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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0일(수) 아침방송법문 : “남을 돕는 이는 자신을 돕는 것이다”
眞虛性宗 2025-08-20 08:13:49, 조회 : 604, 추천 : 0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방송의 주제는 “남을 돕는 이는 자신을 돕는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선행을 권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지침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대부분 자기만의 이익을 챙기려 하면서 그 행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 남을 이롭게 하는 길이 곧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는 길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먼저 본생경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옛날 어느 보살은 숲 속을 걷다가 굶주린 호랑이와 그 새끼들을 보았습니다. 어미 호랑이는 굶주림으로 눈빛이 흐려졌고 새끼들은 힘없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보살은 깊은 연민에 사로잡혔습니다.

“만약 내가 이 몸 하나를 주어 저 생명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으리라.” 결국 그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호랑이들을 살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행위를 두고 어리석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것을 가장 위대한 보살행으로 찬탄합니다. 왜냐하면 남을 살리는 길이 곧 자신의 존재를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이러한 원력은 생명을 살린 공덕으로 쌓이고, 그 공덕은 다시 깨달음으로 이어져 스스로를 이롭게 합니다.  

여러분, 부처님 당시에도 이런 가르침은 제자들의 삶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병들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병든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리불 존자가 그 곁에 다가갔습니다.
그는 그 스님의 몸을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히며 마음을 다해 보살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리불은 병든 스님을 돕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공양한 것이니라.” 병든 이를 돕는 행위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곧 부처님을 모시는 공양이며, 결국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렇듯 남을 돕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선행은 남의 마음을 밝히는 동시에 내 마음을 더욱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 순간 우리는 타인을 돕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을 이롭게 하려거든 먼저 남을 이롭게 하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연기법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남의 이익과 나의 이익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남을 돕는 것은 결국 관계를 맑히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길이며, 그 속에서 나 또한 평화와 안락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남을 돕는 이는 자신을 돕는 것이다.”라는 말씀의 깊은 뜻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자주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하는 길이다.” 이 말씀은 자비행과 보시행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남을 돕는 마음은 결코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촛불 하나로 다른 촛불을 밝히면, 내 촛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이 널리 퍼지듯, 남을 돕는 순간 나의 삶도 더욱 환해집니다.  

한 가지 본생담 이야기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보살은 목이 마른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그 비둘기는 한 모금의 물조차 구하지 못해 날갯짓이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보살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을 비둘기에게 먹였습니다. 비둘기는 살아났고, 보살은 그 작은 행위에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 기쁨은 남을 살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고귀하게 만든 기쁨이었습니다.
이처럼 남의 목숨을 살리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곧 나의 공덕이 되고 나의 생명을 빛나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교학적으로도 이 뜻은 분명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은 자타불이(自他不二), 곧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바탕으로 합니다. 내가 돕는 그 사람과 나 자신은 서로 연결된 존재입니다. 남이 행복해질 때 나도 행복해지고, 남이 고통에서 벗어날 때 나 또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의 가르침입니다. 나만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 행위가 결국 나의 행복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아난존자는 늘 부처님 곁에서 시봉하며 남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누구보다 많은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난존자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남을 돕는 일이 곧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어떤 비구는 자신이 가진 음식을 모두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날은 배가 고팠지만, 그 나눔은 오히려 그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었습니다.
다음 날 부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남에게 베푼 보시가 곧 그대를 풍요롭게 하리라.” 남을 위한 작은 나눔이 결국 자신을 위한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삶은 훨씬 따뜻하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단지 상대방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나의 업을 맑히고, 나의 지혜를 열어가는 수행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작은 보시, 작은 도움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곧 자신을 돕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처럼, 자기만 살아남으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수록 인간관계는 메말라 가고, 삶의 행복은 멀어집니다. 반대로 작은 선행,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순간 삶은 따뜻해지고, 나 자신이 지켜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 안에서 내가 조금 더 양보하고, 동료를 돕는 마음을 내면 그 관계는 신뢰로 이어지고 결국 나를 보호하는 힘이 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결국 내 가정을 지키고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남의 행복을 먼저 구하면, 그 행복은 반드시 나의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또한 우리 불교에서 자비와 보시는 가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보시에는 재물보시, 법보시, 무외보시가 있습니다. 재물보시는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고, 법보시는 진리를 전하는 것이며, 무외보시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실천할 때, 남은 이로움을 얻고 나 역시 업이 맑아집니다.
남을 돕는 행위가 곧 나를 돕는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연기의 진리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기에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는 반드시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베푼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언젠가 나를 감싸주는 공덕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을 돕는 이는 자신을 돕는 것이다.”라 하셨습니다.  

