치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복을 짓는 것이란다.”
이 말씀처럼 복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마주한 이 순간을 위한 것입니다.
화엄경은 일체시중생계에 미세한 진동 하나도 부처님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람, 당면한 일, 머문 공간 자체가 복을 짓도록 주신 부처님의 은혜입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배고픈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이 순간, 화내려다 참을 수 있는 이 호흡이 천겁에 한 번 오는 기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더 좋은 때를 기다립니다.
돈이 생기면, 시간이 나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복을 짓겠노라 말하지만 능엄경은 경고합니다.
“인연은 번개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지니, 가장 확실한 때는 오직 지금뿐이니라.”
지장보살님께서 지옥 문 앞에서 중생을 기다리시듯이 우리도 미룰 수 없는 선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지장재일의 깊은 의미를 함께 음미해 보십시오.
지장보살님은 끝없는 지옥에서도 지금 구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생명을 위해 지옥 문 앞에 서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복은 먼 훗날이 아니라 손이 닿는 지금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노점상 할머니의 사연이 떠오릅니다.
추운 겨울, 길에서 떨고 있던 그녀에게 한 청년이 뜨거운 호빵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지금 드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지금이라는 말이 할머니에게는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대지도론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일 복을 짓겠다는 마음은 독사에게 물린 자가 잠자러 가는 것과 같으니,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없느니라.’
여러분, 우리의 일상은 작은 지옥들로 가득합니다.
편의점 알바 생에게 내뱉은 투정, 아이에게 내지른 고함, 동료를 향한 냉소 등...
이 지옥문을 부수는 법은 오직 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선한 선택을 하는 것뿐입니다.
직장 상사가 잘못 지시했을 때 나중에 따지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화해하는 말을 건네 보십시오.
지하철 안에서 노인이 고개를 떨구고 서 있을 때 다음 역에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자리를 양보하십시오.
화엄경은 한 방울의 물이 바다를 이루듯, 한 순간의 선심이 삼천대천세계를 진동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지장재일입니다.
지장보살님의 지혜를 본받아 세 가지 지금 실천을 다짐합시다.
첫째, 감사한 마음이 들면 5초 안에 전화를 해서 표현하기.
둘째, 길에 떨어진 쓰레기는 보자마자 줍기.
셋째, 화날 때마다 지금 이 분노가 누구의 지옥인가라고 자문하기.
여러분, 복은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야 합니다.
시장에서 ‘신선할 때 드세요.’라고 쓰인 과일처럼, 복도 익었을 때 베풀어야 그 맛이 완성됩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되새깁시다.
‘복덕을 쌓되 복덕에 집착하지 말라.’
지장보살님께서 지옥에서 공양을 베푸시되 내가 구제한다는 생각을 버리셨듯이,
우리도 내가 선행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 지갑 속 만원을 꺼내 반으로 나누어 보십시오.
절반은 즉시 굶주린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길에서 만난 이에게 주십시오.
복은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라는 말씀의 참뜻은 너 자신이 지금 여기서 지장보살이 되라는 부처님의 계시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 선택 가운데 어떤 것은 나에게만 이익이 되고, 어떤 것은 나와 다른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후자의 선택, 즉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하는 행위를 복을 짓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은 때가 지나면 지을 수 없느니라.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선행을 서둘러 행하라.” 이 경구는 단순히 좋은 일을 하라는 권유가 아니라, 인연과 시기의 귀중함을 강조하는 깊은 가르침입니다.
복은 스스로 지어야 하며, 그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복을 쌓아줄 수 없고, 언젠가 시간이 남으면 하겠다고 미루는 순간 그 인연은 흘러가 버립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고, 친구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시기도 짧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 기회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관계도, 나의 형편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지을 수 있는 인연이 있을 때는 즉시 실천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복을 짓는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보시(布施), 둘째 지계(持戒), 셋째 수행(修行)입니다.
보시는 물질뿐 아니라 말과 행동과 마음의 나눔을 포함합니다.
웃는 얼굴, 따뜻한 한마디, 힘든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 모두 복을 짓는 보시입니다.
지계는 스스로를 맑히고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서원입니다.
수행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을 다스려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데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나누는 손길이 작다고 해서 복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성과 진심이 복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작은 물 한 그릇을 올린 공덕으로도 수많은 생에 걸쳐 복락을 누린 이들의 이야기를 설하셨습니다.
그 물 한 그릇은 크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무한했습니다.
우리가 복을 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시간이 생기면, 여유가 있으면…
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복의 시기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는 순간이며,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연의 시계는 거꾸로 가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공양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만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효도의 마음을 담아 천도재를 올릴 수는 있지만, 직접 밥상을 차려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인연은 더 이상 없습니다.