법우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면서 이 말씀을 깊이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가다 힘든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가까운 가족에게도 따뜻한 말을 건네십시오.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남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가 곧 내 마음의 등불이 되고, 남의 고통이 줄어드는 순간 내 마음의 괴로움도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오늘 하루 작은 보시와 자비의 실천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을 지키고 나의 삶을 고귀하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살행을 이타행(利他行)이라고 부릅니다.
이타행은 단순히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닙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기에, 남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일체 중생이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라고 설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님을 섬기는 일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진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할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결국 개인도 불행을 겪게 됩니다. 반대로 서로 돕고 나누는 사회는 신뢰와 평화가 싹트며, 그 속에서 개인 역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작은 친절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작은 보시 하나가 사회를 바꾸며, 그 모든 변화는 결국 내 삶을 지켜주는 힘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이 가르침은 단순히 추상적인 교훈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지혜의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께서 오늘 하루도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주변을 이롭게 하는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을 실천하신다면, 그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하는 복이 될 것입니다.  

법우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에서 이타행의 소중함을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원한다면 남의 행복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나와 남이 서로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연기의 법칙을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드러내라는 가르침입니다.  

법구경에서도 같은 뜻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이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선행을 베풀 때 그것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인과(因果)의 진리를 밝혀줍니다. 남을 괴롭히면 괴로움이 나에게 돌아오듯, 남을 돕는 일은 곧 복과 안락이 되어 나의 삶을 지켜줍니다.  

또 화엄경에서는 “하나의 꽃은 모든 꽃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이익은 곧 일체의 이익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내가 행한 작은 도움은 나 혼자만의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연 망 속에서 울려 퍼져 결국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이는 물결이 퍼져 나가며 연못 전체를 흔드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씀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한 직장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배려한다면 그 조직은 건강하게 발전합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만 챙기면 불신과 갈등이 가득 차고 결국 나도 불행해집니다. 가정도 같습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도울 때, 그 행복이 곧 내 마음의 평화로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선행은 반드시 그대 자신에게 되돌아가리라.”고 설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세의 복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이 맑아지고, 기쁨이 생기며, 관계가 화합하게 되는 즉각적인 이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법우 여러분,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는 먼 미래의 보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지금 나의 행복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이 말씀을 다시 마음 깊이 되새겨 봅시다. 보살영업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중생의 고통을 가볍게 하는 이는 곧 자신의 번뇌를 가볍게 하는 자다.” 남을 돕는 일은 상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내 마음의 무거움이 덜어지고, 내 업이 맑아지며, 내 삶이 한층 밝아집니다.  

대보적경에서는 “자비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라고 설합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베풀 때, 지혜도 열리고 인내도 생기며 모든 선행이 온전해집니다. 남을 돕는 행위는 바로 이 자비의 구체적 실천이며, 그것이 곧 나의 삶을 가장 큰 힘으로 지켜주는 덕목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 직장에서 동료를 배려하는 것,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것조차도 모두 남을 돕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은 동시에 나 자신을 돕는 길이 됩니다.  

법우 여러분, 불교 수행의 참뜻은 자기 혼자만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보살의 길은 언제나 이타행을 통해 성취됩니다. 내가 남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 길은 곧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남을 돕는 순간 나를 돕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작은 보시 하나가 큰 복으로 돌아오고, 짧은 미소 하나가 내 인생을 환하게 밝히며, 남을 이롭게 한 한마디가 곧 나의 업장을 녹이는 힘이 됩니다.
이것이 불교의 인과요, 연기의 진리입니다.  

법우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합시다.
남을 돕는 그 길이 곧 자신을 돕는 길임을 믿고, 오늘 하루도 자비와 나눔으로 빛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법문을 마치며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남을 돕는 이는 자신을 돕는 사람입니다.”
이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대덕심 [2025-08-20] : 법문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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