친구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격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온정도 그렇습니다.
복을 짓는 일에는 반드시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형식적인 시주는 복이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보시는 그 마음의 탁함이 그대로 복의 성질을 흐립니다.
부처님은 보시를 행할 때 세 가지를 갖추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주는 이의 마음이 기뻐야 하고,
둘째. 받는 이의 마음이 편안해야 하며,
셋째. 그 행위가 청정해야 합니다.
또한 복을 지을 때는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만큼 했으니 나에게 이만큼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은 복을 줄이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주고도 주지 않은 듯 잊는 데서 커집니다.
유마경에서는 참된 보시는 보시의 상(相)이 없는 보시라고 하셨습니다.
즉, 준다는 생각도, 받는다는 생각도, 나와 너라는 분별도 없이 행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불자로서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습니다.
요즘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시기에 다니시는 절에 가셔서, 도량에 풀을 뽑는 일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법회가 끝나고 법당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공양간에서 도반들과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은 큰 복을 짓는 일입니다.
남들이 청소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해우소를 청소를 하는 것은 더더욱 큰 복을 복을 짓는 일입니다.
그리고 법회에 오지 못하는 도반을 대신 챙겨주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길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도 복을 짓는 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큰 복이 됩니다.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나의 젊음도, 건강도, 재물도, 만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 몸이 건강하다면 그 건강으로 복을 짓고, 지금 내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 평안으로 복을 지어야 합니다.
언젠가 병들고 힘이 없을 때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한 번 마음속에 질문해 보십시오.
‘오늘 나는 어떤 복을 지을 것인가?’
복은 쌓이면 쌓일수록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그 복이 인연 따라 다시 나와 내 주변을 이롭게 합니다.
부처님은 복과 지혜를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하셨습니다.
복은 나의 삶을 안정시키고, 지혜는 그 복을 바르게 쓰게 합니다.
복이 없는 지혜는 메마르고, 지혜 없는 복은 쉽게 흩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바퀴를 함께 굴려야 합니다.
복을 지으면서 동시에 마음을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복을 지을 가장 좋은 때입니다.
작은 친절이라도 아끼지 말고, 작은 나눔이라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 마음과 행위가 바로 복의 씨앗이 되고, 언젠가 꽃과 열매로 돌아올 것입니다.
복을 짓는 기회는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공양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만 가능합니다.
이웃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도움도 그 사람이 지금 필요할 때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변하고, 인연도 변합니다.
복을 짓는 방법은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일, 바쁜 사람의 일을 잠시 대신해 주는 일, 모두가 복을 짓는 행위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것, 조건을 달지 않고 베푸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또한 복을 짓는 일에는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나중에 복이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은 오히려 복을 줄입니다.
준 것도 잊고, 받은 것도 잊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중에 라는 이유로 복을 짓는 일을 미룹니다.
그러나 나중은 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건강하다면 건강으로, 지금 내가 여유 있다면 여유로, 지금 내가 웃을 수 있다면 웃음으로 복을 지어야 합니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참고로 불심사에서는 오는 10월 25일, 자비와 나눔의 신행공동체인 ‘불심사 자비나눔회’를 창립합니다.
이 모임은 매월 1만원의 도반자비 보시금을 보시하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병고에 시달리는 법우님과 수행자 스님들,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고통 받는 법우님과 이웃들을 실질적으로 도와드리는 보살행의 실천 모임입니다.
그동안 불심사에서는 여러 차례 이 정신을 행동으로 옮겨왔습니다.
도반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기쁨은 함께 나누는 자비의 삶.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삶 속에 구현하는 것이 불심사 자비나눔회의 창립 이유입니다.
이 뜻 깊은 신행 공동체에 법우님들의 자비로운 동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작지만 꾸준한 정성이 모여 큰 희망이 되고, 한 사람의 보시가 백 사람의 미소가 됩니다.
작은 정성이 모이면 큰 자비가 되고, 한 사람의 보살심이 백 사람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오늘 어떤 복을 지을 것인가?
작은 일이라도 좋습니다.
오늘 하루, 웃음을 나누고, 친절을 베풀고, 이웃의 짐을 덜어주십시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내 삶과 주변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복을 지으십시오.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반드시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오늘 하루, 부처님 말씀처럼 게으르지 말고 서둘러 선행을 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직막으로 한 스님의 경구로 오늘 법문을 마칩니다.
“내일 주려고 하다 땅에 떨어진 쌀은 새만 배불리지만,
지금 주는 한 톨의 쌀이 천 명을 살리느니라.”
오랜 시간 동안 법문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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